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된다

by 진달

| 고민의 무게는 다를지 몰라도, 결이 비슷하잖아


평일. 회사 건물 안에서 햇빛 한 줌 쬐지 못하고 일하고 있었을 시간. 침대에 누워 그토록 갈망하던 낮 시간의 햇볕을 한참 쬐면서도 깊은 생각에 잠긴다. 막상 매일이 일요일이 되어버리니 쉬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하루 종일 꽉 채워진 일정에 맞춰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많은 시간이 주어지니까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어찬다. 나태지옥에 갈 것만 같은 두려움이랄까. 은퇴 직후 아버지가 느끼셨을 기분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어렴풋이 감히 예측을 해본다.


일단 밖으로 나가야 뭐라도 할 것 같아서 주섬주섬 책을 들고 카페를 갔는데, 거기에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대학 친구 C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 너 여기 근처 살아?"

인연이라는 게 참 재미있다. 이렇게 뜬금없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우연한 상황이 그저 신기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기대하지 못했던 인사이트를 선물해 주었다. 이 날 만난 친구 C 또한 나와 같은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고 있었다. "회사 다닐만하냐"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기나긴 "아니"와 그를 뒷받침하는 각종 에피소드들로 이어졌다.


친구 C는 능력도 야망도 뛰어난 청년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애초에 그를 채용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업무를 배정했고 (회사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마저도 도전적인 일이 아니라 '잡다한' 과제들이라서 성취욕도 떨어진다고. 이 친구의 전공이나 업무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대기업에서 자신이 맡을 수 있는 일 자체가 한정되어 있는 기분, 소위 짜치는 일만 처리하고 있다는 기분은 나도 많이 느껴봐서 공감이 되었다. 공통으로 아는 다른 친구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 친구도 요즘 회사에서 고민이 많다고 한다. 자기가 회사에서 하는 일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주된 고민이란다. 어쩔 수 없이 주니어 직급에서는 위에서 시키는 일, 단순 행정업무 등을 맡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적인 직무 역량이나 커리어 개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회사의 수익과 직접적인 연관성도 떨어진다면 어느 순간 자신이 부품이 된 것 같은 기분을 강렬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친구의 말마따나 '멍청해지는 기분'이라는 게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퇴사와 이직을 고민한다.



"회사는 그냥 돈 버는 곳이야" VS "회사는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곳이야"


둘 중에 어떤 것을 믿고 따를 것인지에 따라 회사에서 낼 수 있는 역량도 크게 차이가 난다. 한 때는 회사에 다닌다는 것의 의미가 돈에 있다고 생각했고, 높은 연봉을 쫓다 보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괜찮아지는 살림살이보다 점점 멀어져가는 자아실현의 꿈을 해결하는 게 더 우선시되어야 했다. 그래서 난 아직 후자를 믿고 싶다. 아니, 믿기로 했다. 하루 8시간, 12시간, 그 이상도 보내게 되는 회사에서 내게 잘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일, 내가 가치를 느끼는 일은 분명히 존재할거다.


커리어 관련 고민이 많은 사람들이 꼭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김은주 구글 수석 디자이너의 저)에서 저자는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으라고 응원한다. 하게 되는 모든 일이 재밌고 흥미로울 수는 없다. 일은 일이니까. 다만, 일에서 단 10%의 재미만 느낄 수 있어도 그건 훌륭한 직업일 거다. 이 10%가 채워지지 못해서 불행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전 회사 팀장님께서 해주셨던 말이 생각난다. "멋져보이는 일은 10%도 안 돼. 나머지 90%는 티도 안나고 재미없는 일이야." 그 10%의 블럭을 찾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커리어 장수의 비결은 재미있게 즐기면서 일하는 것이다. 재미를 느끼려면 자신의 기질과 성향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한다. P.29


나를 만나는 일은 인생 어느 시점에서든 할 수 있다. 나를 알고, 시작점을 정했다면 지금껏 지어 온 집을 아깝다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집을 지으면 된다. 집은 버리더라도 그 집을 지으며 쌓은 나의 내공은 자산이 되어 새로 집을 짓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P.97


언젠가는 이 고민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순간이 올거라고 굳게 믿는다. 인생을 지탱하는 수많은 지지대 중 '직업'이라는 기둥의 목재를 고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련다. 그 과정이 불확실하고 모호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시금 열린 가능성에 가슴이 뛴다. 불확실성으로 볼 것인지, 가능성으로 볼 것인지는 내 마음이 결정하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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