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에서 서울까지 1주일이 걸렸다
1.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 라운지에서 암스테르담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비행은 유난히 정신이 없다. 정신적으로 떠날 준비가 안된 기분. 특히나 이 아름답고 눈부신 여름의 스톡홀름을 두고 무덥고 습한 서울로 돌아가려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정쩡한 기분은 잠시 뒤로 하고 일단 집부터 가자. 스톡홀름에서 서울까지 14시간이 걸렸다.
2. 새벽 세시, 눈을 떴다. 모든 게 꿈같다. 내가 정말 스톡홀름에 다녀오긴 한 건지 의심스럽다. 친구들이 간밤에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 하나씩 읽고 답장하면서 스톡홀름에 무엇을 두고 왔는지 알게 되었다. 여권도, 표도, 카메라도, 가방도 가져왔지만, 그곳의 기억과 내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잘 누워있던 침대가 묘하게 불편해졌고, 며칠밤을 시차 적응인지 뭔지 모를 것으로 그렇게 뒤척거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서야 정신이 들었다. 스톡홀름에서 서울까지 1주일이 걸렸다.
3. 디자인 매거진 CA에서 주최한 '나라는 브랜드' 컨퍼런스에서 진행한 발표가 끝났다. 제목은 '행복한 잡캐, 이진재 이야기'. 나는 어떤 브랜드이며, 그 브랜드를 어떻게 구축했고, 앞으로의 목표에 대한 이야기였다. 부끄럽지 않으려 3주 동안 부단히 애썼지만, 강단에서 내려와서도 한참 동안 얼굴이 화끈거렸던걸 보면 꽤나 부끄러운 발표였던 것 같다. 끝나고 많은 분들께 질문도 많이 받고, 재밌었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하고,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관종의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4.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을 다시 읽고 있다. 이해하기도 쉽고, 보이지 않던 문장이 보인다. 지난 10개월 동안 그래도 조금은 디자이너스러워졌나 보다. 문득 다른 책도 궁금해졌다. 내 방 책장에 쌓여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꺼내서 읽어봐야지.
5. 디자인은 단순히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생활 속에서 새로운 의문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