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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Aug 25. 2022

11. 인턴십, 취업에 얼마나 중요할까?

#11. 한여름 미술관 인턴십의 추억


인턴십이 시작되는 여름, 4학기를 맞이했다. 바람의 도시, 시카고의 겨울을 매섭다. 매서움을 보상해주는 것 같은 최고의 계절, 여름이 찾아왔다.


학교에서는 여름 학기를 ‘Summer Immersion Quarter’라 불렀다. 각자 배정된 회사에서 인턴십 프로젝트에 ‘몰입’ 한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 붙였다. 인턴십은 취업의 첫 관문이자,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미국 첫 직장이라는 의미가 있었으니, 기대와 두려움 반반으로 인턴십 발표를 기다렸다.


인턴십 대소동


6월의 어느 날, 팀 배정 발표가 났다. 회사, 프로젝트명과 함께 배정받은 팀원들 이름이 공지되었고, G사처럼 이력서에 한 줄 쓰는 것만으로도 간지 나는 회사에 배정받은 아이들은 의기양양했고, 인지도 낮은 회사나 스타트업, 비영리 기관에서 일하게 된 아이들은 울상이 되었다. 미술관 프로젝트에 배정된 나는 덤덤하게 보이려고 애썼지만, 현실적인 걱정이 앞섰다. ‘자본주의의 끝판왕, 미국에서 미술관 인턴십이 취업에 과연 도움이 될까?'


장 자크 상페의 <꼬마 니꼴라> 삽화

미국 현지인들은 비자 문제가 없으니 인턴십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반면, 죽어도 본국에 돌아가기 싫어했던, 시민권을 목표로 미국에 온 중국, 대만계 학생들 사이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인턴십 프로젝트가 ‘이력서 첫 줄’을 장식할 것이고, 그런 만큼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친구와 한바탕 싸우고 우는 아이, 대기업 프로젝트에 배정된 친구를 질투하는 아이, 친구가 G사 캠퍼스에서 일하게 된 것이 배 아픈 아이... 세상에, 와글와글 시끌벅적 ‘꼬마 니꼴라’ 반이 따로 없었다 (얘들아, 우리, 대학원생 맞니? ㅎㅎ). 


심지어 담당자에게 항의 이메일을 보낸 동기들도 있다 보니, 학교에서는 인턴십 선정 기준에 대한 ‘Q&A’ 세션을 마련했다. 인턴십 배정은 교수님의 의견, 학생의 배경, 학점, 다양성 등이 모두 고려된 결정이었을 텐데, 마치 청문회의 죄인처럼 서 있던 담당자는 얼마나 심적으로 힘들었을까. 며칠이 지나고 우리는 각자의 ‘숙명’을 받아들였다.


인턴십, 취업에 얼마나 중요할까?

인턴십을 꼭 브랜드 네임이 빵빵한 대기업에서 해야 할까? 외국인 학생들에게 ‘인턴십’은 둘도 없는 소중한 기회다. 미국 경력이 없는 외국인 학생들은 마치 인턴십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취업 시 중요한 것은 인턴십을 했던 회사의 브랜드 네임이 아니라,


1. 해당 프로젝트에서 본인이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2. 어떤 결과물을 냈는지

3. 무엇을 배웠는지 (해당 'skill set'으로 지원하는 회사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이다.


인턴십 이력서 한 줄로 ‘인생 역전’을 꿈꾸기에는 인생은 그리 만만치 않다. 당시에는 생각과 견문이 좁아, 동기들은 다 영리 기업에 배정받았는데, 나만 미술관에서 일하게 된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니 비로소 중요한 것이 눈에 보인다. 내게 인턴십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 약간의 실수 정도는 눈감아주는 안전한 환경에서 일을 배울 기회’라 말씀드리고 싶다. 학부 때 인턴십 경력을 더 이상 이력서에 쓰지 않는 것처럼, 언젠가는 이 ‘미술관 인턴십’ 한 줄도 내 이력서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만일 ‘인턴십’을 통해 반드시 미국 취업을 이루고 싶은 분이 있다면, 차라리 ‘개인 인턴십’을 할 수 있는 MBA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개인 인턴십을 하더라도, 취업 여부는 그 사람의 역량과 운에 달렸지만, 그래도 그룹 프로젝트보다는 승률이 높아질 테니 말이다. 




