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졸업식이 있었던 12월 중순부터 3월 잡 오퍼를 받기까지, 나의 ‘미국 취업 일지’에는 200여 개의 회사 리스트가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첫 번째 스크리닝 인터뷰에서 쫑이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며 파이널 라운드까지 가는 승률이 높아졌다. 잡 오퍼와 취업 비자 지원을 약속받았던 마지막 회사 인터뷰에 이를 때까지, 항상 모자람과 아쉬운 마음이 질척이곤 했다. 그럼에도 취업 자격을 갖출 때까지의 노력을 신이 가상하게 여기셨는지, 어찌어찌 미국에 남게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3개월간 구직 기간을 거치며 느꼈던 점, 미국 취업 준비 시 염두에 둘 사항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미국 취업의 벽 - 네 나라로 돌아가> 편에서 그 미국 할아버지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듣고 짐을 싸버렸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한국에 돌아가 미국 생활 못지않게 멋진 삶을 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테크 회사에서 차별화된 경력을 쌓을 기회를 잡기는 힘들었겠지. 취업 준비를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낙담의 골짜기에 빠진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자신을 믿는 것이다. 이미 바닥을 쳤기에, 이젠올라갈 길만 남았다는 똥 배짱으로 밀어붙여 보자.
좌절감이 몰려올 때면, 구직 활동을 잠시 접고 운동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었다. 자전거로 캠퍼스를 한 바퀴를 돌거나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등 잠시 딴짓을 하다 보면, 다음 단계가 자연스럽게 생각나곤 했다.
2.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을 보라
당시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미국에서 취업해 이곳에 남고 싶어 했다. 마음이 약하고 팔랑귀인 나는, 외부 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대학원 졸업 후 본국에 돌아가고자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다면, 나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 취업의 문에서 지지부진하다 귀국할 수도 있었다.
나를 칭찬하고 옹호해 주는 친구도 좋지만, 자극을 주는 친구도 못지않게 소중하다.“고작 몇 개 지원하고 벌써 포기야?”라며 뼈 때리는 한마디를 던졌던 그 녀석 덕분에, 취업 준비에 안이했던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친구들과 우연히 떠나게 된 12월 졸업 여행은, 미국 생활도 나름 재밌을 거라는 ‘clue’를 던져주었다. 강한 내적 의지로 주변 환경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지금 막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변인 다섯 명을 평균 내면, 그것이 당신의 모습이라는 얘기도 있다. 지금 내 옆에 누가 있는지, 그들이 좋은 영향을 주는지, 인생의 장기적인 ‘자극제’가 되어주는지도 중요하다.
나는 쓸데없는 잔걱정이 많으면서도, 때로 무한 긍정 마인드로 세상을 밝게만 보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 뿌린 노력 한 톨 한 톨이 모여 나중에 잭팟을 터뜨릴 거라고 믿는 ‘비현실적 초긍정 주의자’이다.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 이런 썸네일을 보았다. <유튜브, 존버 하면 무조건 망할 수밖에 없는 충격적인 이유> 내용인즉슨, '탄탄한 전략 없이 오래 버티기만 하면' 망한다는 꽤 일리 있는 내용이었다.
미국 취업 준비 3개월은 내게 말 그대로 ‘존나 버티는’ 시간이었다. 쉽게 통과한다는 스크리닝 인터뷰에서 수차례 떨어져도, 미국 리쿠르터 할아버지의 아무 말 대잔치에도, 파이널 인터뷰까지 올라갔는데 비자 지원은 힘들 것 같다는 마지막 거절 통보에도, 무데뽀 정신으로 최대한 버텼다. 물론 전략 없이 ‘존버’만 하면 안 되겠지만, 졸업 후 3개월 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존버 정신’은 꼭 필요하다.
전략 없이 무조건 버티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온 김에, 몇 가지 취업 전략과 팁을 나눠보겠다. 나보다 훨씬 빨리, 효율적으로 미국 취업에 성공하신 분도 많을 테니, 각자 취업 전략을 짤 때 참고할 하나의 전략 템플릿 정도로 봐주셨으면 한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20%의 고객으로부터 80% 수익이 나온다’ 등의 얘기를 들어보셨을 것이다. 분산 전략은 이미 영어와 전문성이 모두 갖춰진 상태에서는 사실 필요 없을 수도 있다. 외국인 학생은 비자 등 법적인 신분을 우선 해결해야 하므로 분산 전략을 추천드리고 싶다. 괄호 안 숫자는 시간과 노력의 양을 의미.
1. Primary (80%): 전공 분야, 전문성과 관련된 가장 이상적인 1순위 직군이다. 본인의 경우엔 Brand Communications, Data Analyst, Social Media Analyst 등이 이 그룹에 속했다.
2. Secondary (10%):전공지식과 밀접한 관계가 없지만, 그간의 회사 경력과 전공을 버무리면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2순위 직군이다. 예를 들면, Sales Planning, Sales & Marketing Coordinator, Project Management 등이다.
3. Adjacent (10%):말 그대로 ‘언저리’ 직군이다. 전공과는 크게 관련 없지만, 그간 경력에서 쌓은 일머리로 해낼 수 있는 업무다. 석사까지 취득해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자존심 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목표라면 마다할 게 없다. 예를 들면, Executive Assistant, Administrative Coordinator 등이 이에 속한다.
