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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Feb 01. 2023

다시 맞이한 결혼기념일

작년 결혼 10주년 기념일이 일어났던 큰 사건사고로 인해

나는 기념일을 기념하는 것이 두려웠다. 아무렇지도 않은 날처럼 지나가는 것도 아쉬웠지만 무언가를 거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SNS에 우리의 기념일을 공유하며 주변의 지인들과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조차도 말이다.


그 큰 일을 겪고 난 후 그날의 기억을 모두 다 지우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없었던 것은 그 날이 우리의 결혼 10주년 날이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모든 사건 중 딱 한 가지 행복을 주었던 것은 바로 샴페인을 마시며 잠시나마 우리 부부가 1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다른 것 다 쓰레기통에 폐기처분 했고 그때 마셨던 샴페인의 코르크 하나만을 남겼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후 우리의 결혼 11주년 기념일에 나는 그날 마셨던 샴페인을 다시 샀다. 매년 아주 특별한 날에만 마셔야 할 만큼 고가의 샴페인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그 샴페인을 사야 할 것만 같았다. 다 잊고 싶던 기억들이었지만 남겨놓았던 샴페인 코르크 덕분에 더 뇌리에 박히는 우리만의 특별한 의식 같은 게 된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작년 사고를 안주삼아 한 잔 두 잔 마시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순간, 지루하게 다투던 우리의 모습들을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리의 얼굴엔 제법 미소를 띠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두 번째 코르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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