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배낭여행의 기록 첫번째: 태국 - 방콕
새벽 4시, 비행기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돈므앙(Don Mueang)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첫 버스를 타고 모칫 북부 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모칫역에서 지하철(MRT)을 타고 예약해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 후아람퐁역(Hua Lamphong)에 도착했다. 지하철 시스템은 깔끔하고 알기 쉽게 되어있어 어렵지 않게 역에 도착했다.
- 엊그제 데이빗이랑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 내일 밤 비행기 맞지?” 데이빗이 물었다.
“어 맞을걸? 응 맞을거야 아마” 핸드폰으로 이메일을 뒤지며 내가 답했다.
“어차피 할 것도 없고 심심한데 숙소 예약이나 할까?” “그래 그러자” 이렇게 내가 대답하고 예약 사이트로 들어가 방콕 위치를 찍고 평점-최저가 정렬을 했다. 맨 위에 괜찮아 보이는 숙소가 $5에 나와 있다.
“요 여긴 어때 괜찮아 보이는데?” 핸드폰을 데이빗에게 넘기며 내가 말했다.
“오 나쁘지 않네 거기로 하자” 슥 화면을 보고 난 뒤 데이빗이 말했다.
- 이런식으로 신속 정확하게 예약을 마치고 숙소 지도를 캡쳐 해 핸드폰에 저장해 뒀다.
지하철역까지 무사히 도착한건 좋았는데 아쉽게도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 버렸다.
“역에서 남서쪽 방향에 있었던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아닐걸? 작은 하천을 건너야 되는거 아니였나? 하천은 위쪽이야” 데이빗이 반론을 제기했다.
“아니야 남서쪽 어딘가에 구글 빨간점이 찍혀있던게 생각나” 내가 다시 받아 쳤다.
이런 토론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은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모두 다 저쪽으로 가면 된다고 한다.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손으로 저쪽을 가리키며 가라고 한다.
“여기 아까 지나쳤던 곳인데?”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데이빗이 말했다.
“데쟈뷰다. 벌써 세 번은 이 식당 본 거 같아. 이번엔 이쪽 길로 가 보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내가 답했다.
이곳은 따듯한 곳이다. 살 떨리는 추위에 후드티 속에 얼굴을 집어넣고 반쯤 보이는 시야로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꿈이 생각났다. 그곳은 추운 곳이었다. 아니 추웠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조금씩 식어가고 잠시나마 얼어붙은 몸을 녹일 수 있는 모닥불을 찾아 헤매 다녀야 했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슬프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구나 그를 보면 근심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자유로운 여행을 위해 자유로운 시간을 잠시 속박한 그는 단지 떠날 날만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치열하게 살았다. 밤낮 가리지 않고 닥치는 데로 일을 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처럼.
관계의 익숙함이 무섭다고 했는가. 아무런 생각 없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취하고 다음날 잊어버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의식의 창이 서로 만나 노는 놀이터에서도 마찬가지로 잘 놀았다. 오차 없이 미리 짜 놓은 각본대로 따라 움직이는 인형처럼, 정해진 타이밍에 웃고 적당한 때에 그럴싸한 표정을 짓고 대화의 흐름에 따라 정해진 대사는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완벽한 톤과 발성으로 내 뱉었다. 그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아무 곳에도 없었다.
어젯밤, 서울에서 벌벌 떨며 공항버스를 기다리던 기억이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에 흐려지고 아득해질 무렵 왠지 호스텔이 있을 것 같은 골목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