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활동은 스스로 하는 게 우선
호주 유치원 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치원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특히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유치원의 경우에는 교사들이 아이들의 손도장 혹은 발도장을 찍어 만들어 내는 단순한 미술놀이들이나 아니면 교사들이 대부분의 것들을 거의 만들어 놓고 아이들은 사진이나 얼굴만 들이미는 등의 활동은 해서는 안 되는 프로그램들 중 하나이다.
예를 들면, 어버이날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이 만들어 놓은 꽃장식을 들게만 하고 찍어 보내는 사진이라던가, 선생님들이 다 만들어 놓은 것들에 아이들 이름만 적어 보내는 것들이라던가,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손바닥이나 발바닥으로 루돌프 같은 거 만들어서 보내는 것들은 정말 호주 유치원에서 안 좋아하는 활동 중 하나이다. 우리 유치원 원장은 이런 걸 매일 종이 낭비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만약 호주 유치원 중 이런 활동을 하는 곳이 있다면 솔직히 발전적인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한 번은 내가 아이들과 구슬에 물감을 묻혀서 상자 안에 넣은 후 그림을 만들어보는 활동을 준비했다. 당시 우리 반 아이들 연령대가 3-4살이었기 때문에 즐겁게 잘 해낼 줄 알았다. 하지만 이 활동을 아이들이 생각보다 이해를 못 했고, 박스 안에 있는 구슬들을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범을 보였다. 상자 안에 종이를 깔고 물감을 다양하게 묻힌 구슬을 넣어 데굴데굴 굴리며 색깔이 칠해져 가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러자 한 선임교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구슬을 굴리지 않고 구슬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여도 상관없지 않을까?"
나는 아차 싶었다. 이 정도의 시범도 아이들의 창의력에 제한을 줄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호주 유치원 교사들이 하는 프로그램 준비라는 건 결국 어떤 완성품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준비물들을 제공해주고 아이들의 상상력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다양한 결과물로 나오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어떠한 결과물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한 것도, 맞게 하고 틀리게 하는 것도 없다. 작품 활동을 하는 과정을 통해 쌓은 다양한 경험과, 그때의 즐거운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것들이 아이의 정서적, 인지적 발달에 결국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임에도 틀림없고 말이다.
그저 교사로서 아이들의 호기심과 창의력을 어떻게 하면 자극시켜 줄 수 있을지, 그리고 아이들이 해내는 과정을 통해 얼마나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를 프로그래밍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다음 주에 있을 마더스데이를 준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