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논평
정부는 지난달 25일 2019년도 미세먼지·민생 추경안을 제출했습니다. 경기하락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추경안의 규모는 6조 7천억 원에 불과합니다.
이번 정부의 추경안은 작년 25.4조원의 초과세수에 비춰 봐도 턱 없이 부족한 규모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4년 연속 누적 50조 규모의 초과세수를 거둔 바 있습니다. 이에 재경부마저 최대 17.7조의 국채발행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정부의 초과수입이 발생하면 가계와 기업 등 다른 부문에서는 수입 부족이 발생하기 때문에 초과세수를 오랫동안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특히 경기후퇴기에는 정부가 ‘최종수요자’로서 경기침체를 방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IMF도 9조원 규모의 추경을 한국에 권고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이번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을 알았다면 더 큰 규모를 권고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IMF는 ’19년 세계경제성장 전망을 끊임없이 하향조정하고 있습니다(18.7월 3.9% → 19년.1월 3.5%). 수출비중이 큰 우리나라에 경기하방 압력이 거세질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IMF 권고안에도 못 미치는 추경안을 입안한 것은 매우 안일한 상황인식의 산물입니다.
자본주의는 으레 끊임없는 경기변동을 겪습니다. 이러한 경기변동은 사회경제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일용직 노동자, 영세 소상공인, 소기업, 노인과 청년 등 취약계층에게 더 고통스럽게 다가옵니다. 이 때문에 유능한 진보정치는 사후적 안전망 확충에도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이들의 고통을 선제적으로 경감시키는 대책을 마련하는 데도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정의당은 이번 추경안의 단순증액을 넘어서 국채발행을 통한 완전고용 수준의 재정확장 기조를 추구할 것을 정부에 요구해야 합니다. 이때의 핵심은 서민생활과 밀접한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직접투자 비중을 늘리고 고용과 직업훈련의 보장범위를 넓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부에게 복지와 경기안정의 책임뿐만 아니라 ‘최종고용자’의 역할까지 요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 곳곳의 취약지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사회는 선진국에 비해 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턱없이 낮을 뿐만 아니라,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 고용 비중도 주요 OECD 선진국 대비 열악한 실정입니다. 이에 정부는 적극적 재정확장을 통해 복지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필요한 고용 또한 직접 책임져야 합니다. 아울러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 저감과 대체에너지에 대한 투자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런 연료 및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영세 소상공인과 기존 산업 종사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규모를 늘려야 하며 특히 전환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취약계층에게 소득과 일자리 그리고 직업훈련의 기회를 국가가 보장해야 합니다. 낮은 냉난방 효율 등의 열악한 주거환경에 시달리거나 고시원과 쪽방촌을 전전하는 저소득 주거 취약계층이 많지만, 이번 정부에서 2년간 진행된 생활 SOC 사업은 이들에게 거의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이 분야에서도 정부의 직접투자와 고용의 비중을 늘려 주거복지 증진과 고용 및 소득 창출의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재정정책을 제안하고 입안하는 과정에서 다수 청년·시민의 참여와 열정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제안한 ‘그린 뉴딜’은 ‘녹색 에너지’로의 전환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국가재정을 활용한 일자리 보장제(job-guarantee)와 이를 통한 ‘완전고용’ 그리고 ‘직업훈련 및 교육의 기회보장’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는 높은 교육비와 청년실업률에 허덕이는 미국 청년들에게 커다란 열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는 국가재정이 단순한 세입-세출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상상력의 문제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야 간의 극한대립에 더해 사회경제적 개혁의 후퇴와 경기침체까지 겹쳐 서민의 피로감이 누적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진보정치는 추경안 심사를 기해서 국가재정을 통해 청년과 저소득층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대중의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