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아이들을 낳았을 때, 온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아이를 낳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출산은 고귀하면서도 참 어려운 일이다. 가끔 나는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아이를 낳기 전의 삶과 낳은 후의 삶이 너무 달라서, 예전의 나는 마치 전생 같아.”
과거의 나는 시간이 충분했다. 에너지가 넘쳤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오로지 ‘나’에게 쏟을 수 있었다. 마음먹은 일이 있으면 경주마처럼 달릴 수 있었고,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사람처럼 위험을 감수할 수도 있었다. 잘되면 내가 잘되는 것이고, 망해도 나만 망하는 일이었다. 거칠 것이 없었다. 나를 가꾸는 시간도, 숨을 고르는 여백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뒤부터 모든 것이 180도 달라졌다.가장 먼저 달라진 건 에너지의 방향이었다. 오로지 나에게만 향하던 힘이 이제는 ‘아이’에게 먼저 흘러가야 했다. 내 시간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내 에너지도 더 이상 내 것만이 아니었다.
열 달을 품고,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를 꿈틀거리며 세상에 나온 작은 존재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온 힘으로 아이를 지켜야 했다. 내 인생의 축은 ‘나 중심’에서 ‘아이 중심’으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옮겨 갔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이에게 온 힘을 쏟고 겨우 남겨 둔 10% 남짓의 여분은 회사에 쏟아야 한다.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돌보고, 직장에도 나간다. 아이를 키우며 회사에 나가는 엄마의 삶은 대게 그렇다. 균열은 여기서 시작된다.
예전에는 균형을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됐지만, 이제는 90%를 아이에게 주고 남은 10%를 ‘회사’와 ‘나’ 사이에서 쪼개 써야 한다. 극한의 분배 속에서 혼란과 죄책감이 따라온다. 둘 중 하나만 잘해도 숨이 찰 텐데, 둘 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더 옥죈다.
하지만 회사는 당연하게도 이런 사정을 너그럽게 봐주지 않는다. 출산휴가, 단축근무, 육아휴직 같은 제도가 있어도 ‘영혼의 반쯤은 아이에게 두고 온 직원’을 달가워할 조직은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첫째 아이를 낳기전, 악착같이 승진 점수를 채워 간신히 과장 승진을 해 두고 출산에 들어갔다. 2년을 쉬고 복직한 뒤 1년간 적응하며 일했는데, 다시 둘째가 생겼다. 어쩔 수 없이 또 휴직을 했다.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다 보니 내 회사생활에서 5년이 통째로 증발해 있었다.
물론 그 사이 내가 일을 안 했거나 게을렀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애 낳고 와서 혼이 빠졌다”, “팀에 피해를 준다” 같은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버텼다. 다만 최선을 다해도 현실은 매일 나를 시험했다. 등·하원을 챙기느라 시계를 초 단위로 쪼개야 했고,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면 밤을 꼴딱 새웠다. 주말은 휴식이 아니라 밀린 집안일과 육아를 동시에 처리하는 또 하나의 근무일이었다.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내가 먼저 닳아갔다.
돌이켜보면, 나는 첫째 임신 중에도 출산 열흘 전까지 만삭의 배를 안고 일을 했다. 마침 중요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어서 마지막까지 야근을 마다하지 않았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도 회사에서 가장 기피하는 상사 밑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혼자 도맡으며 몸을 혹사시키듯 일했다. 늦은 밤 지하철로 퇴근할 때면,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때문에 퉁퉁 부은 발로 한 시간을 서서 가며 조용히 눈물을 훔친 적도 있다.
그런데 현실은 냉정하다. 내가 그렇게까지 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인사고과와 육아휴직 사이에는 늘 차가운 함수가 존재한다. 휴직 전에는 “어차피 휴직할 사람”이라며 점수를 깎고, 복직 후에는 “복직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양보하라”고 말한다. 그 말이 틀렸다고 반박하기 어려운 것이 더 서글프다.
재밌는것은 ‘나는 회사에서 어떤 존재인가.’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루종일 머릿속이 복잡한 채로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그때부터 갑자기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슬퍼할 틈도 없이 아이들이 달려와 환하게 나를 맞이한다. 무릎팍에 매달린 채 천사 같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엄마,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요? 너~무 보고 싶었잖아요.” 그 한마디에 무거웠던 머리가 맑아지고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그래, 회사 일이 뭐 대수냐. 한창 엄마품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고, 우리 가정이 최우선이지. 흔들리지 말자고, 속상해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달랜다
그렇게 매일 아침에는 “어쩔 수 없다”고 나를 설득하고, 저녁에는 “그래도 괜찮다”고 마음을 다독이며 회사와 집 사이를 오가며 두 사람을 번갈아 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은 버티며 굳은 살이 박혔지만 마음은 점점 가늘어져만 갔다. 회의실에서 흘려듣던 상사의 날카로운 한마디, 인사철에 조용히 지나간 내 이름, 아이가 열이 나도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켜야 했던 날들. 작지만 무거운 일들이 텅 빈 마음 위로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다 어느 날, 무뎌지던 감각이 단숨에 깨어났다.
아이가 아팠다.
병실의 불빛은 유난히 푸르렀고,
그 새벽에 나는 처음으로 ‘내 이름’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