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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Aug 10. 2022

9. 미국 대학원, 전공 선택의 갈림길에서 헤맬 때

#9. 전공 선택 시 고려할 이것


1학기 말, 우리는 전공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데이터 애널리틱스 (Data Analytics),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Brand Communications), 이 두 트랙 중 어느 전공으로 갈 것이냐.


타지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었던 1학기를 보내던 어느 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2학기 때부터는 위의 두 가지 트랙 중 하나를 선택해, 그에 따라 전공과목들을 골라야 한다고.


나는 IMC (통합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고, 당시 이 프로그램에는 위의 두 가지 전공 트랙이 있었다, 최근 학교 웹사이트를 찾아보다가, 본 석사 과정이 스템(STEM-designated program)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다. 본인이 공부할 당시 이 프로그램은 'STEM-degree'에 해당하진 않았었다. 국제 학생들에게 더 나은 미국 취업의 기회를 주기 위해, 학교에서 STEM-degree 등단을 밀어붙인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STEM: 아래 각주 참조)



1. 데이터 애널리틱스 vs.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클래스는 술렁거렸다. 대체로 수학과 통계 과목에 강하지만,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양인 학생들은 데이터 애널리틱스(Data Analytics) 트랙을, 언어에는 문제가 없지만, 수학/통계 쪽은 다소 열세인 미국 현지 학생들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Brand Communications) 트랙을 선택하는 분위기였다.


데이터냐 브랜딩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중국, 대만인 친구들은 대부분 '데이터 애널리틱스'를 선택했고, 나를 비롯해 두세 명의 동양인 친구들만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선택했다. 나는 회사도 휴직하고 온 상태였고, 그때까지만 해도 2년 남짓 석사 과정을 마치면 한국에 돌아갈 요량이었다. 물론 미국에서 정말 좋은 기회가 생기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수학과 통계학을 사랑하는 중국, 대만계 친구들은 통계학 교수님 팬클럽까지 결성하는 열정을 보였다. 난 그렇게까지 통계학을 사랑하진 않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꼽사리 끼었다. :) 아래는 기말고사 끝낸 기념으로 찍은 사진.


단체 티셔츠 맞춰 입고 치~즈! :) 'Ed is my homeboy', 즉 '교수님은 내 친구'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2. 전공 선택 시 고려할 세 가지


내가 전공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바로 ‘적성’과 ‘지속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1) 내가 관심이 있고 즐길 수 있는가? (적성) 2) 앞으로 살아가며 계속 이것을 할 수 있는가? (지속 가성)이다. 대학교 전공을 선택해야 했던 고3 때도 그랬다. 물론 ‘학부 4년’이라는 시기는 아직 산업현장 일꾼으로 출사표를 던지기 전이고, 따라서 ‘먹고사니즘’을 걱정해야 할 필요가 없기도 했지만, 나는 그때도 이 두 가지만을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가, 지속할 수 있는가. 그래서 입시 전쟁 속 팍팍한 고딩의 삶에 단비가 되어준 ‘불어’를, 별 고민 없이 학부 전공으로 선택했다. 이 전공이라면 적어도 10년은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좋아하고 열심히 하면 어쨌든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출처: 줌 허브

취업도 쉽지 않고 써먹을 때도 그다지 많지 않은 비실용적인 전공이었지만, 아직 후회는 없다. 아, 아니... 직장 3년 차, 마케팅 분야로 이직을 희망할 때, 경영학 전공자들이 훨씬 유리한 입지에 있다는 걸 눈치챘을 때, 살짝 후회한 적이 있긴 하다. '왜 이렇게 비실용적인 학문을 전공했을까, 경영 복수 전공이라도 할걸...' '문송'하던 시절, 취직으로 근심 많던 선배들이 "야, 왜 우리가 불문 전공인 줄 아냐? 전공 불문이라 그런 거야"(‘전공 불문’이라고 표기된 회사 공고가 뜨면 무조건 지원해야 한다는 뜻)라며 썰렁한 아재 개그를 날릴 때, 앞으로 내게 닥칠 어두운 미래가 걱정되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하나만을 바라봤기에, 미친 듯 몰입할 수 있었다. 학부 4년 동안 영어, 불어 과외, 통/번역 알바로 용돈을 근근이 벌어, 용돈만큼은 부모님께 크게 손을 벌릴 일은 없었다. '전공 불문'이라 취업 시장에서 찬밥신세가 될까 걱정했던 부모님과 '취업이나 할 수 있겠나?' 무시했던 몇몇 지인들의 예측을 깨고, 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프랑스계 회사에 취직했다. 내 입으로 하기 민망한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자랑질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감이 끌리는 대로 선택해도 굶어 죽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싶어서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기준은 이번에도 적용될 것이다. 졸업 후 ‘취업 기회’만을 볼 것이 아니라, 나의 ‘취향’과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이 두 가지 외에 또 하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촉’이다. '아니 잘 나가다 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멀리서 ‘우~~’하는 야유의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끝까지 들어 보시라.



