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회였다. 이번에 잡 오퍼를 받으면 미국에 남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할 것이다. OPT(선택적 실습 교육)로 취직할 수 있는 기간이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며칠 전 캘리포니아 테크 회사의 리크루터가 제안했던 보직은 바로 이노베이션 센터 대표의 '임원 비서' 포지션이었다. 취업 비자 지원도 가능하다고 했다.
리크루터의 말에 따르면, 대표님이 계속 비서로 일할 사람보다는 2~3년 임원 비서로 일하다 다른 보직으로 옮길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비서 행정 업무뿐 아니라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이벤트 플래닝 업무도 해야 하는 보직이라 단순 사무직은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회사 내외 여러 임원 및 비서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업무가 많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분야 경력이 도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금껏 200여 개의 미국 회사에 지원하며,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보직이었다. 한국 9년 경력에 미국 석사까지 하고 비서라니. 아무리 임원 비서라지만 미국에서의 첫 보직을 비서로 시작하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한국 드라마를 보며 쌓여온 ‘비서’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어떤 직업보다도 고도의 일머리와 센스를 필요로 하는 ‘비서’라는 직업을 나도 모르게 폄하했던 게 아닐까. 대통령 비서실장, 국회의원 보좌관, 로펌 비서, 기업 임원 비서 모두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인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비서를 ‘Secretary’ 대신 ‘Executive Assistant’라 부르고 전문 직종으로 분류한다.
전공에 걸맞은 그럴싸한 보직보다는 미국에 남을 수 있는 잡을 구하는 것으로 목표를 설정했기에 일단 면접을 보기로 했다. 인터뷰는 다음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1. 리크루터 스크리닝 인터뷰
2. 실무자 (현 대표 비서) 인터뷰
3. 온사이트 인터뷰 (인사팀장, 비서실장, 임원진 3명, 현 대표 비서, 이웃 팀 비서 2명)
4. 한국 지사 임원 인터뷰
5. 실무진심층 인터뷰 (인사팀장, 비서실장, 현 대표 비서), 롤 플레이, 작문 테스트
6. 대표 인터뷰
1. 온사이트(On-site) 인터뷰
리크루터와의 첫 스크리닝 인터뷰 및 실무자 인터뷰를 마치고 5일 후 연락이 왔다. 3월 초 캘리포니아 온사이트 인터뷰를 위한 여행 가능 일정을 체크했다. 여정은 바로 3일 후로 잡혔다. 이번에 인터뷰가 잘 진행되면 미국에 남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OPT 지원 기간 3개월을 채웠기에 3월 말 짐을 싸 출국해야 했다. 마지막 기회라 긴장되었지만, 장거리 온사이트 인터뷰는 처음이라 기쁨이 더 컸다. 다른 주로 출장 인터뷰 다니는 친구들을 그저 부럽게만 바라보았던 내게 ‘온사이트 인터뷰’ 기회가 찾아오다니!
비행기 차창 밖으로 보이는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눈부셨다.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회사로 향했다. 프런트 데스크에 앉아있던 오피스 매니저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인터뷰는 ‘9am to 6pm’으로 진행되었다. 인사팀장, 비서실장(Chief of Staff), 임원진 3명, 현 대표 비서, 이웃 팀 비서 2명, 이렇게 총 8분과 각각 30분에서 1시간의 인터뷰를 했다. 임원 및 여러 관계자와 일할 사람을 뽑는 인터뷰다 보니 질문에 날이 서 있었고, 혹시라도 대표님의 명성에 해가 되지 않을까 나의 반응과 대답,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느낌이었다.
석사 전공 관련 세세한 질문보다는 왜 미국에 공부하러 왔는지, 임원 비서 업무를 하며 지금까지 경력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앞으로 꿈꾸는 커리어 패스는 무엇인지 등, 큰 그림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학부 때 불문학을 전공했으니,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지, 왜 좋아하는지, 일하는 스타일 및 취미는 어떠한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전반적으로 파악하려는 질문도 있었다.
저녁 6시 반이 되어서야 모든 일정이 끝났다. 바로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돌아왔다. 비행기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햇살을 보며 생각했다.
‘과연 이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2. 실무진 심층 인터뷰
온사이트 5일 후 한국지사 임원과의 인터뷰가 잡혔고, 바로 그다음 날 실무진 3명과 심층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보직이 보직인 만큼, 그간의 경력 및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상황 판단 능력, 인성을 평가하는 질문이 많았다. 글로벌 회사라 모든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되었고, 롤 플레이, 케이스 스터디, 영어/한국어 작문 테스트가 이어졌다. 마지막 작문 테스트에서는 ‘실리콘밸리 로드 트립’에 30여 명의 임원진을 초청해 이곳의 여러 테크 회사를 방문하는 가상의 상황을 주고, 영어와 한국어로 초대장을 작성하라는 미션을 주었다. 20분의 시간이 주어졌고, 화면을 켜 놓고 진행했다. 살 떨리는 시간이었다.
3. 세상에서 젤로 무서웠던 인터뷰
총 10분의 실무자 및 임원진 인터뷰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대표님과 인터뷰가 잡혔다. 언론에도 몇 번 노출된 적이 있는 분이라, 공개된 인터뷰 기사는 모두 읽고 숙지했다. 기사를 읽고 대표님에 대해 알게 될수록 점점 더 겁이 났고, 내가 과연 이런 분과 일할 능력을 갖춘 사람인지 의문만 불어났다.
그날이 왔다. 장장 두 시간 동안 지속된 화상 인터뷰였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질문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장단점, 업무 스타일 등 기본 질문으로 시작해, 경력 및 전공 관련 질문, 미국 유학을 결심한 이유, 장기적인 목표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살얼음판을 디디는 것 같은 상황에서 기억에 또렷이 남는 두 마디가 있다.
