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을 깨뜨리는 건 늘 바람이다. 임실에서 곡성을 거쳐 구례로 이어지는 강길을 따라 코스모스는 하염없이 피어 있고, 끝도 없이 이어진다. 흔들리는 꽃들이 파도로 들며 날며 하늘을 휘저어도 파랑은 이미 깊다. 그 깊이는 아득히 멀어서 다 자란 코스모스의 키로도 닿지 못한다. 연분홍에 붉은 자주 그리고 하얀 꽃의 무리는 술에 취한 듯 휘청거려도 서로의 빛깔로 번져 들지 못한다. 화려했던 봄날의 기억을 지워가는 벚나무들이 일찌감치 파장을 준비하는 그 아래에서 코스모스는 한참이다.
‘살사리 꽃’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잘 들어보지 못했다. 멕시코가 원산지고, 명명자는 스페인의 어느 식물학자다. 태초에 조물주가 세상을 빚으면서 가장 먼저 만든 꽃이 코스모스라는데 설마 ‘우주’로도 번역되는 그 거창한 이름의 유래가 거기서 비롯된 것일까. 하지만 작명의 구체적인 사연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동서남북 사방팔방으로 가지런히 뻗은 여덟 장 꽃잎을 보면, 만물이 조화롭고 질서 있게 어울린 상태를 우주라고 여겼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에 조금은 수긍이 간다.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꽃은 바람을 탄다. 어른 키만큼 껑충하지만, 가을 파란 하늘을 거뜬히 짊어지고도 부러지지 않는다. 바람의 가락은 종횡무진해서 코스모스의 대열은 일사불란할 수 없고, 무리의 춤사위는 쓰러질 듯 어지럽다. 가느다랗게 여린 잎들은 서로를 찌르는 법이 없고 뒤섞여서도 꼬이지 않는다. 꽃들의 몸짓은 소리가 없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어서 더 애잔하다. 아마도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무리 지어서도 조용하게 사는 법을 익혀온 듯하다.
국화과의 코스모스는 가을꽃이다. 대부분 나무가 열매를 맺고 잎을 떨구는 시절에 가을꽃들은 비로소 핀다. 절정을 넘어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계절을 꽃은 기다려왔다. 코스모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봄에 피고 여름에 자라서 가을에 열매 맺는 통상의 질서와 달리 국화과 꽃들은 중년 이후가 전성기다. 그래서 폭양 아래 여름을 견딘 구절초나 산국이 품은 냄새는 진하지만 그저 달콤하지 않다. 향기는 쓰면서 깊게 취한다. 웬만한 늦가을 무서리조차도 그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차로 우려 마시는 꽃들의 자전적 생애는 그윽하다. 덕분에 겨울을 준비하는 벌들도 때를 놓치지 않고 부산하다. 국화 무리가 마련한 이 느즈막의 향연으로 가을은 고즈넉하게 풍요롭다.
섬진강을 끼고 앉은 정읍 산내면에서는 매년 구절초 축제가 열린다. 제법 외진 산골이다. 옥정호를 돌아 면소재지를 지나 추령천을 잠시 거슬러 가다 보면 산자락 하나가 깊게 찌르고 들어가 물길이 급하게 굽어진 골짜기를 만난다. 드문드문 소나무가 드리운 경사를 따라 심긴 구절초가 시월이면 만개한다. 사람이 드문 이른 아침이면 더 좋다. 꽃향기가 멀리 퍼지지 않고 가까운 호수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까지 더해져 꽃밭은 몽환적인 꿈길이다. 갓 피어난 연분홍 꽃잎이 머금은 이슬이 옷자락에 스치면 걸음걸음 꽃향기가 물씬 밴다. 구불구불 이어진 꽃길을 넋 놓고 따라가다 보면 오르락내리락 걸음은 꽃밭을 벗어나지 못하고 맴돈다.
축제의 의도는 자명하다. 꿀을 모으려는 벌들만 바쁜 것이 아니다. 이런저런 주민 모임과 마을공동체에서 마련한 음식과 상품들은 소박하다. 정읍에서 자란 한우를 내어놓은 먹거리 장터도 있고, 말린 호박이나 수수부꾸미를 파는 가게도 있다. 눈요기를 할 만한 꽃차부터 손수 만든 비누나 수세미, 액세서리 같은 공예품도 다양하다. 구절초로 빚은 막걸리도 있고, 컵스테이크며 떡 같은 주전부리도 있다. 입장료에는 행사장 내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이 포함되어 있다. 일 년에 딱 한 번, 구절초는 피어서 산골 사람들의 겨울이 따뜻해질 것이다. 길어야 보름 남짓, 구절초의 절정이 너무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