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보이는 대로 읽다
서평은 시간이 꽤 필요한 작업이다. 읽으면서 든 생각을 문장으로 옮기고, 그 사이사이 느낀 점도 쓰다 보니 연결은 연결대로 안 되고, 문장은 길어진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도 고작 쓴다는 게 1년에 서너 권 정도니까. 다행히 서평을 쓰고 싶은 책이 많은 건 아니다. 생각하게 만드는 책, 돌아보게 만드는 책, 보다 나은 삶을 제안하는 책, 다시 읽고 싶은 책, 아니면 올해의 책 정도? 그리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5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한다.
서문이 길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여러 출판사에서 20년 넘게 교정 교열 일을 해오신 김정선 작가님의 책이다. 제목을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종종 내 글에 있는 맞춤법 오류와 피동형 문장 사용을 지적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앞에서 당당하게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누가 교정을 보지 않더라도 나름의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아직 안 읽은 책이 책장에 적어도 20권은 있는데.
이 책은 글을 다듬는 방법이 한 축, 저자가 교정 교열 일을 겪은 에피소드를 다른 한 축으로 챕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글을 다듬는 방법은 내 기억 저편에 먼지 덮인 문법과 만나는 시간이었다. 특히, 적의를 보이는 것들. 아마 이 책을 읽었다면 이미 웃고 있을 것이다. "이 사람 앞에만 열심히 읽었네". 그런데 정작 본인도 거기만 기억나는 게 웃겨서. 천천히 책장을 넘기면서 조심해야지, 고쳐야지 따위의 다짐을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한글 문장만 20여 년 넘게 다듬어 왔는데, 이제까지 써서는 안 되는 잘못된 낱말이나 표현 때문에 문장이 이상하거나 어색해진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써서는 안 되는 낱말이나 표현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엉뚱한 자리에 끼어들어서 문제가 될 뿐이지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낱말이나 표현 같은 건 없다.
그리고 다른 한 축. 이 책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에피소드는 교정 교열 작업을 한 책의 저자에게서 받은 메일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묻는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그리고 작가는 답한다. 그렇게 둘은 메일을 주고받는다. 서로 오해하고, 풀고, 다시 오해하며 작가는 저자가 한 질문의 의미를 서서히 이해한다. 그리고 둘은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책 판매에 도움이 안 되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근처 서점에서 확인하자.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처럼 말이죠. 제가 하는 일은 다만 그 이상한 문장들이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이상하도록 다듬는 것일 뿐,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는 게 아닙니다.
이제는 내 마음을 흔든 문장을 소개할 차례, 그 첫 번째 문장이다. 그래. 사실 모두가 이상하다. 본인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정상인 사람을 본 적 있는지? 정상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 같은 게 아닐까. 정상과 비슷한 단어로 나는 평범을 꼽고 싶다. 본인은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대체 어디 사는 누구의 평범함인 걸까.
한 글자라도 더 썼다면 그만한 효과가 문장에 드러나야 한다. 게다가 다른 언어에서 빌려 온 표현을 쓰기까지 했다면 더 말할 필요 없겠다.
요즘 글을 쓰는 일이 잦아졌다. 지나가는 생각들을 붙잡고 싶어서,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싶어서. 그러면서 문장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어떻게 더 명쾌하게 말할까. 어떻게 해야 필요한 말만 할 수 있을까. 이 문장을 보고 정신이 아득했다. 길고 설명적인 문장을 선호했었기에 한방 맞은 느낌이랄까. 이 문장은 카피 라이팅 방법론과도 관련이 있다. 까칠한 소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한 글자도 허투루 쓸 수 없다. 글자 하나, 단어 하나, 조사까지도 철저히 계산되어야 한다. 혹여나 비속어나 다른 언어를 쓰려면 그 이유와 효과가 분명해야 한다. 가능한 가장 짧은 문장으로 의도한 목적을 이루는 것, 카피 라이팅은 저자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럼 그렇게 쌓인 문장들이 모여서 선생님이 묘사하고자 하는 풍경을 이루는 것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쌓인 문장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이동해 가면서 읽는 동안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 그 풍경이 이미지로 새겨질 뿐이죠.
