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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Jan 18. 2023

이 나이 처먹도록

ㄴ아ㅓㄹㄴㅇ;ㅣㅏㄹ;니알ㄴ;ㅣㅏㄹ년아!!! 

한 때는 글을 쓰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딩 시절 누가 주체고 무슨 목적이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반 전체가 돌아가며 일기 같은 걸 쓰는 게 있었다. 그 때 "지나 차례가 기다려진다"는 소리를 듣는 게 나에겐 기쁨이었다. 대학 입시 준비를 한다며 논술 모의고사를 했을 때는 우반(당시 비평준화였던 우리 학교에는 이런 제도?가 있었다)에서 1등 한 번 못했던 내가 글짓기는 1등을 먹어서 이런 재능이 나에게! 했던 기억도 있다. 대학생이 되고 전형적인 무위도식자 양성 학문인 사회학을 전공하고 나서는, 뭘로 먹고 살까 고민할 때 기자를 해야지 결정했던 것도, 기자가 글을 쓰는 직업이라 착각!!했던 영향이 컸다.

 

건조한 글쓰기로 밥을 빌어먹는 처지가 되고 널린 실력자들을 지켜보면서, 글쓰기 재주는 그렇다치고 흥미까지 싹 사라지는 걸 느낀다. 펜을 들게 만드는 주요 동력은 보통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치밀어 오르는 감정'인데 탈진할 정도의 노동에 심가의 노예로 살면서 희노애락 자체가 무뎌진 지 오래다. 딱히 뭔가 쓰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없다. 나의 의지로 없앤 건 아니니, 거세됐다, 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수 있겠다. 그와 함께 꿈 많던 소녀의 흔적도 2023년의 윤지나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게 됐다. 차곡차곡 쌓은 나의 세계는 야망을 불태우다 같이 없어질 수도 있다. 욕심을 부릴 땐 전시 군인이 주위를 경계하듯 예민하게, 그 한계를 어디까지 둘지 먼저 짚어둬야 한다. 

 

벌써 새 해가 18일이나 지난 오늘, 마음이 여러모로 복잡하다. 주어진 삶의 반이 지났음직한 나이인데, 도대체 이 나이를 쳐먹도록 황야에서 빌어먹을 기술 하나 마련해놓지 않은 게 너무나 한심해다. 다들 질릴 정도로 회사에 시달리고 실망하며 살텐데, 나 혼자 못살겠다고 엄살을 부리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한참 회사를 원망하다가도, 내가 외벌이 가장이었으면 이런 하소연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조건을 객관화한 뒤 엄살의 정당성을 따져보기도 한다. 때려치고 나면 뭘로 먹고 살지? 


만에하나 글 쓰는 재주가 진짜 있었다고 쳐도 어차피 먹고 살긴 글렀다. 한국 사회에서 글값은 싸고 글쟁이공급은 넘친다고 한다. 착각에 불과했지만, 15년 넘게 글 쓰는 직업이라고 평가받는 직군에 종사하면서 당장 이걸 밥벌이와 연결짓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는 게 너무너무너무너무 화가 난다. 뭐하고 산거야, 이 맹추같은 년아!!!(보통은 훨씬 심한 욕을 입에 달고산다) 하고 소리지르고 싶은데 내 앞에는 작은 딸이 사부작 사부작 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다시 성질내는 것조차 다시 한번 경계를 한다. 이제는 그래야 하는 삶이다. 갑자기 나보다 훨씬 돈벌이가 좋은 남의편한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같이 기자 계속했으면 어쩔 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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