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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Nov 08. 2022

재택근무 2년 차, 첫 출장을 가다

얼굴 보니 좋으네


그동안 <직딩의 미국 유학 일지> 브런치북 완성을 위해 달리며 저의 과거 이야기만 주야장천 해서, 이러다 '라떼' 작가 되는 건 아니겠지... 살콤 걱정이 되었습니다. ^^ 일과 글쓰기, 이 두 가지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던 올해가 벌써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11월에는 2022년을 정산하며, 저의 현재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볼까 합니다.


영구 재택근무라니


2020년 3월 17일, 확산되는 COVID-19로,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카운티에서 외출금지 명령(Shelter-in-Place Order)이 떨어졌다. 바로 다음 날, 추가 공지가 있을 때까지 재택근무하라는 회사 이메일이 날아왔다. 회사는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다, 직원들을 '사무실 근무자'와 '원격 근무자'로 구분해, 소위 '영구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우리 팀에서는 빅 보스 한 분만 빼고 모두 '원격 근무자'로 지정되었다. 미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회사 파산 및 정리해고 뉴스가 들려왔고, 워낙 세월이 하 수상하던 때라, 원격 근무자로 발령 난 사람들은 나중에 정리해고를 하는 게 아니냐는 루머가 아주 잠깐 돌기도 했다. 이렇게 영구적 재택근무 발표가 나고 나서, 회사에서는 사무실에 있던 개인 물품을 집으로 보내주었다. 나름 일하는 공간을 쾌적하게 만들고 싶어, 회사에 간단한 문구류, 카디건, 무릎 담요 등을 바구니에 담아놓았는데, 그 공간이 싹 박스에 담겨 집으로 배달되었다. 필요한 물건을 다시 돌려받아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사무실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까 마음이 어수선했다.


#1주1출근, 하이브리드 모델로


그러던 올해 초 많은 나라들이 국경을 개방해, 제한적으로나마 다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에서도 다수의 회사가 사무실 출근을 재개했다. 실리콘밸리의 아이돌, 애플, 구글 등 빅 테크 회사들도 일주일 몇 번 이상 출근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이 흐름에 맞추어, 영구적 재택근무를 발표했던 우리 회사에서도 '회사에 출근하는  welcome이다. 일주일 한번 출근을 권장한다' 등의 이메일이 날아왔다. 물론 강제는 아니었지만. ㅎ 빅 보스는 한 달 한 번 점심식사로 사무실에서의 만남을 주선(?)했고, 그렇게 2달 남짓, 팀원들이 출근하는데 적응하자, 이제 일주일 한 번 출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캭... 왜 점점 늘리는 거지...?


팬데믹 이후, 첫 대면 오프사이트


지난 2년 반 동안 우리는 면대면 팀 오프사이트(Team Offsite)* 대신, 온라인 팀 오프사이트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코비드 관련 제한이 많이 풀린 올해 초, 빅 보스는 면대면 팀 오프사이트를 할 거라고 깜짝 발표했다.


'오프사이트 날짜가 확정되는 대로, 비행기 티켓과 호텔을 재빨리 부킹 하도록!' 


2019년 초, 입사했을 때도 팀원들을 만날 기회가 있긴 했다. 그때는 우리 소규모 팀 (6명)만 만났고, 이번에는 빅 보스 아래 있는 세 팀 전부가 한 자리에 보였다. 미국 5개 주, 멕시코, 인도 등지에 흩어진 총 15명의 팀원이 모이는, 내가 이 회사로 이직한 후 가장 큰 '전체 팀 회동'이었다.


장소는 미국 동서부 사이 중간 지점이자, 새로운 캠퍼스가 생긴 휴스턴(Houston). 비록 출장이었지만,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가 보는 미국 국내 여행이었다. 한껏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느낀 오프사이트의 하이라이트를 세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1. 빅 보스가 손수 준비한 오프사이트


전체 오프사이트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오전에는 게스트 스피커 세션과 화이트 보딩/브레인스토밍 세션에 참가하고, 오후에는 '오피스 투어' 또는 '고객 혁신 센터' 방문 등 소소한 이벤트를 했다. 시차가 큰 몇몇 지역에서 온 팀원들을 배려해, 앉아있는 시간과 활동 시간이 적절히 어우러진 스케줄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5일의 오프사이트 어젠다(agenda: 회의에서 논할 의제)  보스가 직접 짜고, 게스트 스피커도 직접 섭외한 것이다. 식당 예약은 3명의 매니저가 맡았다. (와우!) 이직 전, 아시아계 미국 회사에 다닐 때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해외출장이 많았던 예전 회사에서는 이렇게 출장 오프사이트가 생길 때마다, 보스 아래 모든 주니어 직원이 동원되어 오프사이트 스케줄 및 동선 짜기에 매진했었다. 장표 준비, 게스트 스피커 섭외부터 식사 장소 예약까지 전부 다 주니어 직원의 몫이었다.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이 당연시되는 아시아계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장단이 있다. 이런 행사를 꾸리며 주니어들이 배우는 점도 분명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윗선 응대, 주요 자료 발표 등 중차대한 업무는 보스가 맡고, 미팅에 필요한 물품 챙기기, 동선 짜기, 연사 섭외, 식당 예약 등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주니어에게 떨어지게 마련이다. 예전 회사에서 잠깐 같이 일했던 보스는 이탈리아인이었는데도, 한국 파견 5년 차에 상명하달이 몸에 붙은 분이었다.


