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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보너머 Nov 22. 2019

경제정의를 통한 정체성 갈등의 극복

by 토마 피케티

유럽인들은 미국의 정치와 선거의 균열을 만든 사회적, 인종적 갈등의 혼합을 오랫동안 먼발치에서 관찰해 왔다. 프랑스와 유럽에서도 정체성 갈등의 중요성과 파괴적 잠재력이 증가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해외의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고찰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과거를 살펴보자. 미국 민주당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의 남북전쟁 기간 동안 노예 제도 지지 정당이었지만, 1930년대에는 점차 루즈벨트와 뉴딜 정당으로 변모했다. 18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민주당은 사회적 차별주의라고 할 만한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흑인에게는 너무나 불평등하고 분리주의적이었지만, 백인(특히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출신의 새 이민자)에게는 공화당보다 더 평등주의적이었다. 민주당은 1913년 연방소득세 창설과 1929년 위기 이후 사회보험 제도의 발전을 지지했다. 1960년대가 되어서야 흑인 인권 운동가들의 압력과 변모한 지정학적 맥락(냉전, 탈식민화)에 따라 민주당은 인종차별적이었던 불행한 과거로부터 등을 돌리고, 공민권과 인종적 평등이라는 대의를 지지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공화당은 점점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표, 더 정확히 말하면 연방 정부와 교육받은 백인 엘리트들의 주된 관심사가 소수계층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라 믿는 백인들의 표를 얻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1968년의 닉슨, 1980년의 레이건과 함께 시작되었고, 레이거노믹스와 번영에 대한 약속이 경제적으로 실패하자, 2016년에는 정체성과 민족주의 담론을 부추긴 트럼프 대통령 아래에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 공화당원들의 노골적 적대감(레이건이 씌운 '사회복지의 여왕’ 등의 낙인은 흑인 미혼모들의 게으름을 빗댄 것으로 추정되며, 샬러츠빌 폭동 당시 백인 극단주의자에 대한 트럼프의 지지로 이어졌다)을 감안할 때, 1960년대 이후 흑인 유권자들이 지속적으로 민주당에게 90% 지지율을 보낸 것은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다.


그림 1 정치적 대립과 인종적 정체성 : 미국 1948-2016


해설 :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는 전체 유권자 중 70%를 차지하는 백인 유권자들에게서 37%, 전체 유권자 중 11%를 차지하는 흑인 유권자들에게서 89%, 전체 유권자 중 16%를 차지하는 라틴계 및 기타 3%의 비백인 유권자에게서 64%의 지지를 얻었다. 1972년에는 민주당 후보는 유권자 중 89%를 차지하는 백인 유권자 중에서 32%, 유권자 중 10%를 차지하는 흑인들에게는 82%, 유권자 중 1%를 차지한 라틴계 및 다른 인종에게서는 64%의 지지를 받았다.


인종적 출신에 기초한 이러한 분할은 유럽에서도 공고해지고 있다. 비(非)유럽 이민자들에 대한 우파의 적대의식은 이민자 출신 유권자들이 그들을 공개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유일한 정당(좌파정당)에서 도피처를 찾도록 만들었고 이는 좌파들의 이민자 편애에 대한 우익적 비난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2012년 대선 결선투표 때 비유럽인 조부모가 적어도 한 명 이상 있다고 밝힌 유권자(전체 유권자 중 9%)의 77%가 사회당 후보에 투표했는데, 이에 비해 유럽인 조부모를 가진 유권자(전체 유권자 중 19%)의 사회당 후보 지지율은 49%였고, 조부모가 모두 프랑스 태생인 유권자(전체 유권자 중 72%)의 사회당 후보 지지율도 49%였다.


그림 2 정치적 대립과 출신지 : 프랑스와 미국의 비교


해설 : 2012년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에서 사회당 후보는 조부모가 모두 프랑스 태생인 유권자들로부터 49%(외국인 조부모에 대해서는 데이터 없음), 조부모가 모두 유럽 태생인 유권자들로부터도 49%의 지지를 받았는데(대부분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조부모가 유럽 외 출신인 유권자들에게서는 77%의 지지를 받았다(대부분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2016년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는 백인에게서는 37%, 라틴계 및 기타 비백인에게는 64%, 흑인들에게서는 89%의 지지를 받았다.


대조적으로, 미국이 보기에 유럽의 소수 인종은 더 높은 확률로 타인종과 결혼하는 특징을 가지며 (북아프리카출신 중 30%, 흑인이 타인종과 결혼하는 비율은 10%를 조금 넘는 것과 비교된다.) 이는 분열을 완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불행하게도, 종교적 지향과 (미국에서는 거의 없다시피 한) 이슬람 문제는 반대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럽 정세는 인도에 더 가깝다. 인도 인민당의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이슬람 소수파를 거부하는 이데올로기를 구축했다. 인도에서 정체성 대립은 소고기 소비와 채식주의 식단에 관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헤드스카프의 문제, 그리고 때로는 치마 길이 문제와 해변에서 레깅스를 입는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두 가지 경우에서 우리는 힌두교 지지자들과 극단주의적 세속주의자 그리고 국민전선 지지자들 사이에서 유사한 반이슬람적 강박을 목격한다. 이는 극도로 폭력적인 담론의 형태를 취하며 (친-지하드주의자와 다름 없다고 비난을 받는)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다. 두 가지 사례에서, 소수자의 권리 옹호자들은 때때로 갈등을 악화시킬 위험을 무릅쓴다. 예를 들어 헤드스카프를 쓰지 않을 권리와 다소간의 퇴행적 형태의 압력에 종속되지 않을 권리보다 헤드스카프를 쓸 합법적인 권리를 더 단호하게 방어하는 것이 그 사례이다.


그림 3 카스트와 종교에 따른 인도 인민당의 득표 : 인도 1962~2014


해설 : 2014년 무슬림 유권자의 10%는 힌두 민족주의 성향의 인도 인민당과 그 동맹 정당에 투표한데 반해, 하층 카스트 유권자는 31%가, 중산층 유권자의 42%가, 브라만을 제외한 상층 카스트의 49%가, 브라만 중에서는 61%가 인도 인민당에 투표했다.


어떻게 하면 격화되는 정체성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이 문제들은 경제정의와 불평등 및 차별에 맞선 싸움이라는 맥락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무수한 연구들이 동일한 학위를 가졌어도 이름에 아랍-무슬림 운율이 포함된 사람들이 자주 취업 면접에 초대받지 못한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차별적 관행의 추이를 감시할 수 있는 지표와 법령을 시급히 마련하고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경제적 논의의 부재가 정체성에 기반을 둔 승자 없는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우리가 대안적인 경제 정책에 대한 논의를 포기하고, 국경을 제외하고는 국가가 더 이상 아무것도 통제하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주장한다면, 정치적 논쟁이 국경과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체성에 기반한 민족주의자들과 글로벌리즘 엘리트들 사이에 놓여진 대립을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데 뭉쳐 경제적 전환을 위한 강령을 중심으로 결집할 때가 되었다. 이것은 교육에서의 정의, 자본주의적 소유권의 극복, 그리고 EU 조약의 재협상을 위한 실질적이고 야심찬 계획들을 포함한다. 만약 우리가 한심한 다툼과 오래된 증오를 극복하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파시즘을 떠올리게 하는 증오가 언젠가 승리를 거둘지도 모른다.


출처: https://www.lemonde.fr/blog/piketty/2019/11/12/identity-conflicts-and-economic-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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