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딸내미를 안고 침대에서 뒹굴대면서 30분 넘게 수다를 떨었다. 미성숙한 생명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재미없다는 이유로 그간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배드민턴을 치거나 축구를 하는 등 주로 몸을 썼던 것 같다. 생산된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몸뚱이야말로 얘가 나보다 나은 유일한 게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어제 새삼 가진 수다 시간이 더럽게 즐거웠던 기억은 아니다. 다만 이것저것 재연하고 내 귀에 피딱지를 앉힐 정도로 쉬지 않고 떠드는 딸내미의 얼굴과 몸짓에 내내 감동했다. 쾌락이라고 부를 건 아니고 평소의 삶에서 겪기 힘든 희귀한 감정, 편안함에 가까운 잔잔한 행복감이다.
마침 어제는 대표적인 인생 낭비시간인 SNS 시간에 "언제쯤이면 껌딱지 자식 놈이 나에게서 떨어지냐"는 질문과 답을 쭉 훑어봤었다. "마트 같이 가자"했을 때 "안 가"하는 시점이라고 한다. 화장실까지 따라붙는 딸내미의 집요한 동기화 시도도 유효기간이 있는 일이라는 걸 안다. 나도 알아, 안다고. 하지만 어른의 삶이 고단하고 지칠 때마다 받아주지 못했다. 아니, 기본 모드가 피곤한 상태니까 디폴트값이 동기화 거부였던 것 같다. 지금이 그리울 거야,라는 주위의 발언도 원망스럽기만 했다. 앞니가 빠져 우스꽝스럽게 귀여운 내 딸의 이 순간이 찰나라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고 되돌릴 수 없는 시점이 돼서야, 무엇보다 직접 당해봐야;;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아, 자꾸 도망 다니는 것 같은 엄마에게 향하는 내 딸의 사랑. 의식적으로 이 사랑을 기억하고 느끼고 누리고 그만큼 충만하게 돌려주려고 다짐한다. 디엔에이와 핏줄, 운명까지 모든 촉수를 동원해 나를 꽁꽁 묶은 뒤 내가 죽지 않을 만큼 사랑과 관심을 최대한 빨아내려는 것 같은 내 딸. 누군가로부터 이런 외계 숙주 같은 방식의 사랑을 받을 일이 있을까. 내 딸, 그녀도 누군가에게 이런 절대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을 갈구할 일이 또 있을까. 눈코입이 달린 한 덩이의 지방 같았던 녀석이 제법 길쭉해진 걸 느낀 김에 다시 한번 열심히 사랑할 것을 결심한다. "영화서도 볼 수 없던 눈보라가 불 때,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