3. 촉이 온다, 촉이 와


나도 인생의 나름 중요한 이벤트가 있을 때, 장단점을 차곡차곡 리스트로 정리해본다든가, ‘Importance Matrix’ 같은 사분면을 활용하는 등, 나름 꼼꼼하고 논리적인 분석에 기반해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전공 선택, 취업, 이직, 이민과 같은 일생일대 중대 사건을 결정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이 분석 도구를 다 내려놓게 되었다. 대신 ‘촉’에만 집중했다.

촉’ 또는 ‘감’이라는 것은 '한날한시 순간적인 내 감정'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인생 전반의 경험을 통해 켜켜이 쌓인 수많은 데이터 포인트 (data points)의 집약체', '다양한 사건·사고를 겪으며 세밀하게 깎이고 다듬어진 감정', 또는 '지혜의 씨앗'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인생의 큰 결정을 내릴 때, 무엇보다도 나의 촉을 따르게 되었다. 물론, 내가 ‘INFJ’ 성향이 있는 것이 이 결정 방법에 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음을 시인한다. 가끔 ‘개촉’ 일 때도 있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촉’을 통해 결정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큰 후회가 없었다.


따라서, 이번에도 적성’, ‘지속가능성’, 그리고 ‘촉’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토대로 전공을 결정했다. 당시 전체 클래스 인원 100여 명 중,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트랙을 선택한 동양인은 나를 비롯해 5명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도 당시의 결정은 괜찮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4. 졸업 후 진로 (케이스 스터디)


졸업 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트랙을 전공한 한 중국인 친구는 미국의 유명 홍보대행사에서 승승장구해 임원이 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전공을 살려, 테크 회사에서 소비자 통찰(Customer Insights)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물론 미국에서 취직이 좀 더 유리한 데이터 애널리틱스 전공을 했다면, 지금쯤 다른 길을 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 끌리는 대로 선택하는 것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증명할 수 있었다.


‘아니, 그건 당신과 당신 친구 얘기고... 요즘 그렇게 핫하다는 데이터 전공을 해야, 그나마 미국에서 취직(이 유리한 거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을 위해, 당신의 ‘촉’을 가다듬을 수 있는 몇 가지 예시를 가지고 왔다. (미국에서 취업 비자를 받아야 했던 국제 학생들의 예시만 소개합니다)


1. 적성과 취업 기회를 고려해, 데이터를 선택해 성공한 사례

- A는 데이터를 전공하고, 한 미국 백화점 Sears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다, 회사가 파산하기 전, 온라인 여행사 데이터 분석 보직으로 옮겼다, 지금은 아마존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2. 적성을 고려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선택해 성공한 사례

- B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미국 유명 홍보회사에 인턴으로 취직해, 취업비자를 받고 여러 번 승진해 같은 회사에서 상무가 되었다.


3. 취업 기회만을 고려해 데이터를 선택, 적성에 맞지 않아 결국 다른 일을 하게 된 사례

- C는 데이터 애널리틱스를 전공하고, 소규모 테크 회사에서 세일즈 업무를 하다, 동양계 테크 회사로 이직해 세일즈를 거쳐 마케팅/이벤트 업무를 하게 되었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외국인 학생들의 미국 취업에는 다양한 루트가 존재한다. C의 사례처럼, 취업에 유리한 '데이터' 트랙을 선택했지만, 결국 다른 길을 가게 된 경우도 있다.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취업비자(F-1 Visa)라는 복병이 있기 때문이다. 지름길 대신 우회를 했다고 해서, 절대 그걸 실패한 커리어라고 볼 수 없다. 나도 A, B에 비해 조금은 돌아 돌아 현재 일(Customer Insights)을 하게 되었으니까. 이 사례를 통해 드리고 싶은 얘기는, 미국에서 ‘취업 기회’만을 보고, 나의 적성과 취향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으면, 그리고 자신을 믿고 본인의 강단을 지켰으면 한다는 것이다.




전공 선택, 취업, 이직, 결혼, 이민 등 인생의 굵직굵직한 갈래에서 고민할 때, 우물쭈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조언 구하기      

- 장단점 리스트 작성해 분석해보기            

- 책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다양한 사례 찾아보기


여러 조언과 사례를 모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나만의 데이터 포인트를 증식시켜 ‘촉’을 키우는 방법이므로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하지만 누군가 조언을 해준 들, 성공한 베스트셀러 저자가 제시한 비법이든, 여느 유명 유튜버의 조언이든, 결국 내가 살아갈 인생이다. 따라서 결정적인 순간, 나는 단 하나에 의지한다.


그것은 나의 ‘촉’,

'촉'은 나의 힘이다.




 이미지 출처: 지나쥬르 사진첩, Unsplash, siliconangle.com, prweb.com


※ STEM: STEM은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의 약자로, 미국에서 STEM 전공을 선택함으로써 선택적 실습 교육(OPT, Optional Practical Training) 프로그램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학위를 취득한 유학생은 1년 동안 OPT 프로그램에 머물며 참여할 수 있으며, 이 중 STEM 학생들은 OPT 연장을 통해 추가 24개월 동안 미국 체류를 연장할 수 있다. (참고 자료: study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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