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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Oct 06. 2022

'미국 유학 일지'를 마치며

브린이의 다짐

늘부로 브런치에 총 40편의 글을 썼다. 그중 22편은 <나 홀로 이민 - 미국 유학 일지> 매거진 글이다. 비혼, 식물 키우기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쓰다 보니 자꾸 흐름이 끊기는 것 같아, 우선 하나의 주제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미국 유학 준비 과정 및 대학원 시절, 현지 취업 과정에 대한 기억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다음은 내가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며 자기소개 제출했던 글이다.


“저는 미국 실리콘밸리 테크 회사에서 리서처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마케팅/홍보 경력을 쌓고, OO 살에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미국 이민은 ‘어떤 환경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찾는 자아 발견 과정이었습니다... [중략]”


브런치에서 글을 하나씩 써나가며, 나는 마음 한켠에서 싹 틔우다 지지부진하게 접어버린 예술가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학부를 마치고 영화나 연극 전공 대학원에 가고 싶었던 마음을 심장 한켠에 봉쇄해버리고 취업 현장으로 돌진해야 했던 아쉬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한풀이를 브런치에서라도 하고 싶었나 보다.


소설 – 아무나 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지            

시 – 읽고 온전히 소화하기도 힘든 장르            

에세이 – 나의 경험 정도는 글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단순한 생각의 흐름에 따라, 에세이를 쓰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 BenDragon, 출처 Pixabay


20여 편의 연재 글을 ‘달리게’ 된 이유


© nickmorrison, 출처 Unsplash

그 첫 발걸음으로, 미국 유학 여정기’를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유학 준비 관련 팁들은 해당 학과 선배님께 물어보는 게 최선이라는 말도 있다.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학교, 학과뿐 아니라 국가, 학위의 종류에 따라 요구되는 유학 서류 및 절차도 모두 다르지 않은가. 그럼에도 내가 이리도 미련스럽게 20여 편에 이르는 유학 여정기를 쓰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경험과 정보 나눔


미국에 친인척 및 지인이 전혀 없었던 나에게 유학 관련 정보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유학원과 블로그에 쓰인 미국 유학 관련 각종 ‘비법’과 ‘가이드’들이 있었지만, 개인적인 경험이 묻어나는 글을 찾기는 힘들었다. 정보가 없어 쩔쩔맸던 나에게, 선배의 유학 경험담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아무튼, 술>로 잘 알려진 김혼비 작가님은 <다정소감>에서 ‘김솔통(김솔을 보관하는 전용 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범국민적인 도구적 유용성 따위는 획득하지 못할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그 잉여로우면서도 깔끔한 효용이 무척 반가울 존재. 보는 순간 ‘세상에 이런 물건이?” 하며 놀라움을 선사하는, 그런 글 말이다. 감히 작가님의 ‘김솔통’ 같은 글에 비교도 하지 못할 글을 쓰고 있지만, 이 문장을 읽고 왠지 힘이 났다. 연재 글을 쓰기 위해 약속을 잡지 못했던 몇 달간의 주말이 아깝지 않았다. 맞다, 내 글이 모두에게 읽힐 필요는 없지 않은가. 미국 유학이나 취업 정보가 필요한 독자분께 도움이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김혼비 작가님의 <다정소감>



2. 잃어버린 시간의 복원


한때 ‘미술품 복원사’가 꿈이었던 적이 있다. 워낙 그림을 좋아했고,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으며, 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해 내는 미술품 복원사라는 직업에 미친 듯이 매료되었다. 여러 사정으로 이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어떤 현대 기술로도 제어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신의 영역, ‘시간’, 바로 그것을 복원해 내는 작업에 경의를 표한다.


© anncapictures, 출처 Pixabay

대학원 동기가 맥북에 물을 흘려, 랩탑이 완전 먹통이 된 적이 있었다. 1주일 만에 수리해 겨우 ‘작동’하기는 했으나,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렬히 전사했다. 그와 함께 랩탑에 있던 자료와 사진 또한 다 날아갔다. 글에 첨부한 사진들은 페이스북에 올린 저용량 사진을 하나하나 긁어모은 것들이다. 마치 글을 쓰며, 잃어버린 듯했던 10년의 세월에 숨을 불어넣는 ‘복원사’가 된 기분이었다. 현지 취업 후에는, 취업 비자, 영주권을 받기 위해 한동안 워커홀릭으로 살았다. '취미덕후'인 나에게는 혹독하고 모진 세월이었다. 자아가 매일 사그라드는 느낌이랄까... 글쓰기를 통해, 일에 파묻혀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았던 시간을 조금씩 만회하고 있다.



