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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보너머 Nov 28. 2019

'82년생 김지영'들의 삶, 자아실현이 해답일까?

<82년생 김지영>이 던진 질문, 이제 다수 대중을 위한 해답을 찾을 때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진보너머' 김보현 운영위원의 리뷰입니다. 서로를 향한 날선 비판을 걷어내고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거대한 변화의 에너지가 만들어지길 기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악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관습이나 어떤 문화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것에 집중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의 인터뷰 중 일부이다. 이와 같은 감독의 의도는 원작 소설과 비교해 수정된 내용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남편 정대현(공유 분)의 육아휴직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상당부분 삽입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관객들이 언급했듯이 영화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좋은 남편’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영화의 결말 역시 소설의 결말과는 매우 상이하다. 소설에서는 주인공 김지영을 담당하던 남성 의사가 김지영의 인생을 이해하는 듯 했지만, 종국에 여성 직원을 향해 성차별적인 시선을 그대로 고수하는 모습을 보여 충격을 가져다준다. 남성은 여성의 삶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비관론적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반면에 영화의 경우 주변의 도움으로 점점 자신의 삶을 되찾아가는 김지영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다 낙관적인 결론을 제시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유명 속담처럼 육아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에서 육아는 전적으로 여성의 일이었고, 특히 핵가족화로 인해 집안 어른들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워지면서 육아는 여성 개인의 삶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양부모가 모두 일터로 나가는 맞벌이가 늘어나면서부터는 출산율 감소가 국가적 문제로 인식되었고, 정부는 뒤늦게 각종 육아휴직 제도를 만들었지만 아직 제도의 활용은 요원한 실정이다. 감독의 말처럼 이것은 남성 개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해소될 문제가 아니라 성별과 관계없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여 관습과 문화를 개선해나가야 할 문제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또 다른 장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은 별안간 다른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빙의’ 증상을 가지고 있다. 작품에서 ‘김지영’이라는 이름이 82년생 여성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이름으로써 여성들의 고통이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라면, 할머니의 목소리부터 대학교 선배의 목소리까지 아우르는 빙의 증상은 여성들의 수직적 연결을 보여주는 장치다. 영화에서는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증상을 엑소시즘이 아닌 가족의 지원과 정신과 치료를 통해서 해소한다. 이처럼 여성문제를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해결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오는 것은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문제를 불가해하고 신비로운 차원에 머물게 할수록 갈등은 심해지고 논의는 더뎌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방식으로 공감의 폭을 조금씩 넓혀나간다.


철학자 지젝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들이 실제로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성문제를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여기는 태도 역시 이러한 욕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82년생 김지영>의 영화판 역시 한계를 가진다. 김지영은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작가로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꽤나 이름 있는 문학잡지에 글을 실으며 만족스런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언뜻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이 결말은 여성문제의 초점이 자아실현에 맞추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자아실현은 인간의 삶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이루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의문이다. 대다수 평범한 시민들은 (여성/남성을 불문하고) 직장에서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기보다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낮은 임금에 허덕인다. 결국 자아실현이란 경제문제와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성공한 여성, 능력 있는 여성을 주목한다. 그리고 여성문제에 천착하는 이들도 이러한 관점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들은 여성도 남성만큼 유능한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 유명인들의 목소리에 열광한다그러나 평범한 다수의 여성들. 많은 부와 특출난 능력을 가지지 못한 여성들에게, 유리천장을 없애야 한다고 외치는 힐러리 클린턴 같은 정치인의 말이 공감을 불러올 수 있을까?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인 줄리엣 미첼은 “우리는 페미니즘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지만 맑스주의적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이 상위 1%의 여성이 아닌, 다수 대중의 경제적 삶을 개선시키는 해답을 찾아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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