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밑바닥에서 산다. 재첩은.
세상 가장 낮은 곳을 찾아 흘러가는 강물이 그 밑바닥에서 키워낸 생명이 재첩이다. 남해로 빠지는 섬진강 하구 모래밭이 그들의 자리다. 잘게 부서진 시간의 알갱이들 속에서 재첩은 번식하고 성장한다. 조개는 사람처럼 입과 항문을 따로 갖지 않았다. 강물을 삼키고 뱉어내는 입수공과 출수공, 두 개의 구멍은 나란히 붙어있다. 통째로 삼킨 강물에서 영양분을 얻어 제 살을 찌우고 껍데기를 키운다. 딱히 머리 쓰는 일도 없고 다리가 달려 바삐 나다니지도 않고 그저 햇볕 좋은 강바닥에 편히 누워 먹고 산다. 재첩 팔자 참 쉬어 보인다.
5월이면 섬진강 재첩잡이가 제철이다. 서리가 내리는 상강부터 재첩은 땅속 깊숙이 파고들어 겨울을 지낸다. 봄이 오고도 한참 지나서야 이 작은 조개는 땅 위로 기어오르는데 그래봤자 강 밑바닥이다. 섬진강 하구를 끼고 재첩잡이로 살아가는 하동과 광양 사람들도 분주해진다. 배를 가진 어부는 ‘형망’이라고 불리는 끄는 그물을 달고 깊은 강바닥을 훑어 재첩을 쓸어 담는다. 배가 없는 주민들은 ‘거랭이’라는 끌개로 얕은 물가에서 작업한다. 사람이 직접 강물에 들어가서 뒷걸음질로 강바닥을 쓸어가며 재첩을 건져 올린다. 강물이 멀리 빠지는 사리 물때에 맞춰 5일 정도씩, 한 달이면 약 열흘 정도 일한다. 건져낸 재첩은 여러 차례 이물질을 걸러내야 하는데 대체로 수작업이다. 단순해 보여도 허리를 굽힌 채로 몇 시간씩 이어지는 고단한 육체노동은 종종 극한 직업으로 방송을 타기도 한다. 강바닥을 끌어서 재첩을 생산하는 이들은 생태계의 먹이 사슬에 정점에 있지만, 인간이 만든 먹이 사슬의 맨 밑바닥을 떠받친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면 껍데기의 광택이 선명해지면서 살이 오르고 육질도 연해져 재첩은 깊은 맛을 품는다. 재첩을 찾는 입도 부쩍 는다. 본격적인 재첩의 계절이다.
민물조개라고 하지만 적당히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역을 좋아해서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이곳, 광양과 하동에 집중해서 서식한다. 재첩잡이는 10월까지 이어지지만, 장마와 홍수로 강이 몸살을 앓는 한여름에는 쉰다. 사람이 어쩌다 이 작은 미물에 입맛을 들였는지 알 수 없으나 이러저러한 기록에 남긴 흔적을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맺어온 인연은 분명하다. 오랜 인연치고는 요리법이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
회로 무쳐서도 먹고 밀가루 반죽으로 부쳐서도 먹는다. 하지만 재첩회는 봄미나리의 아삭한 식감과 강한 향 그리고 시고, 달고, 매콤한 회 고추장 때문에 재첩이 제 이름값을 하지 못한다. 굳이 가성비를 따지자면 훨씬 씹을 것이 많은 골뱅이 무침이 한결 낫다. 기름에 튀겨서 전으로 먹는 부침개도 나을 게 없다. 크게 한 입 집어넣어도 기껏 손톱 크기 조갯살의 존재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허기를 채우기도 턱없이 적으니 그저 반주로 식욕을 돋우거나 안줏거리 정도로 어울릴 것 같다. 재첩 맛을 제대로 보려면 국을 끓여 먹는다. 생각만큼 많은 재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적당히 해감이 된 조개를 껍질째 넣고 끓이다가 소금을 조금 뿌리고 심심하면 붉은 고추로 담백한 멋을 더한다. 그리고 재첩에 어울릴 길이만큼 부추를 썰어 넣는다. 칼칼한 맛을 좋아하면 청양고추를 얼기설기 썰어 넣고 마지막에 센 불로 푸르르 끓여낸다.
