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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Sep 08. 2022

13. 고작 몇 개 지원했다고 벌써 포기야

#13. 미국 취업에 불을 지피다


“고작 몇 개 지원했다고 벌써 포기야?”


친구가 내게 따지듯이 물었다. 졸업 후에는 모두 취업 준비에 몰두했다. 나는 보통 집에서 취업 서류 작업을 했고, 운동 겸 줌바 수업에 다니며 가끔 친구들과 캐치업을 하곤 했다. 어느 주말, 줌바 수업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친구는 내게 취업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물었다. 여전히 한국 귀국과 미국 취업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던 나는, “그냥 잘 준비하고 있어.” 대답하며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 녀석은 집요했다.


“몇 개나 지원했는데?”


“글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각색해서 제대로 제출한 건 한 10개 정도?”


친구는 길을 걷다 멈춰 서서, 나를 한심한 표정으로, 아니 화난 표정으로 한참 쳐다봤다.


“뭐... 10개?! 너 고작 10개 지원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니? OO 선배는 A사에 들어가기 전에 몇 개 제출했는지 알아? XX 선배는 어떻고! (블라블라...)”


모두 ‘안물안궁’인 정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고, 지난해 구직하다 한국으로 돌아간 선배를 통해, 미국 취업이 얼마나 힘든지 이미 간접 체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신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미국 취업 시장에서 진흙탕 같은 전쟁을 할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유학 준비와 출국 1년 반, 석사 과정까지 1년 반, 총 3년을 고생했으니, 이제 나도 금의환향해 다리 뻗고 편하게 살고 싶었다. '꿈의 직장 몇 군데 지원하다 안 되면, 나름 업그레이드된 스펙으로 휴직한 회사에 복직하면 되지' 하는 안이한 생각도 있었다.


출처: MBC 무한도전

친구는 미국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의 평균 데이터를 보면, 100개 넘게 이력서를 넣고, 적어도 10번 넘게 온사이트 인터뷰를 보고 나서야 잡 오퍼를 받았다고 열변을 토했다. 본인도 지난가을부터 시작해 50개는 넘게 지원했다고, 10개가 뭐냐고 하며 혀를 끌끌 찼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언쟁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래, 나도 열심히 해볼게"라고 간단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상황을 외면하려 애썼지만 잘 되진 않았다. 밥을 먹고, 드라마도 보고, 샤워도 해보고, 계속 주의를 분산시켰다. 잠자리에서도 친구의 말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고작 몇 개 지원했다고 벌써 포기야?” 나보다 어린 그 녀석의 나무라는 듯한 말투가 괘씸하기도 했고, ‘한국과 중국은 임금 자체가 달라...’라며 현실적인 핑계도 대보았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녀석의 말은 짜증 날 정도로 일리가 있었다. 미국에서 힘들게 석사까지 했고 OPT라는 제도도 있는데, 시도도 해보지 않고 한국에 돌아가려는 안이한 내가 부끄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며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일어나 나는 엑셀 파일을 열었다. ‘회사명, 보직, 지원 및 인터뷰 여부, 데드라인, 연락처, 웹사이트, 잘한 점, 못한 점’ 이런 식으로 칼럼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원한 10개의 회사 관련 데이터를 채웠고, 이날부터 ‘나의 미국 취업 일지(target company listing)’에 성공과 실패 데이터를 쌓기 시작했다.

엑셀 파일에 취업 일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졸업 여행


며칠 후,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미국 남부로 졸업 여행을 함께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산타바바라(Santa Barbara)의 한 스타트업에 취직한 친구 자리 잡는 것도 도와줄 겸, 다른 동기가 사는 샌디에이고(San Diego)에 들러 관광도 할 겸 졸업 여행을 떠나자는 것이었다. ‘언제는 취업 준비 제대로 안 한다고 뭐라 그러더니...!’ 난 취업 준비도 해야 하고, 생각지 못한 여행 경비라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어차피 연말이고 지금 지원해 봤자 어떤 회사도 답을 주지 않을 거라며, 여행 다녀와서 열심히 하면 된다고 나를 집요하게 꼬셨다.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미국 여행 한번 제대로 못 하고 가는 것은 조금 슬플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을 환기하고 싶던 차에, 눈 딱 감고 그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버렸다.


산타바바라, 언덕 위의 스타트업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미국 남부의 ‘산타바바라’라는 도시였다. 우리 반 ‘최연소 천재 소녀’ 중국인 동기가 이곳 스타트업에 UX 디자이너로 취직해 이사 오게 된 것이다. 2박 3일 동안 우리는 산타바바라 시내를 관광하며 그녀의 정착을 도와주었다. 한국인들은 가끔 중국인을 ‘짱개’라고 폄하할 때가 있다. 나도 가끔 편법이나 권모술수가 지나친 중국인 동료를 보며 동조한 적도 있지만, 중국인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며 그들의 의리와 미풍양속을 엿볼 기회가 많았다.