3. 가능성과 희망 나누기


세상이 나라는 사람, 내 능력 자체가 아닌, 집안, 학력, 결혼 여부에 근거해 프레임을 씌워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지 운이 없었던 건지, 한국이라는 땅의 기운이 그저 맞지 않았던 건지, K-직장은 나에게 끊임없이 한계를 지었다. 그렇게 주변 환경이 나의 가능성을 재단시키려고만 할 때, 나라도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었다. 미국 유학은 9년 동안 K-직장의 한계 짓기를 견뎌낸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모국에 대한 배신감(?) 마저 느끼게 한 한국을 뒤로하고 '코스모폴리탄'이 되기를 결심했다.


비단 모든 K-직장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이직하고 승진해서 잘살고 있는 친구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분이 계신다면, 해외 유학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해도 사방팔방이 막힌 느낌일 때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다음의 세 가지일 것이다.


1) 팀 이동

2) 이직

3) 퇴직, ‘다른 길’ 모색


© bkotynski, 출처 Unsplash

내가 모색한 다른 길은 ‘미국 유학’이었다. 물론 위의 ‘다른 길’은 ‘창업’, ‘인디펜던트 워커’ 등, 다양한 단어들로 대체될 수 있다. 해외 유학이, 사방팔방이 막힌 직장인의 활로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방법’은 아니겠지만 ‘여러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내가 느낀 미국 유학의 장단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 장단점을 잘 고려해 보고 결정하면 좋을 듯하다. 앞으로 진로가 고민인 분들, 직장 생활을 하며 낙담의 늪에 빠진 분들에게 또 하나의 가능성과 희망을 주는 글이 되길 바란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지난 5개월은 앞으로 글쓰기의 방향’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초반 구독자 수가 꽤 빠르게 늘 때, 브런치 메인이나 다음 메인에 내 글이 뜨는 ‘신기루’를 경험했을 때, 부끄럽지만 아주 잠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어이없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시간이 지나며 여러 글벗님들의 경험담을 접했고, ‘메인행’은 브런치에서 새내기 작가들이 더 열심히 글을 쓰게 만드는 일종의 응원 장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내 글이 훌륭해서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목표를 현실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학부 이후 몇십 년 동안 글에서 손을 뗀 내가 하루아침에 글을 잘 쓰게 될 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글을 쓰다 보니, 내 한계가 무엇인지 더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글에 대한 ‘반응’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눈치챈 지인은, 당신의 글이 자칫 ‘잘난 사람의 글’로 보일 수 있으니 조심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니, 그 ‘끌어내림’의 타깃이 될까 싶어 걱정되었던가 보다.


© christinhumephoto, 출처 Unsplash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참 많다. 미국 대학원을 마치면 기업에서 바로 ‘모시고 가기 위해’ 입질이 먼저 온다는 석/박사 유학생들도 주변에서 종종 보았다. 내가 정말 잘난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 글을 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 어려웠던 과정이었기에 쓰면서 돌아보기로 했다. ‘미국 유학과 취업’을 다루는 글이다 보니, 자칫 불편함이나, 희망보다는 박탈감을 느끼게 하진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다. 혹여 그런 부분이 느껴졌다면 어휘와 표현력이 부족한 초보 작가의 성장 과정이라 여기고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글은 ‘잘난 사람의 글’은 아니다. 다행이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나의 경험을 거부감 없이, 그리고 이왕이면 재밌게, 공감할 수 있게 쓰는 것.” 이것이 바로 20여 편의 글을 쓰며 갖게 된 나의 글쓰기 목표이다.


연재 글을 포기하고 싶을 즈음, 구독자님의 댓글과 초록 알림이 나에게 다시 글을 이어갈 힘을 주었다. 부족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공감과 댓글로 응원해 주신 글벗님들과 구독자분들께 무한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 이미지 출처: Unsplash,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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