본인은 석사 인턴십으로 '그룹 프로젝트'를 했지만, 두 번째 미국 직장 인터뷰 시,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만 20분 넘게 질문을 받을 만큼 큰 도움이 되었다. 미국 인턴십에서는 어떤 종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 한여름의 기억을 소환해 보겠다.


미술관에서 보낸 시카고의 여름


I. 작전 회의


인턴십 발표가 나자마자 우리 팀은 작전 회의에 돌입했다. 미술관 프로젝트 목표는 ‘OO 미술관에 특정 인구통계학적 그룹(demographic group)의 방문이 줄어드는 이유를 분석하고, 그들을 다시 유치할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프로젝트가 ‘다양성'에 관한 것인 만큼 유럽계 미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동양인 등, 팀원도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미술관 담당자와 프로젝트 브리핑이 있었고, 지도 교수님과도 앞으로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할지 전략 회의를 몇 차례 가졌다. 우리가 활용한 연구 방법론은 다음과 같았다.


1. 인터뷰: 미술관 잠재 고객 30여 명 인터뷰

2. 관찰: 시카고 시내, 근교 미술관, 박물관, 아쿠아리움, 문화 행사 현장 답사 및 관찰

3. 데이터 분석: 미국 인구통계 데이터 및 우편번호 분석


위에서 보시다시피 민족지학(ethnography)과 같은 정성적 연구(qualitative research)*와 데이터 분석에 중점을 두는 정량적 연구(quantitative research)*를 골고루 섞었다. 위의 세 가지 방법론은 현재 일에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아래 각주 참고)


1. 인터뷰


우리 팀은 100여 명의 미술관 잠재 고객에게 이메일을 보내, 약 3분의 1의 고객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한 사람당 5~6개의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일을 분담했다. 인터뷰이가 이동하기 편한 시카고 다운타운 커피숍에서 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녹음해야 했기 때문에 조용한 장소를 찾았다.


이런 종류의 인터뷰는 ‘훅 치고’ 들어가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인터뷰이와의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워밍업 질문을 한 후, 점점 깊게 들어간다. 예를 들어, “당신은 왜 OO 미술관에 안 오십니까?”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평소 어떤 예술, 문화 활동을 즐기는지, 어느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주로 방문하는지, 이유는 무엇인지' 등, 인터뷰이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알아가는 데 집중한다.


중간에 대화가 막힐 때, 주위를 환기하는 방법은 해당 대상(미술관)을 사람이나 동물에 비유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인터뷰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기 있는 답변을 끌어낸다. 


“OO 미술관을 사람에 비유하면 어떤 모습일까요?”

"음... 유럽계 미국인, 다시 말하면 White Museum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탐색 질문)

“우리를 위한 전시회는 별로 없고, 돈 많은 유럽 관광객들이 여름휴가 때만 찾는 미술관이니까요."


위와 같이 질문과 답변, 다시 한번 탐색 질문(probing)하는 과정을 통해, OO 미술관에는 인터뷰이가 속한 문화권과의 동질감을 형성할 만한 전시 소가 없다는 인사이트를 도출한다.


인터뷰에서 언급된 주제들(themes)을 그룹화(grouping)하기 위한 브레인스토밍 세션


2. 관찰


인터뷰에서 많이 언급된 미술관, 박물관, 전시회에는 직접 가서 '현장 관찰 조사’를 했다. 당시 시카고 시내 및 근교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를 검색해 가보기도 했다. 예를 들어, OO 미술관뿐 아니라, 시카고 밀레니얼 파크(Millennial Park) 야외 공연, 근교 소규모 미술관 및 쉐드 아쿠아리움(Shedd Aquarium)의 야외 이벤트(Jazzin' at the Shedd)에 참여해, ‘방문객인 척하며' 방문객을 관찰했다. 어떤 그림과 전시물 앞에 오래 서 있는지, 연령대별로 어떤 전시에 관심이 있는지, 인종마다 관심사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 메모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총 75시간의 현장 답사 및 관찰 조사를 마쳤다.


Shedd Aquarium에서 보이는 시카고 스카이라인: 낮에 가 해 질 녘까지 관찰 조사를 했다


3. 데이터 분석


마지막으로 우리는 미국 인구통계 데이터를 구해, 어느 지역에 해당 그룹이 많이 거주하는지, 지역에 따른 교육, 소득, 직업군은 어떻게 다른지 등을 분석했다. 우편 번호(zip code) 분석을 통해, 어떤 지역이 마케팅 캠페인에 가장 잘 반응할지를 정하기 위한 제반 작업이었다. 1. 인터뷰, 2. 관찰 등 정성적 리서치에, 좀 더 객관적인 정량적인 리서치를 가미했다.


