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일에 이렇게까지 몰두한 건 처음이다. 생소하다.
1. 강릉에 다녀왔다. 창밖에 소나무 숲이 보이는 숙소에서 여유를 누리고, 파랗고 푸른 바닷가를 하염없이 걷고, 파도가 몰아치는 해변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와인을 마시고, 달과 별이 쏟아지는 카페에서 낮밤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이틀을 보냈다. 단절된 시간이 지나고, 답답한 서울에 돌아왔다. 벌써부터 그 고요함이 그립다.
2. 퇴근만 하면 머리가 멍하다. 회사 근처에서 저녁을 때우고 집에 돌아온다. 약속도 잊고, 하려던 일도 잊고, 읽으려던 책도 잊은 채, 그저 침대에 눕는다. 하염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12시가 지나길 기다린다. 너무 일찍 일어날까 봐 졸려도 버틴다. 때로는 너무 늦게 일어날까 봐 놀고 싶어도 잠에 든다. 회사 일에 이렇게까지 몰두한 건 처음이다. 생소하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3. 팀에서 이제 0.8인분 정도 하고 있다. 여전히 많이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내가 기특할 때가 있다. 남은 0.2인분은 경험이 쌓여야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서두르지 말아야지.
4. 일을 하면 할수록 자동차 업계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말에 공감하고 있다. 자동차를 잘 아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많이 탄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잘 모르면 얼토당토않은 걸 디자인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자동차 경험이 있거나, 적어도 하드웨어 양산 경험이 있는 사람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자율주행이든, 자동차 디자인이든, 자동차 광고든 자동차 관련 뭐라도 해본 사람이 낫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야 업계가 발전한다. 잘 아는 사람의 경험과 새로운 사람의 관점이 섞였을 때 더 좋은 무언가가 나온다. 잘 몰라도 들어올 수 있어야 하고, 어디선가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진입장벽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오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재미있는 모험을 많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코로나가 지나가면 모빌리티 디자이너 모임이라도 작게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다.
5. 일을 잘하기 위한 기본은 커뮤니케이션 능력, 다시 말해 읽기와 듣기, 쓰기와 말하기다. 잘 읽고, 잘 들어야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잘 쓰고, 잘 말해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그게 리서치든, 기획이든, 전략이든, 디자인이든 똑같다. 기본만 잘해도 중간은 간다. 자기 맘대로 보고, 자기 맘대로 듣고, 자기 맘대로 이해하고, 자기 맘대로 쓰고, 자기 맘대로 말하는 사람과 일한다고 생각해보자. 시간은 시간대로 쓰는데, 말이 안 통하니 진도는 안 나가고. 그런데 상대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많이 읽고, 많이 들어야 하며, 자주 쓰고, 자주 말해야 한다. 지식의 폭과 깊이를 넓혀야 더 많이,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대한 공부도 필수다. 또, 내 멋대로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상대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내 생각을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했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조금 오래 걸리겠지만, 가장 확실하다.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혹은 너무 급해서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냐고? 일단 물어보자. 내가 상대의 말 혹은 글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제대로 썼는지 혹은 말했는지 상대에게 물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바쁜 것 같아서, 혼날 것 같아서, 바보처럼 보일 것 같아서, 평소에 말을 안 해봐서, 모르는 사람이라서, 직급이 높아서, 이 정도면 대충 이해한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질문을 피한다. 그 마음 이해한다. 그러나 계속 답답한 채로 있는 것보다는 잠깐 창피한 게 낫다. 안되면 다른 누군가에게라도 묻자. 커뮤니케이션에서 오해만 줄여도 절반은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