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생겼다. 댐이 들어서고 물길이 막히면서 키 낮은 마을들이 물에 잠겼다. 아무 생각도 없이 건너편에서 뻗어 내려와 마을을 기웃거리던 산자락 하나도 덩달아 턱 밑까지 물이 찼다. 아차 싶었지만, 물은 이미 뒤통수까지 차올라 재를 넘던 길마저도 삼켜버렸다.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봉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섬으로 남겨졌는데, 동네 사람들이 ‘외앗날’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 이름도 잠시, 호수에 잠겨 빚어낸 절경 때문에 몰려든 구경꾼들 사이에 소문이 돌면서 그저 평범했던 동네 뒷동산은 ‘옥정호 붕어섬’을 제 이름으로 갖게 되었다.
멀쩡하던 봉우리가 섬이 되었으니 팔자에도 없는 기구한 운명 탓이었던지 혹은 붕어섬이 품은 슬픔 때문인지 찬 기운 감도는 계절이면 어김없이 물안개가 피어올라 보기 드문 장관이 펼쳐지곤 했다. 소문이 소문을 낳고 풍경에 감탄한 발길이 더해지면서 호수와 섬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국사봉 전망대는 이른 새벽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비좁았다. 뒷산 너머로 해가 오르면서 붉은빛을 품은 안개가 바람을 타고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섬은 나른한 잠을 깬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들이 사진을 찍고 그림으로 그리고 시로 빚으면서 다소 촌스럽게도 들리는 붕어섬은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길이 끊기고, 물 울타리를 두르고 앉은 섬은 그저 그렇게 동경의 대상으로 남겨져 오랫동안 마음에 ‘이니스프리의 호도’로 머물러 있었다.
딱 한 번, 배를 타고 저 섬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늦가을 무렵이었다. 아는 분 소개로 고구마 수확하는 일손을 거들기로 했다. 선창에 묶어두었던 배를 탔다. 낙엽보다는 컸지만, 모터가 달린 작은 배였다. 대여섯 명을 가득 실은 배는 호수 위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며 힘겨운 물살을 갈랐다. 채 몇 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항해였지만, 배를 타고 건넌다는 설렘 탓인지 뱃전에서는 작은 탄성이 일었다. 섬의 한 귀퉁이 골이진 자리를 더듬어 선장이 배를 대자 한 사람씩 기우뚱거리는 걸음을 조심스레 옮겨가며 땅을 밟았다.
마중 나온 노인은 혼자였다. 인사도 없고 표정도 없었다. 제자리에 서서 묵묵히 일행의 하선을 바라보았고, 그저 돌아가는 배에 고개 한 번 끄덕이고선 따라오라는 말도 없이 앞장서 걸었다. 터벅터벅 걷는 뒷모습, 고단해 보이는 그에게서 이니스프리의 낭만적인 전원생활을 꿈꾸던 시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작은 오두막에 짐을 풀고, 장갑 한 켤레 호미 한 자루씩을 챙겨 들어 곧장 밭으로 향했다. 아홉 이랑의 콩을 심고, 벌을 치는 대신 고구마 이랑을 경운기로 갈아엎어 놓으면, 호미 쥔 손들이 흙더미를 뒤져가며 고구마를 건져냈다. 서투른 일 본새에도 불구하고 밭이랑에 늘어 누운 고구마가 가을볕과 바람에 말라가는 사이, 누군가 모닥불을 지폈다. 성미 급한 사람이 고구마를 굽기 시작했고, 느긋한 발걸음들이 막 익어가는 감나무 아래로 향했다. 여기저기 잘 여문 감이 지천이었다. 붉게 익은 홍시 몇 개만으로 웃음꽃이 피고 첫서리를 기다리는 대봉시는 쳐다만 봐도 배가 불렀다. 가져갈 만큼 따가라는 노인의 허락이 있었지만, 대여섯 개만으로 충분했다. 한나절 품삯으로 받은 고구마 상자는 이미 차고 넘쳤다.
노인은 그 해 농사가 마지막이라고 했다. 무슨 속사정인지 캐어 묻고도 싶었지만, 한숨이 깊었다. 꽤 오랫동안 지어왔던 농사다 싶어 보였는데 아쉬웠다. 그러는 사이 배가 왔고 노인은 처음처럼 일행의 승선을 묵묵히 지켜봤다. 배가 건너편 선창에 거의 닿아갈 무렵에야 노인은 뒤돌아 오두막으로 향했다. 한참 부풀어 바람을 타는 억새도 기울어가는 시월의 시간을 붙들어 두지 못했다. 제 키보다 커다란 그림자를 수면 위에 드리운 붕어섬에 이른 저녁이 찾아들고 있었다.
얼마 전, 새 단장을 마친 붕어섬 생태공원이 개장됐다. 양요정이 있는 요산공원 쪽에서 호수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놓였고, 섬은 화려하게 변신했다. 봄이면 꽃잔디가 가을이면 국화로 가득 피어 사시사철 붕어섬은 꽃 세상이다. 약간의 입장료만 내면 걸어서 섬을 들어갈 수 있고, 다리 중간에 놓인 전망대에 오를 수도 있다. 허름한 오두막은 사라지고, 너른 잔디 정원을 가진 예쁘고 깔끔한 빨간 지붕 2층집이 새로 들어섰다. 카페를 겸한 휴게실 건물 같다. 군데군데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고, 황마로 덮은 산책로가 걷기 편했다. 개장 일 년 만에 80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벌써부터 멋진 드론 영상을 띄운 동영상들도 적지 않게 올라온다. 임실군은 천만 명 관광객 유치를 위해 향후에도 야심 차게 노력해 가겠다고 피력하고 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훵하다. 항상 추억 속에 풋풋했던 그녀가 짙은 화장을 하고 나타났을 때처럼 당혹스럽다. 동창회에 괜히 나갔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