현장 답사가 없는 날은 미술관 방을 빌려 일했다   © 지나쥬르


II. 한여름 다락방의 기억들


인턴십 발표를 들었을 때 실망감과는 달리, 이게 내 운명이었나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배움 가득한 프로젝트였다. 교과서로만 배웠던 미국의 '소수 인종'과 '다양성' 문제에 대해, 당사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미국에서 유색 인종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민족의 삶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일종의 연대감을 느끼기도 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날에는,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녹취 (transcription)를 했다. 녹음기를 틀고, 인터뷰 내용을 수기로 노트 한 바닥에 받아 적은 후, 워드 파일에 타이핑하는 식이었다. 한 사람 인터뷰가 1시간이 좀 넘는 분량이었으니,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녹취하려면 4~5시간은 족히 걸렸다. 그렇게 총 30여 시간의 영어 받아쓰기(?)를 했다.


그때 그 장면은 흑백 영화의 한 처럼 생생하다. 천장에 붙은 고물 선풍기는 슬로 모션으로 탈탈 돌아가고, 민소매만 입었는데도 땀이 나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녹취하던 그 한여름의 다락방을. 인터뷰 녹취 하나를 끝내면, 침대에 철퍼덕 엎어져 대여섯 시간을 잤던 것 같다.



III. 앙코르 프레젠테이션


성실한 팀원들과 팀워크를 이루어 별 탈 없이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었다. 우리는 시카고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10여 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고, 함께 30여 개의 인터뷰와 관찰 조사를 진행하며 친해졌다. 매일 브레인스토밍 및 토론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나의 세계는 확장되었다. 


왼쪽부터 Shedd Acquarium, DuSable Museum, Smart Museum   © 지나쥬르


결과도 좋았다. 미술관 담당자는 "사실 동일 프로젝트를 유명 컨설팅사에 맡겼는데, 너희 프레젠테이션만큼 통찰력 있지는 않았다."라며, 프로젝트 결과에 만족감을 표했다. 우리는 첫 번째 발표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어 미술관 위원회의 요청으로 '앙코르 프레젠테이션'까지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열심히 일한 병아리 인턴에게 예의상 하는 말이겠지 했는데, 미술관 비공개 파티가 있을 때마다 지인들을 다 초대해도 좋다는 서프라이즈까지 선물해 주었다.


Cheers to our teamwork!
불금의 미술관 나들이   © 지나쥬르


한여름의 선물과도 같았던 인턴십


이 프로젝트는 내게 크게 다섯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1. 미국 사회의 (동양계 외) 또 다른 소수 인종 그룹을 인터뷰하며 다양성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 교과서 같은 영어만 알아먹었던 내가, 구수한 악센트가 섞인 영어 발음까지 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은 덤)

2. 시카고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3. 미국 현지인으로만 구성된 그룹에서 처음으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감 있게 내 몫을 해냈다.

4. 두 번째 직장 이직 시, 채용 담당자가 가장 관심을 보인 프로젝트 바로 이것이었다.

5. 이후 미술관은 친구들과 내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장소 되었다.


친구들과의 본딩(bonding) 장소가 된 미술관


미술관과 함께 보낸 시카고의 여름은 내 인생 최고의 인턴십으로 기억될 것이다. 근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었다. 인턴십으로 다른 주로 파견되었던 친구들이 하나둘 돌아오며 마지막 5학기가 시작되었다.


한여름의 선물과도 같았던 추억을 안고, 취업 시즌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지나쥬르 사진첩, <꼬마 니꼴라> 삽화


※ 정성적 vs. 정량적 연구 (출처: 위키백과)

정성적 연구 (질적 연구, qualitative research): 수치화되지 않는 자료, 예를 들면 인터뷰, 관찰 결과, 문서, 그림, 역사 기록 등 질적 자료를 얻기 위해, 사회학과 사회 심리학, 문화 인류학 등에서 자주 사용된다. (예: 인터뷰, 포커스 그룹, 현장/관찰 조사)

정량적 연구 (양적 연구, quantitative research): 사회과학에서 통계적, 수학적, 계산적 기법을 통한, 사회 현상의 체계적인 경험적 탐구를 가리킨다. (예: 사용자 서베이, 웹사이트 애널리틱스, A/B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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