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고시원 사업은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잘 흘러갔다. 출근하지 않아도, 따박따박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은 정말이지 매력적이었다. 직장인으로 평생 산다면 나는 매일 아침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어야 하겠지만, 이렇게 돈이 벌리는 시스템을 몇개만 더 만들면 평생 자유인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삶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한 가지 실험을 더 해보기로했다. 온라인 셀러에 도전해 보기로! 역시나 없는게 없는 유튜브에는 온라인 판매로 딸깍 몇 번이면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영상과 강이팔이가 넘쳐났다. 고시원 사업으로 무엇이든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한껏 올라간 나는 온갖 정보를 뒤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팔아야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그러다 우연히 젊고 예쁜 한 유튜버가 눈에 들어왔다. "과일위탁판매"로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다는 앳되 보이는 여성. 나이도 어리고 관련 경력도 없지만 자기만 따라하면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고, 한달에 몇 백 몇 천은 그냥 벌 수 있다는 희망적 이야기와 수익 인증이 가득한 그녀의 영상을 홀린듯 정주행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가락은 어느새 전자책과 강의를 결제하고 있었다.
대기업 직장인 이력에 팔이피플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참외를 팔기로 했다. 왜 참외를 팔았냐고?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내가 판매를 하기로 마음 먹은 그 달에 참외가 제철 과일이었을 뿐. 그런데 이건 엄청난 판단 착오였다. 알고보니 참외는 경쟁자가 어마무시하게 많은 아이템이었다. 이미 참외라는 키워드를 꽉 잡고 수 많은 리뷰와 단골을 확보한 고인물들이 있는, 한 마디로 초보자가 절대 성공하기 어려운 그런 품목이었던 것이다. (강의에서는 이런건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부터 몇달 간 고생길이 시작됐다. 참외를 팔려면 먼저 안정적인 위탁 공급처를 확보해야 하고, 상세 페이지를 제작하고, 네이버에 상품 등록을 하고, 마케팅을 잘 해야 한다. 누군가 주문을 하면 송장을 정리하고 택배를 발송하면 되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상품 배송이 완료된 후에는 종종 발생하는 고객 CS까지 챙겨야 하고 수시로 변동되는 싯가를 반영하여 상품 정보를 관리해야 한다. 상품을 받은 고객이 남긴 리뷰 및 별점을 챙겨야 하는 등 할 것이 태산이었다(이렇게 쓰면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데 사실은 매우 복잡하고 품이 만이 들어가는 고도의 작업들이었다..)
처음엔 멘 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만들어갔다. 아이 때문에 장거리 미팅을 갈 수 없었기에 참외 공급을 해줄만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카페,커뮤니티 등을 뒤지며 게시글과 연락처를 수집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패기 넘치는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사정을했는데 운 좋게 적당한 조력자를 만날 수 있었다.
곧장 판매할 참외 샘플을 한 상자 받아서, 셀프로 사진 촬영을 했다. 네이버에 올릴 상세페이지도 한땀 한땀 만들었다. 시세에 맞춰 상품 가격을 책정하고, 상품 등록에서 판매 개시까지 딱 3주가 걸렸다. 실로 엄청난 몰입으로 만들어낸 속도였다.
이제 판매가 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물론 기다리는 동안 가만히 있으면 안되고 백방으로 마케팅을 해야한다. 제일 만한한 가족과 지인 팔이가 먼저이다. 형제 자매는 물론 가까운 이모 삼촌 그리고 사돈의 팔촌까지. 내가 이제 정말 맛있는 참외를 판매하노라고 만천하에 공표를 하고 딱 한 번만 사달라고 큰 소리로 있는 힘껐 외치고 다녀야 한다. 이 고비를 넘기면 진정한 팔이 피플의 길로 한 발짝 들어설 수 있게 되는데 여기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홀린 유튜버의 말에 따르면, 자고 일어나면 밤 사이 마법처럼 수십개의 주문이 들어와있고 공급처에서 위탁 배송을 척척 해주니 세팅만 잘 해두면 크게 손이 갈 것이 없는, 완벽한 시스템이었다. 아니 그래야만했다. 실상은 글쎄. 끝이 없는 마케팅과 진상고객 대응 까지. 따지고 보면 출구 없는 디지털 노가다가였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얼마를 벌었냐고? 대망의 첫 성적표는 나쁘지 않았다. 첫 달 매출은 자그만치 약 300만원 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각종 수수료와 세금 그리고 광고비 등을 제외하고 나니 나에게 남는 순수익은 50만원 남짓이었다.
몇 달 동안 온 힘을 다해 공급, 유통, 판매, 마케팅,CS등 시스템을 만들고 남는 시간을 모두 갈아 넣었건만 순수익 50만원 이라는 성적표는 어쩐지 초라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짓을 계속해서 시즌별로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번 경쟁력이 있는 상품을 골라내고 계속해서 이 사이클을 돌려야 한다니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그래도 좀 더 시도하고 개선한다면 분명 좋은 성과가 나지 않을까? 고시원 사업과 온라인 사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면 온오프라인을 섭렵하고 퇴사의 시계를 앞 당길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도무지 마음이 움직이질 않았다. 돈이 되면 무조건 다 할 수 있늘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수고로움을 감수할 수 없다면 그 일은 결코 지속하기 힘들 것만 같았다.
하기 싫은 일을 피해 퇴사를 꿈 꾸는 사람이 돈 때문에 더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또 다른 지옥행 티겟을 끊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퇴사를 위해서는 싫어하는 일도 마다 하지 않고 해야 한다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의 희생을 감수 해야 한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넘는 회사 생활 동안 싫어하는 일도 꾹꾹 참고 내일의 행복을 위해 내 청춘을 바친 나로서는 더 이상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한 선택은 관성처럼 받아들여온 고리타분한 습관을 반복하는 것 일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것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도 고시원 사업을 시작 했을 때처럼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기로 했다. 하루에도 꿈이 수십번씩 바뀌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일을 찾아 헤매이는 현실적 낭만주의 자가 되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