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너머 논평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에 여영국 당대표 후보는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국가 일자리 보장제로 코로나 불평등을 넘어 성평등으로 정의로운 전환의 시대를 만듭시다!’ 이처럼 여 후보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특히 고통받는 돌봄노동자와 여성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일자리 보장제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또한 그는 최경영의 최강시사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미국의 버니 샌더스가 지난번 대선후보 나왔을 때 일자리 보장제를 제1공약으로 내세웠음을 환기하며, 일자리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는 일자리 보장제가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 말했다.
일자리 보장제란 정부가 일할 의지가 있는 실업자를 별 다른 자격심사 없이 (물론 근로분야에 따라 유급으로 일정한 직무교육과 상담과정이 동반되겠지만) 생활임금으로 무조건적으로 고용하는 일자리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일자리 보장제에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우선, 모든 비자발적 실업을 해소하여 불안정 일자리와 소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둘째로, 개인의 소득과 노동시장 이력단절을 예방하고 장기 실업자의 사회복귀 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일자리 보장제는 최저임금과 주52시간 근로시간 준수 등 민간부문의 노동관행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일자리 보장제는 시장이 제공하지 못하는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특히 기후변화 대응 등 ‘정의로운 사회전환’에 필요한 시민참여를 확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수의 협력을 통해 민주시민의 소양을 강화하고 연대의식을 고취할 수 있다.
일자리 보장제 소개글 :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87
이러한 장점들 때문에 버니 샌더스와 AOC 등 미국의 저명 진보정치인들이 일자리 보장제를 간판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흘렀지만, 이제라도 한국의 원내정당 정치인에게서 일자리 보장제가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한국사회는 이미 여러 번 기본소득 논쟁과 복지국가 논쟁을 거쳤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자리’이다. 전국민 고용보험을 통해 기존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것도 좋고, 주택, 의료, 대중교통, 돌봄 등의 기본서비스를 시민들에게 보장하는 구상도 바람직하며, 전국민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것도 훌륭한 구상이지만, 불평등 문제의 근원에 자리 잡고 있는 ‘일자리’ 문제를 사회가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못한다면 불평등 문제의 해소는 요원할 것이다.
그 동안 진보너머는 여러 번 일자리 보장제를 소개하며 한국사회의 미래 어젠다로서 주목한 바 있다. 특히 일자리 보장제는 (이미 퇴행적 래디컬 젠더정치에 포획된지 오래된 페미니즘 등의 정체성 이슈와 달리) 본래 진보정당의 홈그라운드였던 사회경제적 부문에서 선명성으로 차별화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어젠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여권에서 제기된 보편적 고용보험과 기본소득만으로 충분한 공공영역의 확장을 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 동안 진보정치는 ‘가난과 불평등은 나랏님도 어찌할 수 없다’는 통념에 맞섰다. 오늘날 이러한 낡은 관념은 다시 한 번 ‘4차산업혁명’ 등 기술지상주의 담론의 외피를 뒤집어 쓴 채 ‘실업과 일자리 문제는 정부도 어찌할 수 없다’는 담론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이때 일자리 보장제는 불평등이라는 ‘최종보스’와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
이처럼 여러 모로 봐도 진보정당이 일자리보장제를 간판공약 및 정책으로 내세우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