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오르내림을 즐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
1. 이직 후 3개월이 흘렀다. 벌써! 네 번의 스프린트가 지나갔고, 일적으로, 감정적으로 부침을 겪었다. 짧은 기간 빠르게 적응하며 꽤나 성장했지만, 몸과 마음의 밸런스가 무너질 위기도 여러 번 있었다.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서는 체력과 지구력도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어떻게 일해야 꾸준히 잘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회사의 속도와 방식에 맞추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결국 나에게 편하고,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야 내가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의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조금 내려놓았다. 내가 무너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대신 이 과정을 즐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2. 플렉스는 근태 관리, 전자 계약, 급여 정산 등 기업의 인사 관리를 한 곳에서 제공하는 HR 플랫폼을 서비스하는 B2B SaaS 스타트업이다. 나는 여기서 Payroll(급여 정산, 이하 페이롤) 프로덕트를 디자인하고 있다. 페이롤은 도메인 지식이 좀 있어야 디자인이든 뭐든 가능한데, 급여를 받아만 봤지, 어떻게 주는지는 생각조차 안 해봤던 터라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적응하느라 고생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히 지금은 급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정산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큰 그림, 그리고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앞으로는 노무와 세무의 관점에서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회사마다 다른 다양한 정산 방식을 포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할 텐데... 아직 갈 길이 멀다.
3.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나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3개월 동안 스스로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특히, 나의 즐거움은 무엇보다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큰 축복이다.
힘든 날도 있고, 어렵고, 막막한 날도 있겠지만, 이런 팀과 함께라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보니 걱정은 없다. 같이 잘하다 보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페이롤 스쿼드, 디자인 챕터 여러분,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4. 스타트업은 어쨌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생존에 여유가 생기기 전까지는 결과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 고통 속에 배움이 있고, 성장이 있다고들 하지만, 즐거움 속에도 있다. 과정이 즐거우면, 결과가 안 좋아도 다시 도전할 힘이 생긴다. 결과에 대한 압박과 책임감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이 오르내림을 즐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달릴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있다.
얼마 전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한 동안 멀리했던 사이드 프로젝트도 조금씩 해보고 있다. 쉬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회사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해소하고, 회사 일로 복잡한 머리를 환기시키고,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외부 활동들이 쉬는 것보다 더 큰 에너지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본업과 시너지도 나는 것 같고. 오히려 좋아(?)
5. 지난 금요일, 따릉이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일도 조금 빨리 끝나기도 했고, 날씨도 선선했고, 내일부터는 본격 여름 날씨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무리해보기로 했다. 중간에 동작역 근처에서 숨이 조금 차올라서 10분 정도 쉰 것을 빼면 강남역에서 여의도까지 한 시간 남짓 걸렸다. 해 질 녘의 한강을 배경 삼아 달리다 보니 그다지 심심하진 않았다.
회사는 다음 주도, 다음 달, 그다음 달도 이번 주처럼 바쁠 모양이다. 더 바쁠 수도 있고. 그 안에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 달리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보람으로 삼아야 할지, 일과 삶의 외줄 타기는 어떻게 즐겨야 할지, 나의 즐거움과 원동력은 무엇인지 찾는 것은 나의 몫으로 남겨둔다.
스타트업 3개월 다녀보니 뭐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 이렇구나 싶기도 하고. 그래, 뭐 어떻게든 되겠지.
+ 플렉스 써주세요. 잘해드립니다.
++ 프로덕트 디자이너, 프로덕트 엔지니어, 브랜드 마케터 채용 중! 같이 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