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주의/래디컬 페미니즘을 넘어
진보너머는 그 동안 청년과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정체성 정치'와 '엘리트주의'를 넘어선 진보적 대안을 고민해왔습니다. 이 문제가 고질적인만큼 우리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많은 국내외 저자들이 있었는데요.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독자들에게 해답의 단초를 제공하는 책들을 차례대로 공개 합니다. '정체성 정치와 엘리트주의 비판'에 이어서 본격적인 '사회경제적 대안'에 대한 커리큘럼도 추후 공개할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11.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 (notion.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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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주의자는 무조건 페미니스트의 편이거나 그 역도 성립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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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 콜론타이, 클라라 체트킨,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여성 사회주의자들은 페미니즘을 노동자들의 연합을 해치는 부르주아적 운동으로 보았다. 이에 따라 여성문제는 결국 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통해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즘과 구분하여 ‘여성해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책의 저자들도 자신들을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 분류하길 거부한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페미니즘 진영이 주장하는 가부장제, 상호교차성, 계급을 초월한 남성 연대, 그리고 정체성 정치 개념에 대해서 비판한다. 이와 같은 개념들은 진보진영에서 흔히 비판받을 수 없는 공리(axiom)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러한 개념이 계급적 차별을 어떻게 은폐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페미니즘의 도전>,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와 같은 페미니즘 베스트셀러들을 비판한다. 역시 진보진영에서 흔히 보기 힘든 신선한 관점이다.
그렇지만 책의 단점 또한 존재한다. 먼저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 관점에서 젠더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자칫 계급문제가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만능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 또한 여러 범죄 전문가들이 ‘hate crime’이 아니라고 입을 모아 말했음에도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성혐오범죄”로 칭하여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12.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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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인용하지만 정작 제대로 읽은 사람은 드문 책.
500자 서평
지난 메갈리아 사태 때, 많이 인용된 책 중에 하나가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이었다. 원래 영어 제목을 직역하면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인 이 책은 메갈리아에 반발하는 이들에게 '당신도 페미니즘 공부하라'는 의미로 인용되었다.
그러나 정작 흑인 페미니스트 벨 훅스는 메갈리아처럼 남성 일반 모두를 지배계급으로 두고 세상을 남성의 지배와 여성의 피지배 구도로 설정하는 메갈리아=워마드식 페미니즘을 비판했던 사람이다.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라는 책에서 그는 백인 부르주아 여성들이 성차별을 받기는 했지만 유색인 하층 남성보다는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으면서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또한 남성들은 성차별 구조 사회에서 가장으로서 책임을 강요받는 피해자이기에 그들 모두를 지배자로 볼 수 없다고 한다. 인종과 젠더의 문제를 다룰 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계급의 문제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벨 훅스를 인용하는 사람은 많지만 대부분 간과하는 사항이다. 페미니즘이 이런 건강한 상식을 회복한다면 청년 사이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지지를 얻지 않을까.
13. 잘못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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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당시 정희진은 프랑스의 페미니스트가 쓴 이 래디컬 페미니즘 비판서를 두고 '한국에서는 너무 이른 책'이라고 평했다. 지금도 그럴까?
500자 서평
프랑스의 저명한 여성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그리 길지 않은 저서. 2005년 국내에 번역된 바 있으나 2020년에 다시 한 번 대립주의적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의식 하에서 필로소픽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1990년대 이후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부제를 달았지만 사실 2020년대에도 유효한 내용이다.
저자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오늘날 주류적 위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발 페미니즘과 달리 조금 다른 형태의 페미니즘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도 대립주의적이고 스스로를 희생자적 정체성으로 표상하는 형태의 미국발 페미니즘이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저자는 남성을 지배적이고 공격적인 존재로, 여성을 순수하고 무력한 희생자로만 표상하는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구도를 비판한다. 또 ‘희생자는 악의 힘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선을 상징한다’는 관념에 젖은 페미니즘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단호하게 선호한다.
오늘날 ‘용기’라는 덕목이 매체와 SNS 상에서 유독 자주 오르내린다. 그러나 국내 페미니즘 진영 일각에서 보이는 그런 모습, 상대방을 섣불리 가해자로 낙인을 찍고 배척하거나, SNS의 숲 뒤에 숨어서 은어를 활용해 수군거리는 그런 모습이 과연 그런 것이 진정한 용기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공포심과 분노를 극대화하기 위해 통계자료를 부풀려 왜곡하는 관행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대목 또한 인상적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2017년 통계청 주관 '통계 바로쓰기 공모전' 수상작만 봐도 1등이 '대한민국 성별 임금격차에 숨겨진 진실'이고 2등이 '세계 성격차 보고서의 왜곡 및 확대 해석에 따른 오용'이며 3등이 '한국 남녀 임금 격차 꼴찌 통계의 왜곡 해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