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래서 퇴사하고 계획이 뭔데

가장 두려웠던 부모님의 반응

by 진달

| 가장 큰 관문이 남았다


퇴사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인사팀 면담도, 팀장님 면담도, 동료들에게 퇴사 소식을 전하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부모님의 반응이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더 확실하게 느끼게 된 건데, 나는 아직도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 사실, 떨어져 산 기간만 10년이 넘었다. 그 기간이면 이제 부모님은 나를 잘 모르시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영향들이 아직 무의식에 각인되어 있어,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서 나도 모르게 그분들의 인정과 확인을 받고 싶었나 보다.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까, 미루고 또 미뤘다. 더 이상 어떤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같은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닌데 내게는 여전히 그분들의 존재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막내라서 그렇다는 핑계를 살짝 대보겠다. 혼자 스크립트도 써보고, 부모님 앞에서 멋지게 발표를 해볼까 하며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에 대한 피피티도 끄적거리면서 만들었다. 결국 써먹지는 못하게 됐지만. 그냥 내 막연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발악이었다고 해두자. 한 달에 한 번은 꼭 본가를 내려가고는 했는데, 이 고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발걸음이 좀 뜸해졌다.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고 나서 말씀드리고 싶어서 수십 번 수백 번을 머뭇거리고 할 말을 고민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도 전에 나는 그분들이 보일 법한 수백 가지의 반응을 머릿속으로 미리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기뻐하실리는 만무하고, 화내시면 어떡하지? 나보다 더 많이 걱정하시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질문을 꼬치꼬치 캐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하지? 마치 면접을 준비하는 것처럼 마음이 긴장되었다. 부모님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은 '남들 다 하는 직장생활인데 왜 너만 그러냐' 하는 식의 말이었다. 다행히도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진 않았지만, 그건 어쩌면 내 마음속의 목소리였기도 하다. 내가 이미 나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온갖 모진 말들이 부모님의 입에서 나올까 봐, 그게 무서웠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말씀을 드렸을 때, 부모님의 생각보다 담담한 반응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래... 네가 충분히 생각해 보고 내린 결정이겠지. 너도 성인이니까. 그래서 계획은 뭔데?


정말... 멋들어지게 계획을 촤르륵 설명해드리고 싶었지만 그런 거 없다. 그냥 부딪혀보기로 했다. 내 마음도 진정이 안되는데 부모님의 마음을 먼저 진정시켜드려야 하는 이 상황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일 테다. 그래도 내가 상상한 최악의 반응에 가 닿지도 못한 부모님의 침착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헛웃음이 터졌다.


부모님의 걱정은 그분들이 살아온 인생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게 세상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어릴 적에 선풍기 틀어놓고 자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던, 배가 불러도 눈 앞에 있는 건 다 먹어야 된다고 하던 부모님의 말씀은 더 이상 내가 믿는 가치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슬픈 말이지만 부모님은 무적이거나 모든 정답을 아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어떤 길을 선택해서 그 길을 걸어온,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다. 부모님과 나는 핏줄로 이어져있지만, 완전히 다른 독립적인 개체라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온 것 같았다. (퇴사 결정으로 참 많은 걸 배운다)


나도 모르게 붙잡고 있던 나의 유년시절의 끈을 탁 놓아버린 기분. 아, 이런 중대한 결정을 부모님과 상의 없이 스스로 내렸네, 나 진짜 성인이구나.


나는 내가 믿는 것의 총체다. 부모님을 비롯해서 남들이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줄 수는 있지만, 그걸 믿느냐 마느냐는 온전히 내 선택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조언을 해주는 사람의 이해타산도 들어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서 들어야 한다.


부모님의 경우에는 그것이 노후 걱정일 수 있겠고, 직장 상사의 경우에는 후임과 업무공백, 인사고과에 관련된 걱정일 수 있겠다. 그러니까, 온전히 나를 위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잠시 귀를 닫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인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남들 다한다고 똑같이 따라 하는 삶이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는 건 충분히 겪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의 말에 더 귀 기울이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고작' 퇴사 결정이었을 뿐인데, 내 유년시절에 영원한 작별을 고한 것만 같은 슬픔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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