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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Apr 25. 2021

혼세마왕의 다섯

입사 7주 차 회고(?)

1.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공존한 상태로 7주 차를 보내고 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잠시 쉬어가는 날도 있었지만, 강박은 그렇지 못했다. 초반 몇 주는 꿈속에서도 버튼 하나조차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도 이런 강박 덕에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스프린트도 무사히(?) 배포했다. 첫 3개월이 지나고 나는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2. 나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고, 광고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 이후 스웨덴에서 인터랙션 디자인을 공부했고, 제품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러고는 자동차 회사에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디자인했다. 요즘 이런 배경들이 내가 최근 들어서 겪는 어려움에 한 몫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살면서 말을 못 한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내가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 같다. 무슨 말을 꺼내기가 무섭다. 


나는 1과 0 사이의 애매하고 추상적인 무언가에서 공통적인 요소를 끄집어내어 정리하고, 정의하면서 살아왔다. 세상을 둘로 나누기 전에 최대한 고민하고, 끊임없이 의심한 후 결정을 해야만 하는 그 순간에 둘로 나누곤 했다. 내 머릿속에는 좋다, 싫다가 대척점에 있지 않고 늘 독립적으로 존재해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이런 나의 사고방식에 혼란을 겪는 사람이 늘어나다 보니 말을 아끼고 있다. 예전에는 글이든 발표든 어디든 내 생각의 흐름과 고민을 들려주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보여줘서 좋을 게 없는 것 같다. 


덕분에 요즘 내 머릿속 한 구석에 나는 과연 디자이너인가? 디자이너라고 치자. 그러면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라는 물음이 똬리를 틀고 있다. 디자이너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잘하는 건 무엇인지, 그걸 더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지만, 계속 부딪히면서 지금 하는 걸 열심히 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 같다. 


3. 새로운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금까지 만나고,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는 또 다른 박자와 속도로 살고 있다. 삶의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꼭 삶의 박자도 빠른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나는 지금 어떤 박자와 속도로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떤 박자와 속도에 맞춰서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4. 요즘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을 꺼내보니 찡찡도 이런 찡찡이 없다. 혼란하다 혼란해. 그래도 이전과 비교하면 디자인과 제품 그 자체에 집중하고, 고민할 수 있어서 스트레스도 적고, 무언가 빠르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즐겁다. 지금은 아직 적응하는 중이라 작은 일에도 품이 많이 들지만, 완전히 적응하고 난 뒤에는 그 모든 시간을 일에 집중하면서 더 빠르게 디자인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고생한 만큼 배우고, 성장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조금 더 힘내 보기로.



5. 1년 반 동안 참여한 Climate Change Impact Filter 프로젝트가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론칭했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올라가면 지구 상의 생명체 중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질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민세희 작가님의 데이터 비주얼라이제이션 프로젝트로, Google Art & Culture 팀에서 후원했다. 나는 김재엽 교수님 덕에 곁다리로 껴서 UX/인터랙션 디자인으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한참 모자란 실력에 프런트엔드 개발도 해볼 수 있었고, 구글 QA의 벽도 넘어볼 수 있었다. 홍보 끝~!


구경은 여기에서 → https://artsexperiments.withgoogle.com/impactfilter/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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