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던 회사 사람들의 반응
퇴사한다고?
퇴사면담을 하고나서 가장 떨리는 부분은, 가깝게 지내던 회사 사람들에게 퇴사 소식을 전하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같은 처지에 있다가 변화를 선택하는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나도 느꼈던 감정이기도 하다.
회사를 다닌지 2년쯤 되었을 때, 친한 동기 중 하나가 대학원을 간다며 퇴사 소식을 전해왔다. 너무나 정이 들었던 친구였기에, 송별회 자리에서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동시에 왠지 모를 정체된 기분을 느꼈다. 가까운 사람이 변화를 선택했을 때, 남은 자들은 순수한 축하나 아쉬움의 감정 외에도 '나는...?' 하는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런 감정이 어떤건지 느껴봤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 둔다고 했을 때 사람들로부터 어떤 반응이 나올지 지레 짐작하고 겁먹었다. 이미 한 번 겪어본 퇴사 과정인데도, 여전히 어렵다. 그냥 투정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온갖 시나리오를 머릿 속으로 쓰며 잔뜩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의 반응은 '축하한다'였다. 물론 남아서 좀 더 있으라고 회유하는 목소리들도 있었지만. 그리고 그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생애 첫 퇴사라는 걸 했을 때, 우리 팀은 한참 바쁜 시기였다. 생각해보면 팀은 언제나 바빴다. 내가 나간다고 함으로써 팀원들의 업무가 과중해질 것이 걱정되었고, 심지어는 '회사에서 나를 못나가게 하면 어쩌지?' 하는 괜한 걱정까지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마치... 그 때 막연히 상상했던 기분은, 남자친구한테 헤어지자고 해놓고 한 달을 더 같이 얼굴보고 살아야 하는 기분? 뭐, 그런 것과 비슷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려했던 바와 다르게 다들 나의 퇴사를 너무나도 축하해줬던 기억이 난다. 팀에서 내가 잘 따르던 과장님은 따로 식사를 하며 "정 들었는데 너무 아쉽다..." 하면서 눈물을 훔치셨다. 내가 항상 멋지다고 생각했던 대리님도 "변화는 언제나 좋은거니까요, 어려운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요 :) !" 그렇게 나의 앞날을 응원해주셨다.
내가 나감으로써 일이 더 몰릴게 뻔한 상황에서 이렇게 따뜻한 반응일줄은 상상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나의 좁은 마음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영원한 이별은 아니겠지만, 하루 8시간 이상씩 가까이에서 얼굴보고 지내던 사람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오묘한 미안함과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첫 이별을 겪었다.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쉬워" 라고들 하지만 아니, 나는 두 번째가 오히려 더 힘들었다. 다음 거처가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말하는 거라서 더 어려웠던 것 같다. 회사측에서는 이런저런 대안을 제시해주셨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명확하게 의사를 밝혀야 했다. 그 과정이 좀 힘들었다. 마치 내가 앞으로 갈 길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고, 그 길을 증명해보여야 하는 기분이었다.
아직 나 스스로에게도 깔끔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단계에서, 남에게 그걸 설명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면담 과정은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이었고, 사실 사적으로 회사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나의 퇴사를 축하해주었다.
특히 10년, 15년 나보다 더 오래 이 회사를 다니셨던 분들의 축하는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축하해주셨다.
나도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그 때는 퇴사를 선택했을거야. 나는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못했는데, 너 진짜 용기있는 행동을 했구나. 축하해! 그리고 너는 여기를 나간 걸 절대 후회하지 않을거야.
소규모의 송별회 자리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들려준 선배 B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선배 B는 사실 25살에 처음 회사에 들어와 신입사원 교육을 듣던 그 순간부터
'아, 여기는 나랑 맞지 않는다'
라는 생각을 했지만,
"너랑 안맞을거라고 했잖아, 아빠가 돈 대줄테니까 대학원 가."
라는 말에 오기가 들어 더 다닌 것이 3년. 그쯤 동기가
"너 공무원 지금부터 준비해서 들어가도 30대 안 돼.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준비해봐!"
라는 말을 듣고 또 오기가 생겨 더 다닌 것이 5년.
"내 와이프도 약대 준비하는데 너도 약사 잘 어울릴 것 같아, 너도 한 번 해봐!"
라는 말을 듣고도 흘러넘기고 계속해서 다니기 시작한 것이 쌓이고 쌓여 지금이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 몰라서 그냥 다니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야지.
나에게 해주시는 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하시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나의 퇴사로 인해 선배 B는 이날 밤 깊은 생각에 빠지셨던 것 같다. 지금 나의 선택이 회사에 남는 것이었다면, 10년 후 나 또한 이 분처럼 이런 회상을 하고 있겠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오싹해지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걸 정확히 몰라서 일단 다니고 있다’라는 말이 참 크게 공감되었다.
당장 이 회사를 나가면 뭘 할지도, 뭘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그 막막한 마음. 다만 나는 내가 좋아하지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지도 않는 일에서 성취를 이루고 잘한다고 해서 내가 더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마음이 지금의 나의 결정까지 이끌어주었다.
윗선에서 나의 퇴사를 철회하도록 설득해보라고 내게 보내진 선배들은 하나같이 비밀스럽게 나의 선택을 응원하고 축하해주었다. 그게 참 힘이 났다. 선배들은 한 번 '아니다'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다니면서도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오히려 더 강렬해지면 강렬해졌지. 그걸 계속 외면하면서 꾹꾹 눌러담고 회사를 억지로 다니다보면, 이제는 정말로 어디 갈 곳 없이 갇힌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내가 어렴풋이 '그럴 것 같다'고 느낀 것을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안도감이 들었다.
또래 동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퇴사 의사를 밝힌 후, 향후 진로나 서로가 갖고 있는 진로고민에 대해 더욱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살면서 제일 되고 싶지 않았던 두 가지가 '평범한 회사원'이랑 '전업주부'였는데, 일단 하나는 진짜 안 맞는 거 같애요.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이 일이 정말 나에게 잘 맞아!'라며 즐겁게 일하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위로부터 배정받은 일을 해야하는 조직 안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일수도. 그래서 이런 고민을 회사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다는 게 꽤나 큰 안심이 되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당신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심.
'모호하지만 여기 나랑 정말 잘 안 맞는 거 같아...'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았던 건 상담센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힘든 시간을 주었던 회사에서는, 동시에 나에게 상담센터라는 숨통을 열어주었다. 그 곳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 나의 가장 깊은 두려움을 시간 내서 들여다본 것이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잘한 일이었다.
상담을 하기로 마음 먹은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회사, 새로운 업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담을 받을수록 더 확실해진 것은,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된다는 교훈이었다. 더군다나 이게 나만 하는 고민이 아니라는 것, 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참 큰 힘이 된다.
지금 당장은 이게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느껴져서 불안하고 걱정이 될 수야 있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이건 언제든지 돌이킬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나중에 다시 회사라는 조직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한다 한들, 그 때는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해봤기 때문에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훨씬 덜 남을거니까.
인생 가치관 중 하나인데,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다.’ 이 가치관에 나름 충실하게 살아오고 있다. 앞으로의 여정이 안개 속에 뒤덮여있지만, 한 번 힘차게 앞으로 뚜벅뚜벅 나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