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없이 버틴 여성에 대한 존경을 담아
내가 출입하는 국민의힘의 요즘 최대 이슈는 나경원 전 의원이 차기 전당대회에 출마할 지 여부다. 금수저에 한국사회 최고의 스펙, 여기에 출중한 미모까지 갖춘 나 전 의원은 어느 나와바리에서나 항시 주류였고 정치 행보에도 마찬가지였다. 온실 정치인, 공주 소리를 듣던 나 전 의원이 최근엔 윤석열 대통령과 친윤주류의 노골적인 배제, 경멸, 비난을 받으면서도 출마 의지를 꺾지 않으며 전사가 돼가는 중이다. 여권 주류의 박해가 너무 심하다보니 "내가 나경원을 응원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인용으로 시작한 내 기사는 송고된 뒤 정치인들의 피드백이 꽤 있었다. "내가 말한 거 쓴 거야?"
시기, 질투라는 얘기도 하지만 10년 전 이 당에 출입할 때부터 나 전 의원은 인지도와 인기만큼이나 비호감 지수가 높았다. 당시 내가 속했던 '파/워/말/진 여기자꾸미'에서 당시 조윤선 의원을 훨씬 더 좋아했던 걸 떠올려 보면, 나 전 의원은 가까이 볼 때 실력이나 인간적 매력이 더 떨어졌던 것 같다. 실력자들(이라 쓰고 할배라고 읽을만한)에게 눈물로 호소하면, 나 전 의원이 원하는 바를 다 이룰 수 있다는 얘기는 사실상 그녀를 엄청나게 평가 절하하는 것이지만, 잊을 만하면 다시 들리는 에피소드였다.
이렇게 비호감이었던 그녀를 응원하게 되는, 그때와 확연히 달라진 나 전 의원의 현재 정치적 조건과는 별개로, 나는 나 전 의원이 '일가를 이룬 할아버지'로 득실대는 이 정치권에서 '살아남은 여성'이라는 지점에 리스펙을 보낸다. 물론 평범한 여성 수준을 심하게 초과하는 그녀의 자원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으나, 그럼에도 4선 중진까지 이 판을 버텨낸 것은, 그러면서 '멀쩡한' 가정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다. 영남당 소리를 듣는 이 당에서 배운 경상도 사투리에 따르면, 그녀는 '하고잽이'라는 별명까지 붙어있다. 왠만한 선거에 다 나가고 자리란 자리는 다 차지하려는 욕심쟁이라는 비판이다. 그런데, 나 전 의원은 그만큼 필사적으로 원했고 싸웠기 때문에 생존한 것이다.
최근 나 전 의원을 다시 만났을 때 "저는 일단 여기까지 살아 남은 모든 여성 선배님들을 존경합니다"라고 말한 건 이런 판단 때문이었다. 엄마이자 아내, 정치인 아니 유력 정치인으로 버티고 있는 여성이라면, 그 자체로 대단하다는 것을 10년 전 애송이 지나는 솔직히 잘 몰랐던 거 같다. 무엇보다, 여성에게 척박한 정치권, 그중에서도 특히 국힘 나와바리에서 나 전 의원에게는 언/니/가 없었다. 언니 없는 싸움에서 여성이 '명예남성'이 되거나 여성 몫으로 떼준 영토의 일부를 받아들고 "이렇게 우리 당이 여성 친화적이에요"라는 메시지에 이용당하는 건 흔한 일이다.
"아유 좋다. 언니 있으니까.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어요?(이효리)
"몰라. 그냥 술 마셨어"(엄정화)
(티비 프로 서울체크인 중에서 두 뮤지션의 대화)
엄정화가 보냈을 시간을 짐작하며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이효리를 보면서, 나도 덩달아 울었었다. 나 전 의원도 울었을 것 같다. 아니,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지금까지 버틴 강한 사람으로서 울컥, 까지만 했을 수도 있겠다. 그녀는 이를 악 물면 하고잽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하고 여유를 부리면 여자라 나약하다는 소리를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언니가 없이 살아남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나는 나 전 의원이 안쓰럽다. 이번에도 잘 버텨줬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동생들도 좀 챙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