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십일 취향편 #24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새로운 음악이든, 오래전부터 듣던 음악이든 상관없이 출퇴근할 때, 일할 때, 쉴 때 찾아서 듣고, 때때로 라이브 영상 찾아서 보는 걸 좋아한다. 오늘도 하루 종일 백예린 노래만 듣고 있다.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예전에는 공연장 가서 보는 것도 좋아했는데, 지금은 가서 즐길 체력이 부족해서 가끔씩 간다.
걸으면서 듣는 걸 제일 좋아한다. 박자에 맞춰 걸으면서 앞에서, 뒤에서, 위에서, 아래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들려오는 각기 다른 소리가 눈앞에 보이는 장면과 맞아떨어질 때, 마치 내가 음악 안에 있는 기분이 든다. 이 순간이 그렇게 자주 오는 것은 아니라서 가능한 한 많이 걸으면서, 다양한 장면을 보려고 한다.
음악 관련 만화, 영화, 다큐멘터리도 좋아한다. 늘 인생 만화로 벡을 꼽는다.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소년이 우연히 밴드를 시작하고, 고난과 역경 끝에 성장해서 결국 성공한다는 줄거리의 뻔한 내용의 소년 만화지만, 이 만화 덕분에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고, 지금의 밴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싱 스트리트, 프랭크, 비긴 어게인, 아이엠 샘, 하이 피델리티도 좋다.
노래하는 것도 좋아한다. 언제부터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중학교 즈음부터는 노래방이 아니라 교탁 앞에서라도 기회가 생기면 노래를 불렀다. 음역이 넓지도, 성량이 풍부하지도, 음색이 독특하지도 않은데, 참 뻔뻔했다. 그때는 전람회, 김동률, 이적, 카니발 노래 위주로 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갑자기 힙합에 빠져서 가사를 쓰고 비트 위에 랩을 하기 시작했다. 더콰이엇, 팔로알토는 내 우상이었다. 대학교 때는 동아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공연도 하기 시작했다. 관객 10명 앞에서 호응 유도하면서 공연한 기억도 난다. 군대 전역하고 나서도 1년은 더 했으니 햇수로만 7년을 했다. 쇼미더머니까지 나가보고 그만둘걸 그랬나?
음악으로 먹고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시점에는 공연 기획으로 눈을 돌렸다. 작은 클럽 공연부터 해외 아티스트 내한 공연, 록 페스티벌까지 열심히도 다녔다. 동아리 공연 기획도 해보고, 지인들을 모아서 자선 공연을 열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공연 기획은 여기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A&R에도 관심이 생겨 JYP 공모전에 지원해서 최종에 올라 임원진 앞에서 발표도 했다. 지금은 온전한 취미로 남았다.
요즘은 부르기 편한 노래가 좋다. 주로 인디밴드 노래를 부르고, 콜드플레이 노래도 종종 부른다. 한국 노래는 내 음역으로 소화하기 어려워서 노래방에 갈 때나 가끔 부른다. 노래하는 게 왜 그렇게 좋냐고 묻는다면, 정확히 답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목소리가 반주 위에 올라가서 완성된 노래가 귀에 들어올 때 그 느낌이 좋다.
악기 연주도 좋아한다. 8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후로 동네 오케스트라에서 5년, 고등학교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2년을 연주했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군대에서 기타를 치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밴드를 하고 있다. 요즘은 신시사이저와 작곡도 건드려보고 있는데, 영 어렵다. 진지한 음악 이론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다.
연주는 혼자보다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게 좋다. 각기 다른 소리가 하나로 모여, 하나로 맞아떨어질 때 강남대로를 신호 하나 안 걸리고 달리는 느낌이 든다. 오케스트라가 군대 열병식 같다면, 밴드는 농구 시합 같다. 전자가 빈틈없이 짜여진 각본에 맞춰 움직이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동안 약속한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느낌이랄까.
나는 개인적으로 밴드가 오케스트라에 비해 작고, 자유롭고, 개인의 역할과 책임이 분명해서 좋다. 덕분에 긴장도 더 많이 하지만, 오히려 부담감은 적다. 나만 틀리는 것도 아니고, 틀려도 티가 잘 안 난다. 가사만 안 까먹으면 말이지. 아무리 못해도 45살까지는 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될까.
#작심삼십일_취향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