해외 생활하는 한국인들은 보면, 대부분 ‘각개전투’하는 반면, 중국인들은 지지고 볶고 싸울 때도 많지만 결국 동포끼리 돕고 나누는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본인보다 일찍 취직해 자리 잡는 걸 보고 질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린 친구의 첫 미국 정착을 도와주는 모습이 예뻤다. 미국에서 중국 이민자를 보며 ‘이것이 대륙 마인드인가?’하고 감탄한 적이 더 많다. 자잘한 것은 넘기고, 큰 그림에 집중하는 모습이 대륙의 스케일을 입증해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glassdoor

천재 소녀가 취직한 스타트업은 산타바바라 시내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간식을 사 들고 가, 그녀가 곧 일하게 될 회사 뒷마당에서 피크닉을 했다. 도심 한복판의 시멘트 건물이 아닌 언덕 위의 스타트업이라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게다가 대기업도 아닌데, 외국인 학생의 H1B 비자를 지원해 준다고 하니 그 또한 신기했다.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에 지원해 보는 것도 방법이겠구나.’ 스타트업에서도 취업 비자를 지원해 준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미 취업한 친구를 보며 '미국 직장 생활에 대한 로망'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샌디에이고, 동화 속 미국 가정집

산타바바라 여행 이후 찾아간 곳은 샌디에이고였다. 친하게 지내던 동기가 이곳에 살고 있었고, 집에 남는 방이 많아 호텔 대신 그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아파트나 원룸 스튜디오에서만 생활하다 구경하게 된 친구의 미국 가정집은 그야말로 으리으리했다. 학생 때부터 유일하게 자가용을 몰고 다녔던 이 중국계 미국인 친구는 우리와 삶의 스케일이 달랐다. 한인 마트에서 장을 봐야 하는 동기들을 차로 태워주곤 해서, 농담 반 진담 반, 그녀를 ‘부르주아 S’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입학 전 이미 결혼해서 집도 마련한 상태였고, 한마디로 우리가 미국에서 꿈꾸는 미래를 이미 살고 있는 친구였다.


우리는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고 가라오케로 워밍업을 했다. H-mart에서 장을 보고, 핫 팟(hot pot)을 먹으며 졸업을 자축했다.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미국 회사 생활에 대한 에피소드도 듣고, 취업에 대한 걱정과 희망을 나누며 밤을 지새웠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내기
핫 팟 & 가라오케 나이트


샌디에이고의 유명 관광지인 샌디에이고 동물원(San Diego Zoo)과 씨월드(Sea World)에서 미국의 놀이공원을 경험하고, 저녁에는 발보아 공원(Balboa Park)을 산책하며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석양을 감상했다. 


캘리포니아 분위기는 시카고와 사뭇 달랐다. 시카고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인 샵도 참 많았고, 아시아 식료품점도 곳곳에 있었다. 꼭 1970년대의 한국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플라자에서는 반가움과 신기함에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씨월드(Sea World)와 발보아 공원(Balboa Park
Dirty Crab과 70년대 분위기의 플라자


우리가 함께 했으면 좋겠어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공부하면서 이 친구들을 가끔 경쟁자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보다 젊고 머리도 팽팽 돌아가고, 체력적으로 팔팔한, 늦깎이 유학생이 이겨 먹기에는 힘에 부치는 저력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또한 나는 한국인이고, 그들은 중국인이지 않은가. 졸업 후 각자의 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지면 과연 연락이나 하고 지낼까.


여행 중, 그 친구에게 진심을 털어놓을 기회가 있었다. 지난번 네가 “몇 개나 지원했는데 벌써 포기야?” 하며 화내듯 나무랐을 때, 좀 열받았었다고, 속상했다고. 그리고 물어봤다.


“내가 미국에서 취업하면, 사실 너에겐 취업 비자 경쟁자가 한 명 더 생기는 거나 다름없는데, 왜 그렇게 푸시하는지 좀 이해가 안 돼.”


“나는 우리가 함께했으면 좋겠어. 이번 여행도 너무 재밌었잖아. 앞으로도 재밌을 거고.”


이런 쿨한 녀석을 봤나. 방금 ‘우리’라고 한 건가...? 1년 반 동안 친구들과 붙어 다니며 친하게 지냈음에도, ‘우리’라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중국/대만인 그룹이고, 나는 소수 민족 한국인이니까. 현지 취업에 성공하면 미국에 남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겠지. 내가 K-pop, K-drama의 나라, 한국에서 왔으니, 신기한 마음에 그냥 친구가 되어준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었다. 그런 나를 ‘우리’로 포함해 준 친구가 고마웠고, 취업에 소극적이라고 나무랐던 말도 함께 졸업여행을 떠나자는 말도 그제야 진심으로 다가왔다.




12월의 졸업 여행은 새로운 것에 호기심 만빵인 나에게, 아직 베일에 싸인 미국 생활도 나름 재밌을 거라는 ‘clue ’를 던져주었다. 천재 소녀가 취직한 산타바바라 스타트업에서의 피크닉은 미국 회사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었고, 샌디에이고 토박이 친구를 통해 엿보게 된 미국 생활은 꽤 평화롭고 멋져 보였다. 동심으로 돌아가 일주일 치 체력을 불태웠던 샌디에이고 동물원과 씨월드 놀이공원에서의 추억은, 미국에 머물며 더 많은 곳을 보고 체험하고 싶다는 열망에 불을 지폈다.


© kimsondoan, 출처 Unsplash

잊지 못할 졸업여행의 기억을 안고 시카고로 돌아오니 어느덧 해가 바뀌어 있었다. 새해를 맞아 나도 안이한 마음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설령 취업이 되지 않아 3월 말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남은 3개월만큼은 후회 없이 보내고 싶었다.


미국 취업의 언저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황하던 나를 정신 차리게 해 준 뿅망치는 바로 ‘우정’이었다. 때로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대한 사건이 아닌, 소소해서 알아보기도 힘든 일상의 작은 사건들이다. 친구의 뼈 때리는 한 마디와 우연히 떠나게 된 졸업여행이, 꿈쩍하지도 않았던 내 마음을 움직였다. 3개월간의 취업 전쟁이 시작되었다. 




※ 이미지 출처: 지나쥬르 사진첩, 나봄 작가 블로그, MBC 무한도전 짤 모음, Glassdoor,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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