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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Jan 29. 2022

자영업 접고 호주로 이민 가자

오스트레일리안 드림의 시작

나의 결혼생활이 벌써 10년이 되었고 호주로 이민 온 지도 언 8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엊그제 결혼식을 한 것처럼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데 세월이 이렇게도 빨리 흘렀나 싶다.


나의 결혼식은 아직까지도 친구들 사이에서 빠지지 않는 안줏거리이다. 결혼식 날 그렇게 웃기만 하는 신부는 내가 유일할 거라고 했다. 아무리 결혼하는 게 좋았어도 부모님 심정을 헤아렸어야 했다고도 말했다. 정확히 맞는 말이었다. 그날 나의 모습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나를 마음에서 독립시키는 데 바로 성공하셨다. 덕분에 두 분은 서로에게 조금 더 애잔한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남는 건 부부뿐이라며.


결혼을 한 후 우리는 서울에서 경상남도 김해로 내려가서 직장 생활을 함께 시작했다. 시사촌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에 둘이 함께 취업을 하였다. 김해에는 어느 누구도 없었다. 그저 우리 둘 뿐이었다. 좋을 줄 알았지만 겨우 1년의 회사생활을 하고 다시 모든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저 가족들에게 폐만 끼치고 올라오게 된 것이다. 우리의 시작이 그랬다.


지금이야 서울 전세 집값이 엄청나지만 그래도 그때는 괜찮았던 것 같다. 특히 구기동이나 평창동 쪽은 언덕 위의 단독 주택들이나 비쌌지 길 가에 있는 집들은 생각보다 싼 게 많았다. 우리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평창동에 작은 빌라를 전세로 얻었고,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인사동 초입에 있던 4 평짜리 커피집을 인수하였다. 이름하야 '인사동 이태리 커피'. 그 작은 커피집은 부동산을 사이에 두고 똑같은 메뉴와 가격으로 경쟁을 해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카페 두 집이 나란히 있는 무시무시한 자리였다. 인사동에서도 꽤나 악명이 높은 자리였다. 우리는 그때도 역시 몰랐다. 모르고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몰랐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한국에서 자영업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인사동 상권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더 공감할 것이다. 그곳은 주변 상인들 뿐 만 아니라 노점상인들과도 경쟁해야만 하는 정말 쉽지 않은 곳이었다. 인사동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영업 경력이 20~30년씩은 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고작 사회생활 1년 해본 게 다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험난한 곳에서 우리가 통했고 덕분에 한동안은 정말이지 돈을 참 잘 벌었다. 그래서 더 돈만 보고 달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모든 삶은 피폐해졌다. 부모님과 식사 한 번 제대로 할 수도 없었고,  친구들과 만날 수도 없었으며 명절이나 국경일에 쉬는 건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을 뿐 만 아니라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대목 중에서도 대목이었기 때문에 남편과 둘이 오붓한 시간 한 번 가질 수도 없었지만 통장에 쌓여가는 돈 때문에 버텼다.


2년 여 동안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앞으로만 달렸던 우리는 결국 그대로 지쳐 쓰러져 버렸다. 이렇게 사는 우리의 인생이 엉망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과 돈이 다가 아니라는 것에 완벽히 동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을 하고 마침 우리 가게를 인수하고 싶어 하시던 분에게 바로 넘겼다.


그런 후 우리는 그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홀연히 호주로 왔다. 호주에 가서 조금만 노력하면 영주권도 바로 딸 수 있을 것 같았고, 우리는 그저 날씨 좋은 호주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우리의 추억을 모두 남긴 채 부푼 꿈을 안고 오스트레일리안 드림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 게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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