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아이가 있었다. 회색 티셔츠와 연한 갈색 바지를 입고 있는 폼이 딱 남자아이였다. 하지만 머리가 나보다도 길었고 생김새로만 보면 또 얼마나 예쁜지, 나는 그 아이의 성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 때마침 다른 반 선생님이 새로운 아이가 들어온 반으로 잠시 들렀다가 그 아이를 발견하고는 이름을 물었다.
“너 새로왔니? 이름이 뭐야?”
그 아이는 이내 대답을 했고, 그 이름을 듣고 그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새로 온 oo야 반가워, 예쁜 여자아이네!”
순간 그 반 담임 선생님은 방금 예쁘다고 말했던 선생님을 쳐다보며 복화술을 시작했다.
“여자아이라고?”
“그럼, 남자아이야?”
“난 남자아이인 줄 알았는데?”
그러더니 두 선생님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나는 구분하기 더 어렵지~ 여기 우리 반도 아니고…“(외국 아이들의 성별은 간혹 머리가 길거나 짧은 것으로는 절대 구분이 안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보통 이름으로 추측하는 편이다.)
순간 우리는 모두 서로 눈으로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말을 들어가며 추측을 해보면서 말이다. 그 사이 다른 한 선생님은 오피스에 아이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러 나갔다 돌아와서는 선생님들만 들리게 이야기했다.
“남자아이래요.”
호주에 산 지 9년 차가 되었지만 아직도 호주 문화를 다 모를 때가 있다. 한국이었으면 아이의 옷차림이나 이름으로 이미 성별 구분이 되었을 일이다. 아이의 성별을 알아차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조차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처럼 머리를 기르는 경우는 허다했고, 옷차림 또한 성별에 따른 큰 차이를 두지 않고 아이들 옷을 입히는 부모들이 꽤 있다. 심지어 이름도 간혹 여자남자 모두에게 쓸 수 있는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걸 다 갖춘 아이가 새로 오게 된 것이었다.
더군다나 더 놀라웠던 사실은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성별을 묻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이의 인적사항을 파악하면 될 일이지, 아이에게 성별을 묻는다는 것이 그 아이에게 무례한 질문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이제 고작 5살이 된 아이였다.
아이라고 해서 인격이 없는 게 아니다. 존중이라는 것은 나이와는 관련이 없는 게 맞는 거였다. 인간은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우리가 잘 인지하고, 그렇게 진실로 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가 아이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그러므로 늘 모든 면에서 아이의 자존감이 건강하게 뿌리내리도록 격려해주어야 할 것임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사건(?)이었다.
그렇게 나는 호주 문화를 9년 만에 하나 더 습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