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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Feb 05. 2020

출근 3개월 차의 다섯

UX 디자인도 결국 논리 싸움이다

1. 입사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밀라노로 출장을 온 덕분에 잠시 쉬어갈 틈이 생겨서 지난 3개월을 돌아보았다. 욕심과 달리, 이제 겨우 0.5인분 정도를 하고 있다. 할 일도 많은데, 알아야 할 것도 많다. 바뀌는 것도 많고. 언제쯤 1인분을 해낼 수 있을까? 


2. 복잡하다. 복잡해도 너무 복잡하다. 제품도 복잡한데, 일하는 프로세스도, 부서 사이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그냥 진행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밑도 끝도 없는 요청이 밀려 들어온다. 양산 일정과 얽혀서 돌아가다 보니 모든 일이 긴급이다. 급하고 중요한 일부터 처리하기 위해 여기저기 숨 가쁘게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오후 5시, 퇴근 시간이다. 처리할 일을 포스트잇에 순서대로 적어서 모니터에 붙여두고 내일을 기약한다.


3. 물론 아직은 소소하게 기능을 바꾸거나 추가하고, 업무를 이해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단어 하나, 메뉴 순서, 가이드 이미지 하나 바꾸기 위해 수많은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디자인 툴보다 파워포인트와 엑셀을 더 자주 사용한다. 내가 디자이너인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 때때로 찾아온다. 그래도 이제야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더 직관적이고 편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고군분투하는, 제대로 된 UX 디자인을 하는 기분이 든다.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더 나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더 나은 자동차,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 나를 안심시킨다.


4. 돌아보니 UX 디자인도 결국 논리 싸움이다. 이력은 논리의 중요한 근거로서 작용하고, 데이터는 논리에 힘을 실어준다. 우리가 세우는 모든 논리의 중심에는 사용자가 있다. 우리가 추가하는 기능이, 이를 위해 우리가 쓰는 시간이 정말 사용자의 제품 경험을 좋게 만들고 있는가? 지금 회사에 다니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질 질문이 아닐까 싶다.


5. 컨셉을 만들 때는 사용자의 내일을 고민한다. 사용자가 내일 겪을지도 모르는 문제를 상정하고, 우아하고 멋진 경험을 뽐내서 이해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양산은 사용자의 오늘을 고민해야 한다.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고민하고 대비해서 사용자가 지금 당장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이전 회사에서는 주로 컨셉을 만들었다. 쿨하게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양산을 주로 하고 있다. 빈틈이 있으면 안 되다 보니 보이지 않는 곳까지도 생각하느라 진이 빠진다. 컨셉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전에 없던 꼼꼼함과 구구절절함이 필요하다.


유럽에 4개월 만에 돌아왔는데, 어제 온 것처럼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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