내가 가장 가고 싶은 1) Primary 직군에 80%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이력서, 자기소개서 모두 각색하다 보면 시간도 많이 든다. 이런 직군을 뽑는 기업은 LinkedIn을 통한 초간편 지원보다는, 회사 커리어 포털에서 직접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확한 정보를 입력하고 질문에 대답하다 보면 고작 2개밖에 지원하지 못하고 하루가 끝나버릴 때도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200개의 회사에 모두 같은 강도로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20%(40여 개)의 1순위 회사에 80%의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다.
2) Secondary 3) Adjacent 직군에는 20%의 노력을 쏟는다. 이런 보직들은 대부분 링크드인에서 ‘apply’ 버튼만 눌러도 본인 프로필과 ‘default’로 설정한 이력서를 첨부해 지원할 수 있었다.
본인은 마케팅 오퍼레이션과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필요로 하는 '임원 비서' 보직에서 최종 오퍼를 받았으니, 위의 1) Primary와 3) Adjacent 업무가 섞인 직군에 취업한 케이스다. 석사 전공을 100%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민망함이 있었지만, 당시 취업 비자 지원이 훨씬 더 중요했기에 이 길을 선택했다. 또한 직업을 최소 3번 이상 바꾸는 100세 시대, 전공 관련 업무를 할 기회는 앞으로 얼마든지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미국의 첫 ‘Entry’ 보직으로 행정 업무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미국 기업 문화 및 업무 스타일에 익숙해진 후, 다른 직군으로 옮길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2. ‘갑’의 마인드 셋 - 평가는 쌍방향
무엇보다 자신감이 필요하다. 취업 비자를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갑을병정’에서, ‘병’도 아닌 ‘정’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회사도 나를 평가하지만, 나도 회사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일인지, 먹고살 만큼 연봉은 주는지, 취업 비자 및 영주권 지원을 보장해 줄 수 있는지, 미래가 밝은 회사인지, 상사와 동료 직원들은 성품이 어떠한지 등. 회사도 나를 인터뷰로 평가하겠지만, 나도 회사를 철저히 평가 분석해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는 다소 발칙한(?) 태도가 필요하다.
초반에는 가능하면 최대한 많이 지원해 성공/실패의 데이터를 쌓으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래야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파이널 라운드까지 가면 회사에서 꼭 이 질문을 한다. ‘잡 오퍼를 받으면 올 생각이 있는지, 이미 오퍼를 받아 비교 중인 회사가 있는지.’ 그래서 항상 숨겨진 카드 한 장쯤은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해당 회사의 오퍼 하나만 기다리고 있는 지원자보다는 2~3개의 회사에서 오퍼를 받아 비교하고 있는 지원자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3. 연봉 협상 - 취업 비자의 함정
가장 중요한 부분. 우리는 왜 일하는가? 자아 성장, 성취감, 다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먹고사니즘’이 해결되어야 한다.
지역마다 물가 차이가 크기 때문에, 지역별 연봉을 잘 확인하고 네고해야 한다.당시 나는 학교 동기 중 북 캘리포니아에 취직한 친구들이 많이 없었고, 지역마다 연봉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도 몰랐다. 내가 살았던 미국 중부 기준으로 연봉 협상을 했다가 큰코다쳤다. 첫 달 봉급에서 세금, 렌트비, 공과금 등이 모두 빠지고 나니 달랑 300불이 남았다. 회사에 속은 느낌마저 들었다. 아무리 회사 대 개인의 협상이라지만, ‘호의(goodwill)와 상식’이라는 것이 있는데, 미국 물정 모르는 외국인 학생이라고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졸업하고 돈도 버는데,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생활비 붙여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출처: 트위터 '내가 좋아하는 짤'
취업 비자를 빌미로 보직에 합당한 연봉을 주지 않거나 직급을 깎는 회사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사실 취업 비자 관련, 직원 한 명당 투자 비용은 당시 5천 불 미만이었다. 이미 회사와 계약된 로펌이 있어, 취업 비자 프로세스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부서에서 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경력 및 직무 기술’ 등 내 인풋이 필요한 부분이 더 많았다. 로펌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열심히 준비해 인사/이민 담당 부서에 넘기면 된다. 따라서 이 5천 불과 취업 비자 지원 관련 프로세스를 빌미로 연봉을 낮추는 것은 불법이다.
취업비자가 절실한 학생들은 그럼에도 오퍼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데,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정당한 연봉을 협상하도록 하자. 링크드인에서 지원 분야 및 지역을 필터링하면 평균 연봉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이 기능 활용과 더불어 지인에게 조언을 구해, 신중히 연봉을 협상하시길 권한다. 취업도 중요하지만 이후 미국에서의 생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봉 협상 전, 다양한 소스를 활용해 평균 연봉 데이터를 확인해 보자
링크드인 프리미엄 서비스를 활용하면 직종별, 지역별 평균 연봉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으로 늦깎이 유학생의 미국 유학 준비, 대학원 생활, 취업 준비 과정에 대한 연재 글을 마친다. 임원 비서로 미국 첫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보직 이동과 이직을 거쳐 지금은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전 보직과의 연결점만 잘 찾으면 다른 보직으로의 이동이 유연한 편이다. 그러니 첫 단추라고 너무 중압감을 느끼지 말고, 과정 하나하나를 즐기며 취업 준비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