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보험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찬스
그렇게 한국을 떠나 호주에서 유학생 신분으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유학생이긴 했지만 사실 그때 나이가 이미 서른이 넘었고, 결혼한 지도 5년 차가 되어가는 데 아이는 없던 우리였다. 매일 친구처럼 알콩달콩 때로는 투닥투닥 철없이 지내던 때, 아이가 꼭 필요한가 싶은 생각도 하고 살던 그때, 나의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인해 영주권으로 가는 길이 전면 수정되었다.
나는 학교를 그만두었고, 학교 때문에 선택했던 선샤인코스트를 떠나 멜버른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남편이 요리 이민에 재도전해보기로 했기 때문인데 특히 요리는 멜버른에서 배우는 게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우리가 영주권에 결국 실패하게 되었을 때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한국으로 만약 돌아가게 된다면 그래도 전통과 명성이 있는 학교를 가서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퀸즐랜드 주에서 다시 빅토리아 주로 1400km 넘는 거리를 차를 가지고 이동하였다. 임신 7주의 몸을 이끌고 말이다.
이때는 벌써 우리가 호주에 온 지 이미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호주는 어떤 비자든 꼭 보험을 필수로 들어야 하기 때문에 학생 보험을 든 지도 3년이 다 되었던 것이다. 학생 비자 상태로 임신을 하게 되면 다들 병원비 걱정을 많이 하게 된다. 만약 보험이 없었다면 전 출산 과정까지의 비용은 대략 천만 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왜냐하면 출산 전에도 몇 번을 체크업 해야 하고 초음파도 두서너 번 찍어야 하는데 그것들이 모두 비용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보험회사에 가입되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학생 보험 유지 기간이 1년 이상만 된다면 공립병원에서의 전 출산과정은 무료였다. 심지어 중간에 보험 회사가 바뀌어도 상관없이 그저 보험 유지기간이 통틀어 1년만 지나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호주에 도착한 지 1년 후에 임신하면 전 과정이 무료이고, 적어도 호주 도착 후 3개월째에 임신을 하게 되면 임신 중 초음파나 피검사, GP와의 체크업 돈은 내야 하겠지만 출산 때는 이미 1년이 채워지기 때문에 출산은 무료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학생들이 보통 학생 보험을 들긴 하지만 그것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드물다. 혹여나 감기 같은 작은 질병으로 병원을 방문한다 해도 대략 50~60% 정도는 우리가 내야 하기 때문에 병원보다는 약국을 선호하게 된다. 심지어 치과에 들러야 하는 경우에는 학생보험으로는 그 몇 퍼센트 마저 커버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학생 보험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 들 실질적으로 보험 혜택을 받는 경우는 드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임신을 하게 되면 1년 이상 보험을 유지한 후에는 전 과정이 무료 혜택으로 적용이 되어 그동안 유학생 보험에 든 비용을 돌려받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멜버른 로열 우먼스 병원에서 출산을 하였는데 출산 시 1인 실이 제공되었고 출산 후에도 하루를 병원에 머물렀는데 모자 동실이 출산 직 후 이루어지는 것 또한 아주 만족스러웠다. 한국에서 말하는 자연주의 출산이 바로 이런 건가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산후 조리원은 결국 상업적인 시설임을 깨달았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산후 조리원은 정말 필요하지 않은 곳임이 분명했다.
엄마가 되는 순간 본능은 살아난다. 엄마라면 그냥 된다. 엄마가 되어보니 그랬다. 나는 이 모든 과정과 결과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언제나 나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로만 골라서 가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호주 유학생 신분으로 임신을 한다는 건 사실 영주권을 목적으로 온 경우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어디 계획한 대로만 이루어지겠는가. 그래도 결혼 5년 만에 감사하게도 귀한 아이를 얻었고 그 아이가 지난해 호주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