너무 당연한 말. 그래서 더 강력한 말. 후배들에게 시각화를 가르쳐주겠다며 20여 명을 앉혀놓고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인간의 시각은 Z자로 흐르니 좌에서 우, 상에서 하로 화면을 구성하라고 강조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당연한 말이라 부끄러웠다. 이불 어디 갔지.
교정지 내용이 재미있으면 오탈자를 놓치기 쉽다. 오탈 자는 물론 어색한 문장들을 제대로 다듬으려면 한 글자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장 유심히 들여다봐야 하니 내용에 지나치게 빠져들어서는 곤란하다. 말하자면 일을 재미없게 해야 잘하게 되고 재미있게 하면 실수를 하게 된달까.
그래서 일이 재미없나 보다. 적당히 무관심하다. 덕분에 실수 없이 일을 처리하는 편이다. 음. 그렇지만 역시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실수해도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지나치게 빠져들고 싶다. 실수도 하고, 절망도 하고. 아니, 내가 기계도 아니고 말이지. 이럴 거면 음악을 계속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비록 내가 천재도 아니고, 운이 좋지도, 그렇다고 돈을 벌지도 못했겠지만 너무나 재미있어서 마음껏 빠지고, 마음껏 실수할 수 있었을 테니까.
피곤한 일이죠. 미세한 차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동물의 세계에선 포식자가 아니라 주로 잡아먹히는 초식 동물의 몫이잖아요. 인간 세계에선 ‘을'들이 그러죠.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요.
아아. 이것은 내 얘기. 작은 체구에 예민한 체질로 태어난 나는 포식자들 사이에서 눈치 보며 삶을 이어가는 초식 동물로 살았다. 영락없는 '을'로 자랐다. 요즘 사수와 룰 세팅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한다. 맨 처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관계가 결정된다는 것. 초식 동물에게 어느 날 갑자기 육식 동물로 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초반 세팅에 따라 클라이언트와 대등한 위치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사수의 생각이다. 초식 동물에게도 살 길은 있다.
‘나는 누구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말해 준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정의하기보다 성질과 취향이 대신 말해 주기를 바라는 주어들. 삿된 세상은 그런 주어들로 가득하다.
마지막 문장. 저자가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는 스스로가 누군지 말할 수 있는 세상, 스스로가 누군지 문장으로 쓸 수 있는 세상, 잘 정의되고 정리된 주어, 아니 사람들을 보고 싶은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복잡한 시대다. 당신은 자신이 누구라고 당당히 정의할 수 있는가. 나는 모르겠다. 다만 나중에 내 직장이나 직업이 나를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나는 이진재입니다"라고 말하면 충분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지금 뭐라도 해보려는 거고.
결국 서평을 핑계로 내 이야기만 신나게 했다. 내 상황에 맞는 문장들을 뽑은 거니 당연하지만. 어. 그나저나 어떻게 마무리하지? 책 좋아요. 읽어보세요. 길지도 않아요. 다만 문법 가르쳐주시는 부분은 좀 지루해요. 하지만 그동안 써온 문장을 생각해보면 분명 뜨끔하실 거예요. 그러니 차분히 읽어보세요. 다음에 쓰는 글도 분명 이상하겠지만, 어느 정도 자신감은 생길 테니. 그리고 이런 교정 교열 관련 책 하나쯤 집에 있는 것도 그럴싸하잖아요. 나는 단어 하나, 표현 하나, 문장 한 줄 신경 쓰는 세심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책이니까요. 그럼 안녕. 그나저나 제대로 쓴 거겠지 이 문장?
+ 재작년에 쓴 글이다. 다시 읽으니 지금과 느낌이 묘하게 다르다. 스톡홀름에 있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 했었는데, 그 덕분에 머리가 텅텅 비어있는 느낌이다. 먼지 덮인 서재에서 책 한 권 꺼내서 보이는 대로 읽고, 내 마음대로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