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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Jun 28. 2019

공유 스쿠터,
편리함과 찝찝함 사이

디자인 스펙트럼 뉴스레터 / 스톡홀름에서 온 편지 #3

스톡홀름도 공유 스쿠터가 인기입니다. 차도, 인도, 자전거 도로 상관없이 쌩쌩 달리는 통에 모든 게 정돈되고 깔끔한 스톡홀름에도 무질서의 바람이 부는 듯합니다. 돌아다니면서 본 브랜드만 해도 다섯 개입니다. 저도 그 바람에 동참해볼까 했으나, 스톡홀름에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말뫼에 출장 가 있는 동안은 열심히 타고 다녔는데. 길거리에 있는 아무거나 하나 잡아서 타고, 신나게 타고나면 아무 데나 세워두면 끝이기 때문에 출퇴근 수단으로 좋더라고요.


그런데 공유 스쿠터를 이용하고 나면 늘 찝찝한 기분이 남았습니다. 스쿠터를 이 도로에서 타도 되는 걸까? 이렇게 스쿠터를 아무 곳에나 주차(사실 방치나 다름없지만) 해도 되는 걸까? 이 스쿠터 안전한 걸까? 밤마다 수거해서 정비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제대로 하고 있을까? 아무런 안전 장비 없이 타도 괜찮을까? 저렇게 두 명씩 타도 될까? 사고가 나면 누구 책임일까? 보험은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 그런데, 얼마 전 그 찝찝함이 불편함으로 바뀌는 순간을 목격했습니다.


스톡홀름에서 서비스 중인 공유 스쿠터 스타트업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스쿠터는 버스 터미널 내부 엘리베이터 앞 벽에 기대어 애매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유동 인구가 상당한 곳이라서 저기에 저렇게 대책 없이 두어도 괜찮은지, 아니 시스템 상 저기에 두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의문을 품으면서 가고 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시각 장애인 한 분이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걸어 나오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잘 피해 가시겠거니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멀리서 보고 있었습니다.


시각 장애인 분의 지팡이는 왼쪽 오른쪽으로 장애물은 없는지 훑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스쿠터가 벽에 딱 붙어 있는 바람에 지팡이가 탐지하지 못했고, 빠른 걸음으로 걷던 시각 장애인 분은 그대로 스쿠터에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몇 명이 놀라서 뛰어갔고, 넘어진 그분을 부축해서 일으켰습니다. 물론 그분이 이런 일을 처음 겪은 것은 아닐 겁니다. 다만, 앞으로 그분이 길을 걸어가면서 주의할 물건이 하나 더 늘어났으며, 그 위치를 예측하기조차 어렵다는 사실이 저를 더 불편하게 했습니다.


다양한 측면에서 대책을 생각해봤습니다. 공유 스쿠터가 근처에 있으면 지팡이에 햅틱이나 소리로 피드백을 주는 방법, 공유 스쿠터 주차 위치를 시각 장애인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곳으로 지정하는 방법, 스쿠터가 시각 장애인 통행로에 진입하면 운전자에게 경고 알림을 주는 방법, 공유 스쿠터의 인도 통행을 금지하는 방법 정도가 일단 생각납니다. 사용자의 행위가 타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면,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할 때 영향을 받는 대상들도 반드시 고려해야겠죠.


길바닥에 주차(?)되어 있는 공유 스쿠터


스톡홀름에는 현재 1500대의 전기 스쿠터가 돌아다니고 있고, 말뫼에도 700대 이상이 있습니다. 전기 스쿠터 스타트업들은 안전을 위해 20km 속도 제한을 걸고, 주차할 수 있는 지역을 제한하고 있지만, 크고 작은 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사망 사고도 있었습니다. 교통국 조사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마치 심각한 사고가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이로 인해 누군가 죽었다는 것은 더욱 비극이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전기 스쿠터를 어떻게 정의할지 고민하느라 관련 법규와 규제 제정을 미뤄오던 스웨덴 교통국은 결국 지난 5월 말, 전기 스쿠터의 도로 통행금지를 요구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공유 스쿠터는 스톡홀름의 도로 위를 쌩쌩 달리고 있습니다. 각종 기사는 공유 스쿠터 전성시대라는 제목과 새로운 사업거리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모든 불편함과 제도적 취약점이 해소될 것이고, 지금은 이런 걸 논하기는 이르다는 것을. 다만,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저의 찝찝함과 불편함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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