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스펙트럼 뉴스레터 / 스톡홀름에서 온 편지 #1
지난주, 디자인 팀 매니저와 퍼포먼스 리뷰 미팅이 있었습니다. 꽤 긴장되는 자리였어요. 제가 다니는 회사는 퍼포먼스에 따라 연봉을 결정합니다. 연봉 협상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사실상 퍼포먼스 리뷰가 연봉 협상인 거죠. 그런데 저는 이런 자리가 처음이었고, 저희 매니저는 회사 안에서도 까칠한 거로 유명한 양반이었습니다.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일단 같이 일했던 회사 동료 몇 명에게 피드백을 요청했어요. 질문이 너무 진지하거나, 항목이 너무 많으면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 딱 세 가지만 물어봤어요. 무엇을 시작하면 좋을지, 무엇을 그만하면 좋을지, 무엇을 계속하면 좋을지. 안 보내주면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다행히 디자이너 몇 명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정성 가득한 피드백을 보내줬습니다.
스웨덴과 한국은 일하는 환경부터, 조직 문화, 일을 대하는 태도, 방식 등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제가 일하는 모습을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피드백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일이든 제시간에 좋은 퀄리티로 끝내기 때문에 믿고 같이 일할 수 있다는 피드백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다음 친한 회사 동료에게 퍼포먼스 리뷰가 보통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봤어요. 월말이라 비용처리로 정신 없는 와중에도 30분 동안 차근차근 설명해줬습니다. 대충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어요.
“우선 스웨덴 평균 연봉 인상률이 2~3%에 불과하다. 금전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이직을 하지 않는 인상 어차피 대단한 인상은 없으니 기대하지 않는게 낫다. 대신 듣고 싶은 워크샵이나 컨퍼런스, 배우고 싶은 코스가 있으면 돈을 내달라고 요구하거나, 원격근무나 휴가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방법이 있다. 이는 회사 차원에서 투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조금 더 현실적이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들으니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연봉이 오르면 매달 저가 항공 티켓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 했었거든요. 어쩔 수 없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데, 아직은 절에서 배울게 많은걸요. 가고 싶은 컨퍼런스 하나를 정해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매니저가 보내준 퍼포먼스 리뷰 문서에 1년 동안 제가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처음 계획에서 뭐가 잘 되고, 뭐가 잘 안 되었는지, 개별 항목에 점수를 준다면 얼마나 주고 싶은지 등을 적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썩 만족스러운 한 해는 아니어서 답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저희 회사는 원래 제품 디자인이 강한 에이전시였다가 재작년에 디지털 팀을 만들면서 디지털 부문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 때 합류했고요. 그러다 저를 뽑아준 매니저가 작년 여름에 갑자기 그만두면서 디지털 팀이 축소되었고, 디지털 프로젝트도 마땅한 게 안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저는 클라이언트 회사와 다른 오피스에 파견을 가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방황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짧은 시간에 회사 내에 다양한 사람과 일해볼 수 있었고, 피지컬부터 디지털 프로젝트까지 다양하게 참여해볼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 툴도 프레이머는 물론이고 아두이노, 플린토, 프로토파이, 애프터이펙트 등 다양하게 써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스웨덴의 유명 디지털 에이전시 대표가 저희 회사 디지털 디렉터로 합류하면서 잘 될 거라는 희망도 생겼어요.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했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팅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미팅은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습니다. 일방적인 평가라기보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자리에 가까웠습니다. 걱정했던 평가도 생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너무 뻔뻔하게 보일까봐 일부러 점수를 낮게 적어놨는데, 제발 겸손 떨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웃음). 그 동안의 고생과 삽질이 헛되지 않았나봅니다.
그래서 몇 퍼센트가 올랐냐고요?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