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이-지누단다-뱀부
Day 1. from Siwai 1380m
지프에서 내린 시와이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볶음밥은 350루피였고, 여기에 180루피를 더해 달걀을 추가했다. 향신료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무난하게 먹기 좋았다. 곧 오래 걸어야 할 것을 생각하며 접시를 비우고 있는데, 저쪽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초로의 남성 대여섯이 우리를 바라보며 둘이 왔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들은 환갑 기념으로 친구들과 함께 왔다가 이제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다. 말끝과 표정에는 약간의 득의양양함이 묻어 있었다.
그들에게 우리는 어린 양이나 풋내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와, 멋지시네요. 순진무구한 동경의 눈빛으로 화답했다. 등산 초심자 둘이 이제 막 출발선 앞에 선 참이었으니, 몸이 그에 걸맞은 태도를 반사 작용처럼 내보였던 것 같다.
이제 우리는 트레킹을 무사히 마치고 내려가는 길이니 이것을 받으라며, 그들은 고산병 약이 담긴 작은 병과 근육통 파스를 건네주었다. 고산병 약인 다이아목스는 의사 처방을 받아야 한다고 들어, 타이레놀로 대신하려고 했었기에 만약을 대비해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두었다. 그리고 그 근육통 파스가 며칠 뒤 놀라운 효용을 발휘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붙일 일이 과연 있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방 속 적당한 자리에 쑤셔 넣어두었다.
고난을 함께 겪거나, 같은 모험을 한(할) 이들 사이에는 묘한 동지애가 싹튼다. 그 감정이 마음의 빗장을 풀게 하고, 장소와 상황이 뿜어내는 특별함이 그 감정에 마법의 온기 한 방울을 더해주니,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면 뭐라도 내어주고 싶은 호의가 생겼으리라. 여기에 어리숙해 보였을 여자 둘의 용기에 응원을 보내는 마음 같은 것도 한몫했을 터였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필요할 때 연락하라고 건네주신 ‘OOO 변호사’라고 찍힌 명함은, 소송에 휘말리는 일 없이 지내는 사이 어느새 증발해 버렸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마침내 걷기 시작했다. 우기가 끝난 10월의 네팔은 건기로 접어드는 시기로, 트레킹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지만 고지대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늘 없는 산길을 더위와 싸우며 올라야 했다. 땡볕에 땀이 뚝뚝 떨어졌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길을 막아선 소들을 피해 걷고, 출렁다리를 건넜다. 그렇게 오르고 또 올라 오후 세 시 반, 지누단다 롯지(1,780m)에 도착했다.
지누단다는 첫날 밤을 묵을 목적지였다. 포터가 롯지 스태프에게 방이 있는지 문의하는 동안 마당에서 잠시 쉬었다가,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었다. 가이드와 포터들은 롯지마다 따로 묵는 방이 있는 듯했다.
세면도구를 챙겨 샤워를 하고, 땀에 젖은 손수건과 양말을 빨아 널었다. 다시 마당에 앉아 숨을 돌렸다. 딱히 할 일도 없어 수프와 오믈렛으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잠자리를 준비하고 누운 시각은 아직 저녁 일곱 시도 되지 않았다.
동행자와 그간 지내온 이야기를 길게 나누다 잠이 들었다. 그렇게 산행보다 지프 이동이 더 고되었던, 산속에서의 첫날 밤이 저물었다.
Day 2. from Jhinu Danda 1780m
아침 여섯 시 반. 알람이 울렸다.
아침 식사로 토스트를 주문하고, 핫 워터를 시켜서 가져온 인스턴트커피를 타 마셨는데 물맛이 달라서인지 커피 맛도 어딘가 이상했다. 문득 이곳이 호텔이 아니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훌륭한 식사나 커피를 기대하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롯지를 나섰다. 출발부터 계단, 또 계단, 끝없는 계단의 연속이었다. 해가 비치기 시작하자 온몸은 다시 땀으로 범벅이 되어갔다. 더위에 지칠 즈음, 처음 보는 버펄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잠시 후에는 산양들이 옆으로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신기하고 귀여운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고, 한참 바라보는 사이 다시 기운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내리막이었다.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그리고 출렁다리를 건너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시누와 롯지(2340m)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뉴판을 들고 신중하게 훝어보았지만, 새로울 것은 없었다. 결국 토마토 치즈피자와 콜라 한 캔을 시켰다. 피자에서도 어김없이 은은한 향신료의 맛이 났다.
다시 출발해 빗방울이 토도독 떨어지기 시작할 즈음, 오후 세 시 반에 뱀부 롯지(2,145m)에 도착했다.
산골짜기로 깊숙이 내려온 곳이라 음산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몸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으, 춥다. 이때부터 패딩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저녁 다섯 시. 볶음밥과 토마토 치즈스파게티, 밀크티와 핫 워터를 주문했다. 컵에 한국에서 챙겨온 미역국 블록을 풀어 넣고, 잠시 고향의 맛으로 몸과 마음을 충전했다.
뱀부 롯지는 남은 방이 하나뿐이라 부엌 옆방에 묵게 되었다. 부엌에서 새어 나오는 잡담과 그릇 부딪히는 소리로 시끌시끌했고 퀴퀴한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침대는 싱글 베드의 상식을 깨부순 폭으로 옴짝달싹하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다소 불쾌하고 누덕누덕한 방안의 풍경도 처음보다는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났다.
내일부터는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도로 진입하게 된다. 제발…. 고산병 님, 우리 만나지 말아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밤 아홉 시 반,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이 글은 2017년 10월의 여행을 기록한 것으로, 지금의 현지 풍경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