오프사이트가 끝나고 팀 미팅에서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빅 보스의 이런 챙김이 미안했었는지, 많은 직원이 다음에는 일 좀 나눠서(divide and conquer) 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그는 오프사이트 예산과 일정이 막판에 잡혀 어쩔 수 없었다며,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캠퍼스 투어 및 고객 혁신 센터 방문


2. 대면 미팅, '당연했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시대


지금의 회사로 이직한 건 2019년 중반이었다. 적응 첫 주를 마치고, 바로 그다음 주 팀 오프사이트가 있었다. 나는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있지만, 매니저(빅 보스 말고 나의 Direct Report*)는 콜로라도주에 있어, 면대면으로 만날 수 있는 첫 기회였다. 그때는 당연'적어도  년에  번은 만날 거로' 생각했다. 당시엔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고 조심스러워, 오프사이트 사진도 많이 남기지 않았었다.


팬데믹이 터진 후, 매니저와 팀원들과는 원격 근무를 이어갔지만, 면대면으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그동안 당연시했던 '면대면' 미팅이 지극히 귀하고 다시 찾아오지 않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나는 다행히도 팬데믹 전에 회사에서 적응할 기간이 있어, 이렇게 계속 붙어있는 게 아닌가 싶다. 팬데믹 동안 실리콘밸리에서는 한참 이직이 성행했는데, 이직한 사람 중에는 적응하지 못해 그만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우리 팀은 워낙 미국 여러 주와 멕시코, 인도 등지에 흩어져 있어, 이미 오래전부터 원격으로 일을 해왔다. 따라서 '영구적 재택근무' 이후에도 협업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일 년 한 번 워크샵조차 직접 얼굴 보며 얘기를 나누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동료가 직접 그린 코끼리 그림

그래서인지, 이번 오프사이트 때 팀원들은 각 지역에서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멕시코에서 가져온 달달한 쿠키, 인도에서 가져온 스낵들. 시차로 미친 듯이 졸음이 밀려올 때마다 우리는 그 달달한 쿠키와 커피로 잠을 깨웠다. 와이프와 아이와 함께 직접 그림을 그려 액자에 담아온 팀원도 있었다. 인도 특유의 느낌이 나는 쨍한 원색과 굵직한 선으로 그려 나간 나비 그림과 코끼리 그림을 나누어주었다. 나는 코끼리 그림을 받았다. 나는 회사 브랜드 샵에서 구입한 작은 선물을 공유했다. 서로를 살뜰하게 챙기는 훈훈한 시간이었다.


월요일부터 Happy Hour. Cheers!


3. 매니저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다


그중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매니저의 선물이었다. 오프사이트 DAY 2, 팀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 방에 왔는데, 매니저로부터 전달할 것이 있다며  앞에 놓아두고 가겠다는 문자가 왔다. 15명 모든 팀원을 준비한 것은 아니라, 개인적으로 전달하겠다며. '... 뭐지?' 


얼마 후에, 방 밖에 쇼핑백을 놓아두었으니 시간 될 때 가져가라며, 'You don't have to do anything' 이렇게 문자가 왔다. 방문을 얼른 열어 선물을 열어보았다. 손글씨 카드에 깔끔하고 정성스럽게 포장한 선물과 회사 후드티가 들어있었다. 포장지를 뜯기도 미안할 정도로 곱게 쌓인 선물을 열어보니, 책 두 권이었다. 하나는 <Leadership, and the One Minute Manager>, 그리고 <Lego, a Love Story>였다.


다음 날 아침, 회사 출근길, 몇몇 팀원들을 만났다. 매니저가 맡은 소규모 팀, 6명의 팀원에게 선물을 준비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 뭘 받았는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오프사이트와 여행 준비로 바쁜 와중에 언제 선물 사고 포장까지 다 한 건지. 게다가 정성스러운 손 편지까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얼마 전 BMW를 한 대 뽑은 동료에게는 BMW 관련 책을, 나는 '레고'와 '좋은 매니저가 되는 법'에 대한 책을 받았다. 팀원이 최근에 새 차를 뽑았다는 소식, 일전에 내가 'AFOL(Adult Fan of Lego)'이라고 소개했던 말을 깨알 같이 기억해, 각자 취향에  맞는 선물을 고른 것이다. 팀원 한 명 한 명을 기억하고 세심하게 챙기는 마음. 그냥 감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이런 세심함과 멋진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어본다.


서프라이즈 책 선물


대면 미팅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포스트 코로나 세상에서, 세계 각지에서 모인 팀원들을 만나게 된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오프사이트 전후 일주일, 밀린 업무를 따라잡느라 땀 좀 뺐지만, 함께 일하는 이들과 만나 일과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5일간의 여정이 ‘감지덕지’했던 시간이었다.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시대를 살며,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내게 주어진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팀 오프사이트(Team Offsite): 본 근무지를 벗어나 진행하는 팀 워크샵

Direct Report: 직속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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