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고 있는 유치원은 조그마한 곳이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제법 인기가 좋은 곳이다. 많은 부모들이 한동안 입학을 하기 위해 대기를 하다가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이고, 형제, 자매 심지어 사촌지간까지도 모두 우리 유치원에 다니는 경우도 꽤 많이 있다.
이렇게 인기가 많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이 유치원에 머무는 동안 너무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부모들과 교육자 간의 대화를 통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락하게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에 노력을 아낌없이 한다. 매일 아침이면 그래서 모든 선생님들은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제법 긴 시간을 할애한다.
Ep.1
이런 우리 유치원에 최근 한 가지 일이 있었다. 우리 유치원에 다니는 남매가 있는데 어느 한 날 그 아빠와 원장 선생님께서 꽤나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 아빠가 남매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나는 순간 무슨 일이 생긴 걸 직감했다. 잠시 후 원장 선생님이 모든 교육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남매의 부모가 현재 별거를 하게 되었고, 아이들을 이제 온전히 아빠인 자신이 돌보게 되었기 때문에 모든 정보는 새롭게 만든 아빠의 앱 계정에도 공지를 해 주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남매 중 둘째인 남자아이가 최근 그 때문에 떼가 늘었는데 그런 것들은 우리가 조금 이해를 해 주며 특별히 보살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선생님들은 그제야 왜 둘째가 최근 그렇게 떼를 썼는지, 갑자기 잘 놀다가도 울었던 것인지 알게 되었다.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굳이 하나 꼽으라면 떼를 쓰는 아이를 훈육 대신 따뜻하게 안아 주는 것이었다.
사실 동네가 너무 작아서 그 아이들 부모들을 사적으로도 알고 있는 다른 부모들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들도 좀 더 남매를 따뜻하게 대해주려고 했다. 다행히도 아이들의 부모는 얼마 후 다시 부부상담을 받으며 다시 잘 지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자칫 평생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법 한 부모의 별거 시기가 있었지만, 부모와 교육자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협조로 인해 무사히 힘든 시기를 잘 넘어가게 되었다. 현재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Ep. 2
호주 유치원은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직원회의를 한다. 유치원의 운영시간 때문에 이 회의는 거의 저녁 6시 넘어 시작을 하고 대략 2시간 반 정도 진행이 된다. 우리 유치원은 매 달 첫 주가 회의 날이라 그 주가 되면 무언가 늘 바쁘다. 안건에 대한 의견도 좀 생각해봐야 하고, 한 달간 내가 교육자로서 어떤 사건을 통해 어떻게 일을 해결했으며 향후엔 어떻게 대처를 하면 좋을지에 관해서도 짤막하게 노트필기를 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다른 교육자들과의 의견도 교류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토론이 진행된다.
회의 일주일 전 원장이 전 교육자들에게 몇 가지 자료를 공유했다. 읽어보고 생각해보라고 했다. 내용인즉슨,
교육자가 아이들과 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이 과연 아이들의 정서적 행복감과 성취감에 영향을 주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반복되는 ‘인간 인쇄기’ 같은 활동인가
https://www.thecuriosityapproach.com/blog/stop-the-craptivities
최근 SNS나 블로그들을 보다 보면 소위 #엄마표XX 라는 문구를 많이 접한다. 그런데 과연 그 모든 엄마표 활동들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제를 정하고 그에 필요한 재료나 도구를 제공한 후 아이들이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고 그 과정에서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는 게 목적인데, 가만 보면 이미 다 짜인 틀에 아이들은 정해진 활동을 똑같이 해 내야만 되는 게 대부분의 엄마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때는 그냥 엄마의 작품 혹은 유치원 선생님들의 작품인 경우도 있다. 아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이들 손바닥 발바닥을 열심히 찍어서 루돌프나 산타를 만들어 집으로 보내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하는 인간 인쇄기 같은 활동이 아닐까? 블록을 가지고도 주방놀이를 할 수 있는 게 아이들의 상상력인데, 너무 어른들의 생각의 틀 안으로 아이들을 가두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나도 한 동안 #엄마표미술놀이 라는 걸 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유아교사로 일 하면서부터는 모든 활동은 그만둔 상태이다. 그만두었다는 것은 안 한다는 게 아니고 짜인 것들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이다. 그저 다양한 것들을 아이가 직접 선택하도록 하고 스스로 활동해 나가도록 지원할 뿐이다.
아이가 어떤 활동의 결과물이 아니라 활동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인지하고 느끼며 스스로 배우는 게 궁극적으로 아이들의 창의력과 정서적 안정감에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