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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Sep 01. 2022

12. 내가 느낀 미국 유학의 장단점

#12. 졸업식, 취업 전선 속으로


여름 인턴십이 끝나고, 또 한 번의 가을 학기가 찾아왔다. 취업 전선 속으로 성큼 다가선 느낌이었다.


이제 곧 졸업하면 취업의 관문이 남아있기에, 5학기는 학점을 채울 수 있는 정도로만 수업을 듣는 분위기였다. 또한 학교 커리어 센터와 시카고 주변 회사들이 함께 주최하는 네트워킹 행사가 유난히 많았다. 여전히 한국 귀국과 미국 취업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지만, 네트워킹 행사는 어떤 길로 가더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최대한 많이 참여했다.  


학점 따기와 취업 준비로 각자 분주한 와중에도 동기들과 종종 모임을 했다. 우리는 곧 맞이하게 될 졸업식과 헤어짐의 순간들을 벌써 상상하고 있었다. 1년 반 동안 정들었던 캠퍼스를 떠날 생각을 하니, 아쉬움과 착잡함이 몰려오는 듯했다.


가을의 캠퍼스, 마지막 학기 모임   © 지나쥬르


벌써 졸업식인가...!


5학기는 그렇게 '순삭'이었고, 졸업식 날이 되었다. ‘와... 벌써 졸업인 건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나절 졸업식을 위해 장거리 티켓을 끊어 미국까지 오실 부모님은 설마 없겠지 생각했는데, 꽤 많은 부모님이 참석하신 걸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와, 내가 그동안 이렇게 부잣집 자제들과 함께 공부했던 건가... 부모님과 함께 기념사진 찍는 친구들을 한참 부럽고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 나도 추억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친구들과 교수님과 사진을 찍어 댔지만, 마음 한편 쓸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저녁에 친구들과 모임이 있으니, 그때 회포를 풀어야겠다!’ 생각하며 외로움을 쫓아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뽀득거리는 눈은 ASMR처럼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눈 덮인 교정을 씩씩하게 걸어 나왔다.


친구들과 졸업 기념샷
눈 덮인 교정, 많이 그리울 거야   © 지나쥬르


미국 유학의 허와 실


1년 반의 미국 대학원 생활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늦깎이 유학생의 캠퍼스 일지는 졸업식을 기점으로 마무리해 본다. 혹자가 그렇게 사재를 털어 미국 유학을 했더니 뭐가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장단점이 있다. 단점부터 얘기해 보겠지만, 이 글에서는 단점을 그리 부각하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읽는 몇몇 독자분들은 ‘미국 유학이나 이민’을 꿈꾸고 계실 텐데, 벌써 찬물을 끼얹어 조금 남아있던 희망까지 뺏고 싶지는 않아서이다. 꿈에 부풀어 희망차게 시작해도 힘든 것이 미국 유학과 이민 생활이다. 하지만 장밋빛 꿈만을 안고 미국에 오는 건, 아무런 장비 없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 따라서 본인이 느꼈던 현실적인 단점을 공유해 보자면 다음의 세 가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I. 미국 유학의 단점



1. 첫째 둘째도 셋째도 비용이 많이 든다

물론 이 부분은 학교/국가에서 장학금을 받고 오거나 부모님께 상당 부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해소될 수 있다. 나의 경우, 9년간의 직장 생활하며 모은 사재를 다 때려 부었으니, 졸업 후에는 '0'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막막함이 컸다. 당시로서는 ROI(투자 대비 수익률)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내 인생에서 가장 리스크가 컸던 도박이자 투자였다.


2. 한국 사회가 부여하는 가치에 반함

한국 사회도 이제 많이 달라져, 여전히 이것이 유효한지 몰라 조심스럽다. 당시 내가 유학 가게 되었다고 하면 지인의 80%는 이렇게 물어봤다. “결혼은...?” 나는 애초에 ‘결혼이나 육아에는 자고로 적령기가 있다는 한국 사회의 가치’에 부합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이런 가치에 얽매인다면, 사실 해외로 발걸음을 떼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 있다.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기가 센 사람은 아니었지만, 미국으로 떠나는 후련함이 한국에 남아 경력을 쌓으면서 느끼게 될 패배감과 부담감보다 훨씬 컸다.


3. 미국 유학이 꿈의 직장 취업으로 반드시 결되지는 않는다

석사 학위를 땄다고 해서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석사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 더 영어에 자신감이 붙었고, 실용 학문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나의 세계관은 조금 더 넓어졌다. 이 모든 것이 ‘급진적 변화’가 아닌 ‘점진적 변화’였다. 이렇게 나름 업그레이드했다고 해서, 모든 꿈의 직장이 나를 두 팔 벌려 반기는 것도 아니다. 마치 미국 석사 학위가 모든 직장의 'Hi-Pass'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 기수 전 선배들은 모두 귀국했고, 한국에서 원하는 직장을 찾을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귀국해서 미국에서보다 훨씬 더 좋은 기회를 찾는 분들도 있다) 우리 기수 중 한 명은 개인 사정으로 귀국하고, 두 명이 미국에 남게 되었다. 해마다 미국 취업과 비자 상황은 수시로 변하니 (+개인의 운도 작용하니) 딱히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씀드리기는 힘들 것 같다.


그에 반해, 내가 느낀 미국 유학의 장점은 다음과 같았다.



II. 미국 유학의 장점



1. 해외 학위에 대한 콤플렉스 해소

앞의 글 <미국 유학이 대체 뭐길래>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국 유학 전 다니던 회사가 ‘영어 실력을 매우 중요시하는’ 회사였다. 다른 회사에 다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이 회사에 다니며 해외 학위가 없다는 점이 항상 걸림돌로 작용했고, 그것이 내 안에서 점점 큰 콤플렉스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미국 유학을 통해, 이 콤플렉스가 더 커지지 않게 막았다고 볼 수 있다.


