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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Aug 12. 2019

서울, 스웨덴, 스위스,
다시 서울의 다섯

격동의 5주였다. 앞으로 어떤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1. 선선한 여름이었다. 북유럽 추위에 익숙해졌는지, 가끔 찾아오는 무더위가 반가웠다. 습기가 눈 아래까지 차오르는 날에는 비 오듯 흐르는 어디든 들어가서 땀을 식히고, 아이스커피를 마시곤 했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틀고 잠드는 밤이면 이대로 가을이 찾아올 것 같았다. 


2.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썩 여유로운 휴가는 아니었다. 몸과 마음이 둘 다 바빴다. 3주 동안 100명 가까운 사람을 만났다. 발표도 여러 번 하고, 워크숍도 하고, 브랜딩 작업도 하고, 구직도 했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쉼 없이 떠들었다. 그동안 모은 기를 한 번에 쏟아내는 기분이었다. 허투루 쓴 시간은 없었다. 재미있는 여름이었다. 


3. 스펙트럼콘에 참가하기 1주일 전만 해도 디자인을 그만둬야 할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디자인은 여전히 좋지만 먹고살기 힘든 현실을 생각해보면 조금 타협해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원래 전공도 심리학이랑 경영학이기도 했고.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던 중 스펙트럼콘에 참석했다. 연사들은 천 명이나 되는 인파 앞에서 어제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어디까지 왔는지, 내일은 어디로 갈지, 또 스스로를, 나아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광고를 포기하려던 언젠가처럼 별 고민 없이 타협하고, 너무 쉽게 포기하려 했다. 어디에 있는가 보다 어떻게 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건데.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다시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 


4. 부모님을 모시고 스웨덴과 스위스에 다녀왔다.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융프라우에서는 산소가 부족한 탓인지 금세 지치셨고, 예전에는 그렇게 잘 드시던 외국 음식도 이번에는 좀처럼 맞지 않았다. 다행히 여행 운이 따랐다. 날씨를 그렇게 탄다는 융프라우는 그 어느 때보다 맑았고, 잠시 들른 브베에서는 20년에 한 번 한다는 와인 페스티벌을, 인터라켄에서는 스위스 국경일에 하는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스톡홀름에 돌아와서는 프라이드 퍼레이드도 구경했다. 부모님은 처음 보는 광경에 신이 나셨는지, 한껏 설레는 얼굴로 모든 순간을 눈에 담고 싶어 하셨다. 나는 힘이 들다가도 그런 부모님 얼굴만 보면 힘이 났다. 나는 뒤에서 두 분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 순간을 꼭 남기고 싶어서 카메라 셔터를 쉼 없이 눌러댔다. 어릴 적 형과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여행 다니시던 부모님 마음이 이랬을까. 꽤나 오랫동안 그리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좋은 여행이었다. 마음을 좀 크게 먹어야 해서 두 번째 여행은 조금 고민해봐야겠지만. 


5. 스위스 여행 중에 한 기업에서 최종 면접을 보러 오라는 메일을 받았다. 급히 비행기 티켓을 결제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기회라면 놓칠 이유가 없었다. 여행 중간중간 디자인 과제를 하고, 포트폴리오와 면접을 준비했다. 기차와 비행기는 물론 심지어 해발 3466m 융프라우 전망대에서도 준비했다. 유럽 여행이 끝나고 부모님과 같은 날 다른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왔다. 마침 면접이 두 개가 더 잡혔다.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3일 연속 면접을 봤다. 바로 다음날 스톡홀름으로 돌아왔다. 격동의 5주였다. 앞으로 어떤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사진 찍고, 다시 포트폴리오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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