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쥬르 Sep 25. 2023

17. 외로움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향수병을 달래는 법


나는 미국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는다. 안전 및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잘 몰랐던 사람과도 친분이 생기면 가족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상대방도 내가 해외 1인 가구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걸 우연히 알게 된 지인은 한결같이 말한다.


“혼자 살면서 안 무서워요?”

“외로움을 많이 안 타나 보네요. 타지에서 이렇게 씩씩하게 사는 걸 보면…”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해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고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는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대체로 낙관적인 편이라 큰 걱정이나 사무치는 외로움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나도 사람인데 외로움은 디폴트 값이다. 모든 것이 장밋빛 같다가도 외로움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지금이야 직장과 영주권이 해결되었고 내 한 몸 편히 재울 수 있는 집도 생겨, 예전보다는 안절부절못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서바이벌 모드로 24시간 긴장하며 일했던 직장 초년 시절, 내 마음은 항상 서늘한 가을 끝자락이었다. 스트레스가 극심한 날에는 차에 잠시 들어가 K-pop을 듣거나 퇴근하고 운동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며 반쯤 가출한 멘털을 추슬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국어 책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모국어 책이 얼마나 외로움을 달래는 데 힘이 되는지도 몰랐다. 미국에 왔으니 당연히 원서를 읽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고 한국어 책은 가족에게 부탁해 비싼 배송비를 내고 전달받아야 하는 레어템이었으니까. 게다가 아파트 계약이 끝나면 또 언제 이사 갈지 모르는데 책이 너무 많이 쌓이면 처분이 곤란했다.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한국어 책보다는 원서나 회사 리포트가 주요 읽을거리였다.


언제 받아도 반가운 우체국 택배, 엄마표 손편지와 함께 도착했다


북클럽과 글쓰기 모임


그러다 팬데믹이 터졌고 온라인 북클럽 및 글쓰기 모임이 폭발적으로 생겨났다. 나도 두세 개 북클럽에 가입했다. 그동안 참가했던 모임이 지금의 나를 키우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쓰기 모임을 통해 블로그도 심폐 소생 시키고 브런치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점차 한국어 종이책을 주문할 수 있는 루트를 알게 되었고, 종이책이 제때 도착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크레마’라는 전자책 기까지 구입했다. 보통은 반디북 US 또는 알라딘 US를 통해 종이책을 구입했는데, 요즘에는 kbookstore가 생겨 밀리의 서재 활용과 함께 신나게 한국어 책을 읽고 있다.


처음엔 책 구매 경로를 몰라 엄청 헤맨 경험이 있다. 해외 책린이들을 위해, 최근에 주문했던 베스트셀러인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과 벽돌 책인 요가 난다의 <영혼의 자서전>으로 가격 비교 및 배송 기간 비교를 해보겠다.


☆ 도서 가격 및 배송비는 변경될 수 있으므로 주문 시 웹사이트를 참조해 주세요 :)


종이책 사재기


한국어 책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내가 이처럼 열혈 종이책 신자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 종이라는 물성이 주는, 전자책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있는 심리적 만족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종이책은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 배달된 수입품이 아닌가. 작년부터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으니 좋은 글을 쓰려면 책도 열심히 읽어야겠고, 책 읽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종이책은 글쓰기 전 마중물 독서하거나, 목차 구성할 때도 도움이 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잠깐이라도 책을 읽고 있자면 활자와 종이책의 물성이 주는 고요한 평화가 찾아온다.


교보문고, yes24, kbookstore 베스트셀러 순위와, 북스타그램 해시태그를 검색해, 요즘 많이 언급되는 책은 무엇인지, 요즘 내 취향과 필요에 맞는 책은 무엇인지 순위를 매긴다. 밀리의 서재에서 볼 수 있는 책은 웬만하면 제외하고 종이책을 주문한다. 100불 이상 주문하면 무료배송이니, 100불이 살짝 넘어가게 4~6권을 고르고, 나머지 책은 위시리스트에 넣는다.


반가운 kbookstore 택배 박스, 직업상 AI 관련 책과 취미를 위한 요가 책을 주문했다


랩톱을 째려보며 일하다 kbookstore에 주문한 책들이 오늘 도착할 거라는 알림을 받는 순간, 기분 좋은 파도가 몰려온다. 집에 도착해 대문 앞에 철퍼덕 던져져 있는 택배 박스를 보고 “에이, 좀 제대로 좀 놓고 가지…” 툴툴거리지만, 이내 상자를 열어 책을 만지작거리며 입이 귀에 걸린다. 그리고 도착한 책을 쪼르륵 쌓아 책탑 사진을 남긴다. 조금 바보 같기도 하고 히키코모리 같은 사람을 연상시키는 이 과정은, 나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중요한 루틴이다.


