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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Jul 06. 2023

10년 치 운동을 하루에 몰아하기

기자협회 여기자 풋살대회 준우승 후기

결승전이 끝나고 우리 팀 선수 8명이 모두 울었다. 진 것에 대한 분노도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도 아니었다. 경기 전 이미 허벅지 부상을 입었음에도 뛸 수밖에 없었던 나는 너무 아팠던 게 울음을 터뜨린 첫 번째 이유였다(조낸 저차원적 인간). 이어 우리 조건이 너무 서럽고 그런 환경에서도 준우승으로 이끌어준 팀원들이 너무 기특한 게 나머지 이유였다.  


예로부터! 언론사 간 축구대회를 매해 진행해 왔던 기자협회는 늘어난 여기자들의 참여가 주축이 된 행사를 열어야겠다며 지난 1일 올해 첫 번째 여기자 풋살대회를 개최했다. 나는 암 생각 없다가 10년 어린 후배들이 같이 하자길래 역시 암 생각 없이 참여하고, 매주 한 번 개처럼 침을 흘리며 지치는 시간이 재밌어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시간 되는 사람이 알아서? 참석하는 널럴한 분위기 속에 조지는 사람도 없어서 우리끼리 명랑축구를 했다. 드문 드문 하루짜리 코치를, 그것도 코치 대부분을 읍소와 선의에 기대 모신 뒤 지속성 없는 교육을 받았지만 연습 시간이 알찼다. 실력은 솔직히 모르겠고, 그저 즐거웠다는 이유만으로. 뛰는 내내 깔깔 웃는 애가 있어서 내가 미친년 같다고 평할 정도.

  

문제는 우리 선수가 총 8명이었는데 그중 2명이 연습 중 뼈와 인대에 부상을 입고 출전을 못했고, 나는 햄스트링 부상을 입고 절뚝대며 뛰어야 했다는 것. 아마추어 경기에서 선수 무한교체 룰은 특히나 열등한 체력으로 드글대는 기자들 사이에 주요 승부 변수였다. 개미처럼 빼곡하게 몰려서 준비운동을 하는 다른 팀들이 마냥 부러웠다. 나는 전날 한의원에 가서 의사에게 무슨 독립투사라도 된 양 진지하게 "근육 찢어져도 되니까 하루만 뛸 수 있게 침으로 마취 좀 시켜주세요"했고, 당일에는 다리에 장판 깔듯 파스 6개를 붙이고 뛰었다.

 

해서 승부욕은 있되 객관성은 잃지 않은 우리 팀은 본경기에서 1승만 하자는 매우 합리적 목표를 잡았었다. 심지어 5대 5로 제대로 뛰는 연습경기는 타사와의 평가전에서 몇 번 한 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대부분 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 경기 한 경기 빌드업을 한 모양) 때문에 선수층이 두껍고 열의도 높다는 한국일보와 한겨레를 차례로 꺾으면서 우리 스스로도 매우 당황했다. 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집에 4시에는 간다고 해놨는데. 당초 리그전 탈락을 예상하고 잡아놨던 뒤풀이 예약 시간도 계속 미뤘다. 결과론적이지만, 6명이 내내 뛰다 보니 우리끼리 조직력이 탄탄해졌고 체격들이 좋은 편이라 개인기가 뛰어난 타사 선수들을 (공 컨트롤은 포기하고 그저) 몸으로 밀어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세트피스도 없이 그저 '수비는 압박, 공격은 우당탕탕'이라는 단순한 전략으로 승부했다. 매너 좋기로 소문난 한겨레 선수가 질척거리는 나한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할 정도. 죄송합니다. 다음에 갠적으로 뵐 일이 있으면 꼭 사과드려야지.

 

그러나 하루 4경기를 6명이 소화하다 보니, 4번째 경기 상대이자 결승 라이벌이었던 높은 산 뉴스원은 결국 넘지 못했다. 10년치 운동을 하루에 하고 마지막 경기에서는 힘에 부쳐 일그러진 팀원들 얼굴이 잊히질 않는다. 3경기를 무실점으로 버텼지만 마지막 경기는 무려 3골을 내준 이유기도 하다. 결승 상대는 우리의 2배 넘는 선수 규모에 지속적인 코칭, 당일에는 얼음이 가득찬(얼음이 일케 중요한 건지 우리는 그 날 알았다!) 커다란 아이스박스와 플래카드, 응원단까지 짱짱했다는 차이 외에도 발재간(대체할 축구 용어를 모름)이 뛰어난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실력에서도 마땅히 1위할 양반들이었다. 축하합니다.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 팀원들은 후기를 나누고 산왕을 이긴 북산팀이다(슬램덩크에서도 북산은 준우승에 머문다), 영화 리바운드다(여기도 악조건 속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우리는 기적의 팀이다, 서로서로 너가 얼마나 대단하냐면~ 평가하고 떠들며 흥분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인생에 여러 즐거움이 있고 운동하며 느끼는 희열이라는 것도 분명 있다는 건 알았는데, 팀 운동에서만 가능한 기쁨 그리고 기대 이상의 성과가 주는 성취감까지 이렇게 극락맛일 줄은 몰랐다. 잊기 싫은 감정이라 늦게나마 정리한다. 팀운동 강추합니다. 학창시절을 회고하며 여학우들에게도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 토요일 근육을 박살내고 일요일엔 온몸이 멍이 든 채 걸음마하는 아기처럼 걸어다녔다. 이렇게 즐거운 후유증이라니. 

+ 공격수 포지션인 내가 한골도 못 넣은 게 너무 아쉽다. 시발 내가 다치지만 않았어도!!!라고 객기를 부리기엔 우리팀 모두 구멍도 없고 다들 한 칼이 있는 스탈. 

+ 경기날까지 풋살 규칙도 숙지 안된 나 ㅋㅋ 핸들링까지 병신짓 작열함. 다른 팀들도 보니까 휘슬 불기 전에 승부차기 킥 날리고 대략 난리법석이라 심판들도 (비)웃으면서 뛰어다니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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