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숨고르기를 하는 달이다.
눈부신 여름의 열기가 지나가고, 연말의 들뜬 불빛과 소란이 아직 닿지 않은 그 사이.
명절도, 기념일도, 가족 행사가 있는 날도 없다. 그래서인지 11월은 마음이 느긋해진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창가에 앉아 가을의 풍경 속에서 느리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빛깔을 뜨겁게 뽐내던 붉은 나뭇잎도 이제는 거의 다 떨어져 길가에 쌓인다.
계절의 변화와 같이 사람도 화려했던 한때를 뒤로 하고 겉치장을 벗는 때가 온다. 나무가 잎을 버리고 더 깊은 뿌리를 내리듯, 어떠한 장식도 없는 앙상한 나무의 상태로 숨을 깊게 쉬며 내면을 살필 수 있는 그런 시기.
최근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조금 공허한 기분이 들고 시간이 많아졌다. 지금 보다 젊었던 시절에 맞이한 퇴사 뒤에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따라오곤 했다. 하지만 50이라는 나이를 코앞에 둔 이번 퇴사는 그때와는 다르다. 인생의 푸르른 1막이 가을의 단풍잎처럼 붉게 물들고 떨어져서 끝이 난 느낌이랄까. 조급함이 눈치 없이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다.
창문을 활짝 열고 한여름 볕에 지쳤던 마음을 찬 공기에 식히며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 본다.
참으로 바빴다.
실제로 처리할 일이 많아서 바빴고,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몸이 게으름을 피워 대는 통에 마음만 바쁜 날도 많았다.
시간 부자가 된 지금.
해야 할 일에 쫓기지 않는 하루, 일정표가 비어 있는 오전의 고요함이 좋다. 그동안 잠들어 있던 감흥과 감상이 조용히 떠올라, 마치 가라앉은 먼지가 천천히 빛 속으로 드러나는 듯하다.
한동안 이 고요를 그저 다정히 바라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페르소나를 벗어 내듯 잎을 떨군 앙상한 나무의 상태로 말이다. 꾸미지 않아도 괜찮고, 잠시 멈춰 서 있어도 괜찮은 시간.
내면의 뿌리를 위한 시간.
깊이 숨을 고르고 새로움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