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비 하루치를 벌었다. 프놈펜 행 야간버스 1층에 짐을 싣고 신발을 비닐봉지에 담아 버스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엔 침대가 양옆으로 쭉 배치되어 있었다. 지정된 자리로 가 잘 준비를 했다. 멀어지는 시엠립 불빛을 뒤로하고 편하게 누워 서서히 잠들었다. 푹 자고 일어나니 수도 프놈펜(Phnom Penh)에 도착했다. 호스텔 체크인을 하고 아침을 먹으러 나왔다.
주말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가족 단위로 식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고기 국수 한 그릇을 먹은 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국수 한 그릇을 비운 나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우리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가닥의 시작 부분 어딘가에 가족과 함께한 외식의 행복한 추억이 있다. 나 같은 경우 ‘후레쉬포크’란 양념갈비 집이 그중 하나이다. 실내에 놀이터도 있어서 미끄럼틀도 타고 형형색색 플라스틱 볼 풀에 파묻혀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속의 나와 비슷한 나이였겠다. 크메르루주 대학살 관련 회고록인 First They Killed My Father의 화자 루옹은 1975년 어느 봄날 일요일 아침, 가족과 함께 쌀국수를 먹으러 나갔다. 식사가 끝난 뒤 어른들 얘기가 지겹고 발이 근질거려 친구랑 놀러 갔다. 어릴 땐 상상력이 온 사방으로 거침없이 뻗쳐 뭘 하고 놀든 재미있다. 나도 아파트 단지 뒤 정원을 오가며 했던 ‘정글 탐험’ , 숨 막히는 ‘드래곤볼’ 놀이를 하며 뛰어 놀았다. 주인공 루옹도 재밌게 놀았겠지.
1975년 4월 17일, 폴 폿(Pol Pot)의 크메르 루주(Khmer Rouge) 군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을 점령했다. 그 이후 루옹의 삶에서 모든 것이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굶주림에 시달리며 하나둘씩 쓰러지는 주위 사람들을 뒤로하고 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피난은 계속된다. 친언니가 병으로 죽고 아버지가 군에 끌려가 처형당한다. 그다음으로 어머니와 세 살배기 동생이 살해당한다. 루옹은 크메르루주를 몰살시키고 가족의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을 원동력 삼아 끝까지 살아남는다.
1979년 베트남군이 크메르루주를 몰아낼 때까지 복수와 증오가 이 일곱 살짜리 아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두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느껴버린 감정. 나였다면 어땠을까? 내 소중한 가족을 죽인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다음날 프놈펜에서 약 10km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청 아익(Choeung Ek) 제노사이드 추모관에 다녀왔다.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곳은 크메르루주 정권하에 살해된 수백만 명의 영혼을 추모하는 곳이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천천히 둘러보았다. 곳곳에 벤치가 있어 마음을 추스를 수도, 생각에 잠겨볼 수도 있다. 아끼던 팔찌를 킬링 트리 추모 리본 고리에 걸어 두고 왔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Never forget, Never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