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여러 사업을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받아야 할 돈은 늘 제때 들어온 적이 없었고, 엄마는 늘 아빠가 벌려놓은 사고를 뒷수습하느라 가정주부의 신분으로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대출을 받아야 했다. 친정 식구는 물론 지인들에게까지 돈을 빌리러 다니다 보니 기피 대상이 된 지도 오래였다.
8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엄마는 생활력이 강했고 책임감이 컸다. 그녀의 손은, 버텨야 할 인생의 무게만큼이나 퉁퉁 불어 있었다. 밤낮없이 식당 일을 하고 까만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면, 나는 엄마 곁에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엄마는 늘 같은 이야기를 했다.
“절대로 사업하면 안 돼. 나중에 결혼하거든, 사업하는 남자는 쳐다보지도 마라. 알았지?” 그리고 꼭 덧붙이던 두 번째 당부. “눈에 흙이 들어가도 대출은 받지 마라. 빚지고 살지 마. 엄마 부탁이야.”
그 문장이 시작되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옆에는 소주병이 하나둘 늘어났다. 밥상에 고개를 박고 엎드린 엄마의 어깨가 고장 난 엔진처럼 들썩이다가 서서히 수그러들면, 나는 그 옆에서 언젠간 엄마의 소원과도 같은 ‘당부’를 꼭 들어줘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하며 잠이 들곤 했다.
그랬던 내가 멀쩡한 직장을 두고 대출까지 받아서 고시원 사업을 하다니. 참 인생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고시원 원장으로서의 삶은 마치 사춘기 시절의 이중생활 같았다. 학교에서는 모범생, 학교 밖에서는 돌변한 날라리처럼 말이다. 머리와 이성은 여전히 보수적인 예스맨이자 흔해 빠진 ‘김 부장’의 세계에 발을 딛고 있지만, 고시원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기는 꽤 카리스마 넘치는 원장님이었다.
직장인의 세계와 1인 사업가의 세계는 완전히 달랐다. 고시원 사업은 '야생'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일깨워주었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직장인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1인 사업을 하는데 어떤 역량들이 필요한지, 콘텐츠를 다루고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등, 삶의 태도는 물론 노동에 대한 관점까지 송두리째 바꿔주었다.
직장인으로만 살 때는 1순위 걱정이 늘 ‘출근’이었다. 출근을 하지 않으면 불성실한 사람이 되고, 불성실한 사람은 승진에서 밀린다. 승진에서 밀리면 도태되고, 결국 회사에서 밀려난다. 그래서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제시간에 출근하는 아주 성실한 직원으로 살아왔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직장인 세상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고시원 사업은, 매일 출근해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일 처리가 가능했고, 심지어 남는 여유 시간에는 아픈 아이를 돌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벌어들이는 수입은 직장에서 받던 월급과 큰 차이가 나질 않았다. 출근 시간과 노동 시간의 투입이, 버는 돈의 크기와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돈이 벌리는 시스템을 회사가 아닌 ‘나’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몸으로 깨달았다.
그런데 왜, 나는 퇴사를 하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퇴사하지 않는 선택을 용기 부족이라 말한다. 하지만 선택에는 늘 각자가 서 있는 자리가 있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가 감당해야 할 경제적 책임은 더 크다. 충분히 고민하고, 준비하고,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만일 내가 미혼이거나, 지켜야 할 아이가 없었다거나, 혹은 부잣집 외동딸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직’ 떠나지 않았다. 퇴사는 용기가 아니라 타이밍의 문제라고 본다. 아이의 나이, 집안의 현금 흐름, 고정비의 무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불안의 크기까지. 그 모든 것을 계산하지 않은 퇴사는 무모함에 가깝다.
회사를 안전벨트처럼 매고, 퇴근 후에는 고시원 원장이 되어 나만의 실험을 이어갔다. 이중생활은 분명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회사가 아니면 갈 곳이 없어서 불안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회사를 활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불안감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기자 회사에서도 점점 더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간신히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어서일까?
그래서 나는,
그 믿는 구석을 몇 가지 더 늘려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82 피플이 되어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