재첩은 국물 속에 제 삶의 기억을 온전히 우려내는데, 재첩이 우려낸 맛이 국물에 풀어져 푸른빛을 머금는다. 이 푸른빛은 맑은 가을하늘빛이 아니고 짙은 바다 색깔도 아니다. 뿌옇고 나른하게 풀린 빛은 이른 봄 생기를 품은 강물 빛이다. 봄철 내내 강 언덕에 아른아른 번지던 매화 군락의 풍경이고, 19번 국도를 따라 꽃비 날리던 벚꽃 바람의 체취다. 그러니 재첩 국물이 품고 있는 섬진강 한 그릇을 제대로 마시려면 수저로 천천히 떠먹는다. 덥석 공깃밥을 말거나 따로 다진 양념이나 깍두기 국물을 찾는 것은 설렁탕집에 어울리는 식사다. 수저로 국그릇 바닥을 살짝 걷어 올리면 한두 점 조갯살이 부추 몇 줄과 함께 담긴다. 먼바다 냄새가 옅게 드려진 아득한 국물을 넘기고 나면 입안에는 오롯이 재첩이 남는다. 불우한 이 작은 고깃덩어리는 고단한 밑바닥 인생을 견뎌낸 질긴 육질을 갖지 못해 사실 씹힐 것도 없이 허물어진다. 다소 허망하게 삼켜지는 아쉬움에 다시 한술 또 한술 뜬다. 그러다 보면 흘러드는 강물이 핏줄을 타고 허한 심장을 거쳐 술로 찌든 창자 구석구석까지 번진다.
재첩국은 술국이고 해장국이다. 고단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몸 축내가며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애써 번 돈을 주고 술을 먹고 술을 깨려고 재첩국을 사 먹는다. 그렇게 재첩국을 찾는 술꾼들이 있어 재첩 잡는 일도 돈이 된다. 재첩과 재첩 잡는 어부와 재첩국에 목을 매는 술꾼의 먹이 사슬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먹이 사슬은 일반적인 피식자와 포식자처럼 피라미드 위에 놓인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다. 어부의 삶이나 술꾼의 삶이 밑바닥 인생을 살아 본 재첩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재첩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어부를 먹여 살리고 술꾼을 위로한다. 보시도 이만한 보시가 없다. 그래서 이 생태계는 평등하다. 먹이 사슬의 가장 밑바닥을 사는 존재들끼리의 수평적 연대이자 혼연일체의 공감은 끈끈하다. 불우한 존재가 불우한 존재에게 위로받는다. 담백한 재첩국 한 그릇이 위대한 이유다.
올해 봄은 우울하다. 완강하게 버텨오던 밑바닥 생태계가 위태로워진 까닭이다. 몇 해 전 섬진강에 들이닥쳤던 수해의 여파로 재첩 생산이 눈에 띄게 줄었다. 물살에 쓸려 바다로 떠밀려가고 떠밀려온 모래에 덮여 이 작은 생명체는 입과 항문이 막힌 채로 죽은 모양이다. 재첩이 줄자 재첩 잡던 어부들도 덩달아 손을 놓고, 놀릴 수 없어 억지로 돌리는 가공공장도 빚만 늘어가고 있다는데, 수자원공사로 몰려간 주민들의 집단시위에도 피해보상은 요원하다는 뉴스만 뜬다. 그래서 섬진강 재첩을 기다려온 술꾼의 봄은 우울하다. 해가 바뀌면서 술값은 벌써 올랐고 이제 재첩국 가격마저 오를 테니 주머니 털어 술이야 어찌어찌 마셔도 재첩국 한 그릇 얻어먹기 힘든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