2. 실용 학문에 대한 갈증 해결

학부에서 ‘불어불문’을 전공하고 산업 현장의 일꾼이 된 나는, 경영/경제를 전공하지 않은 것이 보직 이동이나 이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첫 직장은 경/경 지식 없이, 전공 외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면 일을 잘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마케팅이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쪽으로 이직하려고 하니, ‘불어불문’ 전공이 한계로 작용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경영/경제/마케팅 등 실용 학문을 언젠가는 공부하고 싶다는 (이왕이면 해외 석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직장 2년 차부터 해왔었다.


© eejermaine, 출처 Unsplash

3. 거리두기를 통한 ‘씻김굿

위의 두 가지 항목에 대한 갈증이 지속되었음에도, 나는 꽤 오랫동안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개인의 역량을 집안 배경, 학위, 결혼 여부와 결속시켜 생각하는 K-직장에 넌더리가 나고서야, 나를 구출해낼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오래전 학부 때 써먹었던 특단의 조치, 바로 ‘거리두기와 떠남의 묘법'이 생각났다. 인간관계에 진력이 났던 대학교 2학년 말 결정한 1년간의 프랑스 어학연수라는 거리두기는 나를 살렸다. 잠시 떠났다 돌아오니, 2년간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그사이 좋지 않은 인연도 다 정리되었다. 미국 유학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힘들게 했던 상황과 인연과의 거리두기는, 마치 ‘씻김굿’처럼 아무리 바퀴를 굴려도 빠져나올 수 없는 진흙탕 같은 상황에서 나를 빠져나오게 도와주었다.


4.  발견

유학 생활을 통해 나의 새로운 면모도 발견했다. 현실감 제로인 INFJ 불문학도는 새로운 땅에서 좌충우돌하며 서바이벌 기술을 갈고닦았고, 땅에 처박혀 도통 나오지 않은 것 같은 현실 감각도 조금씩 장착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나는 항상 조용하고 내향적인 사람으로 비쳤다. 필요할 때 자기주장을 잘하지 못하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바보같이 물러 터진 인간 젤리. 길을 지나가다 ‘도를 아세요?’님들이 미친 듯이 따라붙는 사람, 그런 어리바리해 보이는 내가 지긋지긋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밖에 나와보니, 나는 생각보다 용감무쌍했고, 때로 적극적일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외국인이라고 개무시하고 짓궂게 구는 현지인에게 바로 왈왈거리지는 못해도, 나의 때를 기다렸다가 조용히 복수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이 모든 것이 ‘새로운 환경이 주는 선물’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마 가장 궁금해하실 부분.


© fabster74, 출처 Unsplash

5. 법적으로 이민할  있는 가장 깔끔한 방법의 하나

미국 이민에는 너무 다양한 방법이 있어, 이 부분 또한 말씀드리기 조심스럽다. 현재 알고 있는 미국 이민 비자 카테고리만 해도 8개다. 본인이 이민 변호사도 아니고, 어떤 방법이 가장 쉽고 효과적인 이민이라고 말씀드릴 입장은 아니지만, 일단 개인 경험만을 바탕으로 얘기해 보겠다. 미국에 정착하게 된 주변인들을 보았을 때, ‘미국 석사’는 미국 취업 비자에 이어 영주권까지 받을 수 있는 가장 깔끔한 방법의 하나다.


물론 한국계 회사에서 미국에 파견되었다가 영주권까지 신청해 미국에서 거주하게 된 운 좋은 케이스도 보았고, 미국 시민권자와의 ‘결혼’을 통해 취업 비자도 거치지 않고 바로 영주권을 취득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개인적으로 ‘결혼’은 나의 의지보다는 ‘신의 영역’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라, (사랑으로 하는 결혼이 아닌) 결혼을 통해 신분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친구들을 보면 조금 안타까웠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신분 문제는 누구에게나 절실한 생존의 영역이기에, 이에 대한 비판의 시선은 없다.


본인은 처음부터 ‘미국 이민’을 염두에 두고 미국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이민 과정을 모두 겪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 석사’가 주는 전문성이 취업비자나 영주권 취득 과정에서 발휘하는 위력을 어느 정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상 미국 유학의 장단점에 대해 지금 떠오르는 단상 위주로 정리해 보았는데, 생각이 더 정리되면, <나 홀로 이민 - 취업 편>에서 더 자세한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유학과 이민 케이스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니, 본인의 케이스는 하나의 데이터 포인트 정도로 참고해 주셨으면 좋겠다.


3개월의 시간이 주어지다


© jplenio, 출처 Pixabay

졸업과 동시에 3개월의 체류 기간이 주어졌다. 3개월 내 미국에서 취업하면 1년간의 OPT (선택적 실습 교육, Optional Practical Training)를 통해 미국 경력을 쌓을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일단은 3개월 머물며 취업 시도를 해보기로 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적극적으로 취업 전쟁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별 성과도 없이 친구들을 따라 한량처럼 줌바나 추러 다니는 내가 좀 한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던진 한마디와 우연히 떠나게 된 졸업 여행으로 나는 미친 듯이 취업 준비에 스퍼트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 석사 학위만 따면 한국에 돌아가려고 했던 계획에서 급 항로를 변경했고, 나는 ‘미국 취업’이라는 또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항해하기 시작했다.




※ 이미지 출처: 지나쥬르 사진첩, Unsplash, Pixabay


p.s. 8월 31일은 제가 10년 전 짐 가방 두 개와 함께 미국 땅에 착륙한 날이기도 합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미국 이민 10주년을 맞아 이 글을 올리며 자축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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