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십일 취향편 #21
나는 때로 둔감한 사람이 되길 바랐다. 어디서나 잘 자고, 무엇이든 잘 먹고, 감정 기복 적고, 새삼스럽지 않고, 까탈스럽지 않은 그런 사람. 초식동물 같은 예민함이 아닌 육식동물 같은 대범함.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랄수록 나는 정반대로 가고 있었다.
잘 자고 싶은 마음에 잠도 오지 않는데 억지로 잠을 청했다. 온갖 소리가 귀로 들어왔다. 시계 소리, 냉장고 소리, 전자파 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불 켜는 소리. 모든 게 고요한 밤에는 미미한 소리조차 대단한 존재감이 되어 돌아온다. 그 사이 나는 오만 생각에 잠겼다. 길고도 긴 밤들이었다.
무엇이든 잘 먹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무엇이든 먹었다. 내 위가 어떻게 되든, 장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뭐만 먹었다 하면 배가 아프고 탈이 났다. 억지로 삼킨 커피와 술 덕분에 늘 속이 쓰리고 메스꺼웠다. 직장인 2년 차 건강검진 때 위궤양이 생긴 걸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 중반까지 한 4년 정도 왕따를 당했다. 그 이후로 내 예민함과 불편함을 숨기고 무던한 사람이 되고자 애썼다. 이쪽저쪽 눈치 보며 상관없다 혹은 아무거나를 외쳤다. 그사이 꼭 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지 않은 게 천천히 늘어났다. 특별히 좋아하는 건 없지만, 절대 안 되는 것들. 어느 순간 그게 내 취향이 되었다.
스웨덴에 오면서 삶이 조금 단순해졌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을지, 내일 도시락은 뭐 싸갈지. 이번 주말에 빨래는 무슨 요일에 할지, 청소랑 설거지는 언제 할지. 나만 생각하면 되고, 나만 잘하면 된다. 남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남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남 욕할 필요도 없다. 자랑할 것도 없고, 부러워할 것도 없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예민해도 괜찮다.
좋아하는 것도 늘어나고 있다.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면서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무언가, 화려하게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자기 몫을 성실히 해내며 첼로 같은 존재감을 보이는 무언가가 좋다. 이것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을 때 얻는 소소한 평온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세상은 여전히 성난 소리로 가득하다. 나는 본성을 숨기려 애쓰는 초식동물 같다. 그 속에서 나로 사는 일은 예민하고 지친다. 겁 많고 조심스럽다. 새삼스럽고, 유난스럽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불행하지는 않다. 이런 나로 살아도 괜찮은 곳에서, 이런 내 능력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예민한 나라서 다행이다.
#작심삼십일_취향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