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지누단다-시와이
Day 6. from Dovan 2520m
산행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잤다.
행복의 원천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어쩌면 소소한 숙면일지도 모른다. 몸 상태가 무척 좋았다. 잃었던 입맛이 돌아왔고, 그 덕분에 아침을 맛있게 먹고 힘차게 출발할 수 있었다. 전날 컨디션 문제로 산행 거리를 줄였던 터라, 밀린 숙제를 해치우는 기분으로 속도를 냈다. 뱀부 다운 코스를 사뿐히 통과하고, 뱀부 롯지를 지나 계단을 오를 때까지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윽고 시와이–촘롱, 이른바 ‘죽음의 땡볕 계단’ 구간이 나타났다. 계단은 하늘을 뚫고 지옥의 문턱까지 이어지듯 자비 없이 계속됐고, 햇빛은 왕성한 기세로 쏟아졌다. 육신과 영혼이 완벽히 탈탈 털린 끝에, 오후 한 시가 되어서 촘롱에 도착했다. 배가 몹시 고팠지만, 몸이 고된 탓에 아침에 되살아났던 식욕은 다시 파업에 들어갔다. 라면과 삶은 달걀을 욱여넣어 가까스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지누단다였다.
연계 산행이나 연일 산행 경험이 없던 그때의 나에게 하산은 늘 만만하고 홀가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며칠간의 피로가 누적된 다리로 걷는 하산은, 오히려 등산 보다 몇 배는 더 호된 고행에 가까웠다.
촘롱을 출발해 지누단다까지는 등산 스틱이 걷고, 내 다리는 뒤에서 끌려가는 모양새였다. 이렇게 힘든 하산은 처음이었다. 극심한 근육통이 허벅지를 집어삼킬 것 같았고, 다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스틱을 쥔 손에 과한 힘이 들어갔다. 손끝이 덜덜 떨려왔다.
“You look so tired.”
지나가던 한 트레커가 말을 걸었다.
“Yes, I’m so big big tired.”
맵스미 기준으로 도보 한 시간이면 충분한 길을, 두 시간이 넘도록 움찔대며 걸었다. 그렇게 오후 세 시 반이 되어서야, 마침내 지누단다에 도착했다.
배낭과 스틱을 팽개치고 롯지 마당에 널브러져 쉬고 있는데, 포터가 다가와 방이 준비됐으니 보러 가자고 했다. 이번에도 부엌 옆에 붙은 퀴퀴한 방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그 방을 마주하자, 인내심이 바닥났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동행자는 포터에게 단호히 거부 의사를 전한 뒤 우리가 직접 방을 알아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포터를 바라보자, 그는 두 손과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도반 롯지를 제외한 모든 롯지에서, 버젓이 빈방이 남아 있는데도 상태가 좋지 않은 방을 안내받곤 했다. 이곳에서도 포터나 가이드의 경력과 인맥이 작용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스치자, 잠시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오늘만큼은 이런 방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행자가 호기롭게 나타났다. 인근 롯지에서 방을 구했다며, 포터에게 기존 방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옮긴 롯지의 방은 넓고 깨끗했고, 창밖 전망까지 훌륭했다. 우리는 짐을 풀고 나와 맥주 한 잔 들이켜고 야크 고기를 뜯으며, 방을 옮기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질리는 줄도 모르고 되풀이했다.
방으로 돌아와 산행 첫날 만났던, 한국인 아저씨에게서 받아 두었던 근육통 파스를 허벅지 양쪽에 턱 붙이고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고작 400루피를 더 내고 얻은 방은, 수면에 꿀을 듬뿍 발라주었다.
동행자 덕분에 산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Day 7. from Jinu 1780m
어?! 허벅지 근육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런 거 붙일 일이 있겠어?’ 하며 무심하게 가방에 툭 넣어두었던 파스였다. 효과가 이렇게 좋다니, 놀라울 정도였다. 꿀잠을 자고 맞이한 아침이 상쾌했다. 몸도 가볍고 기분도 좋았다.
프렌치토스트와 커피를 마셨다. 토스트를 하나 더 시켜 먹었다. 뭐지, 왜 이렇게 맛있지. 역시 숙면 마법인가!
짐을 챙겨 시와이를 향해 출발했다. 하산의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풀잎 하나, 꽃 한 송이, 스치는 바람마저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리움이 밀려오는 듯했다.
감상에 젖어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풍경을 눈에 담고, 가슴 속에 넣었다. 그렇게 오전 열한 시, 시와이에 도착한 것으로 6박 7일의 산행이 끝났다.
진짜로 끝이 났다.
지프를 타고 포카라로 향하는 동안, 가슴 가득 뜨거운 것이 차올라, 말을 잃고 그저 눈만 껌뻑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수많은 다행, 그리고 비껴간 불행들.
나마스테.
당신 안의 신께 경배합니다.
After Trekking
이 글은 2017년 10월의 여행을 기록한 것으로, 지금의 현지 풍경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