책이 도착하면 기록 차 책탑 사진을 남긴다


모국어와 향수병


지금이야 카톡이나 줌을 통해 맘만 먹으면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할 수 있지만,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이틀 가족 카톡 방이 조용해지면 가족의 안위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가끔 아프기라도 하면 당장 짐 싸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해외에 살며 향수병을 달래는 방법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화끈한 매문 맛 불닭볶음면을 먹거나 한국 식당에서 곱창전골에 소맥 한 잔을 기울이며 K-먹방 하기, 불금을 맞아 밀린 K-drama 몰아보기, K-pop 덕질 등등. 나의 경우는 모국어와 가까이하는 것이야말로, 향수병을 달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모국어라도 한참 쓰지 않으면 어버버 하게 되는 황당함을 아는 분들이 계실까? 영어를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도 아닌데, 한국에 있는 가족과 통화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쉬운 단어도 까먹고 뭔가 논리에 맞지 않는 'broken Korean'을 구사할 때도 있다. 해외 생활이 길어지면, 모국어도 열심히 기름을 쳐줘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독서와 필사 - 모국어를 까먹지 않는 좋은 방법


미래의 서재


책과 식물이 숨 쉬는 미래의 서재를 꿈꾼다. 이 공간이 가족과 친구들이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는 유튜브로 유명 작가님의 서재도 얼마든지 엿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얼마 전 방영되었던 KBS 다큐 인사이트 <파친코와 이민진>에서는 이민진 작가님의 멋진 서재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녀의 서재에는 소설 <파친코>를 완성하기 위한 성실함과 집요함의 10년이 담겨 있었다. 특히 원고와 조사 자료를 인덱싱해 층별로 분리해 놓은 장면에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출처: KBS 다큐 인사이트 <파친코와 이민진>


<가녀장의 시대>에 묘사되는 이슬아 작가님의 서재는 어디선가 봤다 싶었는데, 3년 전쯤 방영했던 엠뚜루 <아무튼 출근>에서 그녀의 근사한 전원주택과 함께 서재를 구경한 적이 있었다. 밤 12시 전 마감의 고뇌와 사색이 담긴 그녀의 서재와 텃밭에서 키운 상추로 한 끼를 건강하게 해결하는 그녀의 공간은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출처: 엠뚜루마뚜루 <아무튼 출근 - 작가 이슬아 편>, '괜히 다른 책들 들춰보고'에서 극 공감^^


다양한 소셜 플랫폼에서 만나 친분이 생긴 작가님들의 일상 포스팅을 통해서 다양한 서재를 접한다. 사적인 공간을 떡하니 드러내는 분들은 많이 없어서, 조각조각 흩어진 사진을 통해 그분이 사는 공간을 짐작하고 상상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남의 공간 엿보기를 좋아하는 변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람 사는 공간에 관심이 많다. 한 사람이 살아낸 매일의 성실함과 고단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취향이 담긴 공간을 보며 나도 모르게 꿈을 꾼다. 미국에서 한국어 책이 그리운 분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공간, 차와 커피 향이 가득하고 영업이 끝날 무렵에는 싱잉볼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을 풀가동하다가 현실로 돌아와 '그러려면 대체 얼마가 필요한 거지?' 계산기를 때리고 있지만 말이다.


내가 책을 다 읽지 못해도 그 공간에 꽂아 두면 되는 거니까, 책 쇼핑에 쓰는 돈은 별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존 물건 쇼핑은 줄여도 책 쇼핑은 줄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값은 아깝지 않지만, 책은 쌓으라고 있는 게 아니라, 읽으라고 있는 거라는 사실도 상기시킨다. 책과 나무가 숨 쉬는 나의 공간이 누군가에게도 휴식의 장소가 되길 바라며, 언젠가 꿈의 공간을 짓기 위해 오늘도 바지런히 살아본다.


 현재의 서재를 바라보며 미래의 서재를 꿈꾼다


#실리콘밸리 #해외비혼 #1인가구 #내집마련 #해외생활 #미국정착 #한국어책 #모국어 #항수병 #외로움 #독서 #글쓰기 #작가의공간 #미래의서재 #책과나무가숨쉬는공간

이전 16화 16. 캘리포니아 식집사의 그린그린한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