“No 애교 is allowed in this position.”
“High 눈치 is required, OK?”
아니, 어떻게 ‘애교’라는 말을 아셨지. ‘눈치’는 또 뭐고! 한국 비서들이 애교로 곤란한 상황을 슬쩍 넘기는 걸 드라마에서 보기라도 한 걸까. 고도의 긴장감 속에 갑자기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대표님과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사실 마음이 반반이었다. ‘미국에서 첫 커리어를 임원 비서로 시작해도 괜찮을까’ 망설이는 마음이 반, ‘그래도 미국에 남고 싶다’라는 마음이 반. 하지만 인터뷰를 마친 후, 이 보직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였다.
1. 비서의 커리어 개발:대표님의 비서 고용 철학은 평생 비서로 같은 일만 하고자 하는 비서는 뽑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함께 일하며 회사의 전반적인 구조와 사업을 이해하고, 2~3년 후 마케팅, 전략, 투자/파트너십, 인사 등의 업무를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비서를 찾는다고 말씀하셨다. 다음 비서를 계속 뽑아야 하기에 본인에게는 귀찮은 이 시스템을 고수하는 이유는, 비서의 커리어 개발을 위해서라는 얘기를 들으니, 신뢰가 갔다.
2. 자립심:보직 이동 시 본인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비서 일을 하며, 스스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찾아 일하고 자력으로 팀 이동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3. 롤 모델:어차피 100세 시대라 적어도 직업을 세 번은 바꿔야 한다는데, 미국에서의 첫 직업으로 임원 비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앞으로 전공 관련 일을 할 기회는 종종 오겠지만, 한 조직의 대표를 보좌할 기회가 또 생길까. 게다가 미국에서 유색인종으로 성공하신 분이니, 옆에서 배울 것도 많으리라 생각했다.
쿵쾅거리며 나대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던 2시간 동안의 인터뷰가 끝났다. 비서의 커리어 개발까지 생각해 주시는 대표님의 철학에 신뢰가 갔고, 옆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도 많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고도의 긴장감을 매일 유지하며 일할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살얼음판을 디디며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떨어지고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으면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스쳤다. 제대로 답하지 못한 질문이 생각나 밤새 이불 킥을 했고, 맘속에서는 ‘된다 안된다’ 수백 번 동전 뒤집기를 했다.
“합격! 근데, 미국 운전면허 있어요?”
인터뷰는 잘 봤는지 못 봤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모든 질문이 어렵게 느껴졌고, 제대로 답한 질문이 하나도 없었다. 이틀째 연락이 없자 떨어졌다고 결론을 내렸다.‘그래, 파이널 라운드까지 간 게 어디야. 캘리포니아까지 온사이트 한 것만 해도 잘했어, 짜식!’ 하며 나를 위로했다. 옷장 위에 쌓인 상자를 보며, 이제부터 정리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온사이트 인터뷰 이후 3일째가 되던 늦은 저녁, 인사 팀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합격’이라고! 서둘러 업무 시작일, 연봉 협상과 관련된 미팅이 진행되었고, 이후 취업 비자(H1B Visa) 필요 서류 목록 및 이주 관련 이메일이 쏟아졌다. 합격 소식 후 나머지 과정은 눈코 뜰 새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3월 말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OPT 기간 만료로 귀국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다음 날에는 현 임원 비서가 전화해, 축하 메시지를 전하며 물어봤다.
“근데, 미국 운전면허 있어요?”
이건 웬 복병이지! 운전면허는 '지원 자격조건'에 없던 건데... 운전면허 때문에 합격이 취소될까 조마조마했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 딴 장롱면허 소지자였고, 사실대로 고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는 운전면허 없이 살 수 없는 곳이라며, 운전면허를 빠른 시일 내 땄으면 좋겠다고 푸시했다. 그날부터 캘리포니아 출발까지 1주일이 남았다. 남은 시간 동안 운전 개인 교습을 받았고, 비행기 타는 날까지 운전면허 시험을 봤지만, 똑떨어졌다. 운전면허는 결국 캘리포니아에서 땄다.
친구들아, 안녕
이삿짐 업체가 짐을 다 가져가고 나니 짐 가방 두 개와 물병만이 달랑 남았다. 짐이 다 빠진 원룸은 황량했다. 3개월간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지냈던 이곳, 가끔 생각나겠지. 출발일까지 어정쩡하게 이틀이 남아, 친구 집에 머물기로 했다. 이미 취직해, 차도 한 대 뽑은 멋진 친구는 이사 화물차가 떠난 후 나를 데리러 왔다. 졸업하자마자 자리를 잡아,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어린 친구를 보니 참 어른스러워 보였다. 각자의 자리를 찾아 다른 주(state)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우리는, 한동안 나누지 못할 수다를 떨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중 단 한 명만이 마지막 인터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카고를 떠나기 전날, 그녀는 드디어 '합격'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가 취업한 사실보다 더 기뻤던 소식은 바로 취업을 함께 준비했던 친구들이 모두 미국에 남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느 한 명도 소외감이 들지 않고 편하게 축하의 마음을 나눌 수 있어 감사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친구들, 마지막으로 담은 시카고의 하늘
3월 29일, 나는 친구들의 따뜻한 배웅 속에 시카고를 떠났다.언젠가 다시 이곳을 방문할 수 있을까. 낯선 땅에서 새로운 도전과 모험으로 벅차올랐던 순간들, 때로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시 일어섰다를 반복했던, 나의 30대 가장 찬란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