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직장에서 나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던 30대. 임신을 하고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일했고 턱걸이 승진까지 했지만 곧 깨달았다. ‘승진’을 하고 직급을 단다고 해서 나란 존재가 더 대단해지거나 멋져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차선책으로 육아휴직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싶었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 무엇 하나 쉽게 내어주는 법이 없고 나약한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 첫째 아이가 어린이 집에서 쓰러졌다는 전화였다. 누구보다 건강하던 아이였기에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설마 아닐거야, 하는 마음으로 찾은 응급실에서 바로 입원 결정을 받았다. 그날부로 태어난지 50일 된 둘째 아이를 시부모님 손에 맡기고 큰 애와 나는 3개월 가량 병원에 갇혀지냈다.
코로나 시국이라 외부와도 철저히 단절되었다. 처음에는 금방 퇴원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병실 생활은 길어졌고 소아 병동에 머물면서 생과 사를 오가는 많은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그 아이들에 비하면 오히려 우리 아이는 건강한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난 엄마의 마음은 늘 무너져 내리길 반복했다.
한 날은 병실이 너무 답답해서 아이 손을 잡고 1층 카페테리아에 갔다. 커피를 주문하고 뒤를 돌아서는 순간 ’쿵!’ 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방금 전까지 내 손을 잡고 있던 아이는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져 사지를 떨고 있었다.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나는 엉엉 울며 목놓아 경비를 불렀다. 생판 모르는 남을 그렇게 애타게 불러 본적은 아마 그날이 처음일 것이다.
조금만 참을걸...그날 따라 왜이렇게 시원한 커피 한 잔이 먹고 싶던지. 아픈 아이를 데리고 카페에 갔던 내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절대 안정, 병실 밖 외출 금지 명령을 받았다. 처참한 하루였다. 늘 죽음이 저 멀리 있다고 믿어왔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전한 정신으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은 괴로워했지만,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버티는 것 만으로는 답이 없다는 생각, 나와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존본능이자 직감이었다.
마치 세상이 나에게 온몸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너 이제 어떻게 살아갈거야?
계속 이대로 괜찮겠어?“
하는 물음이었다.
그날 밤 간이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무작정 블로그 하나를 개설하고 비공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마음 속 이야기,하늘에 대한 깊은 원망과 기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다짐들을 묵묵히 써내려갔다.
그게 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아니 절망적 메모 또는 끄적임, 아니면 하소연이라고 하는편이 어울리겠다. 인생의 기회는 가끔 위기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랬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앞으로 내 삶이 글쓰기로 인해 어떻게 바뀔지 말이다.
이제 과거가 아닌, 현재로 돌아와보자.
푸른 새벽의 병실, 삶의 위기 속에서 무작정 시작한 글쓰기는 회사밖에 모르던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조금씩 용기를 내어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내면의 목소리를 찬찬히 꺼내 쓰면서부터 생각지 못한 작은 변화들이 서서히 싹 트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글쓰기는 내 안에 숨어 있던 나와 마주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것을. 그리고 글은 나를 위해 ‘답’을 찾아주는 작은 대화 상자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아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 며칠 뒤에는 “이렇게 살아야겠다.” 라는 답을 쓸 수 있었다. “우리 아이를 지키게 해주세요.” 라고 쓰면 어김 없이 며칠 뒤엔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해야겠다.” 하고 기막힌 방법이 떠올랐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을 내어주는 마법의 거울 같았다.
좋은 질문을 던지면 덜질수록, 온 마음을 던져 쓰면 쓸수록 글쓰기는 더 좋은 방향과 해답을 돌려주었다. 이 때 나는 내면의 진짜 나를 마주하는 연습을 하며, 생에 처음으로 진정 원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기 위하여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
인생에 대해 묻고 또 물었을 때, 글쓰기가 나에게 준 답은 분명했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라는 것. 그래서 처음으로 시도한 일탈이자 도전이 바로 고시원 사업이었다. 그리고 훗날 <따로 또 같이 고시원,삽니다> 라는 에세이를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으며, 미미하지만 온라인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알리고 조금씩 각인 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여기저기 뿌린 씨앗과 같은 글들은 수 많은 사람들과 나의 삶을 연결시켰고,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절대 경험해볼 수 없는 다양한 기회들을 눈 앞에 데려왔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인생의 문제를 가장 쉽게 풀 수 있는 ‘황금 열쇠’를 눈 앞에 쥐고도, 엉뚱한 곳에서 발버둥치고 있는지 모른다. 정작 가장 중요한 나 자신에게는 그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시작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지금 바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 된다. 아이와 병실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며 내가 깨달은 것은 그것이 인생의 해답을 찾아가기 위한 가장 쉽고, 안전하고, 강력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늘 처음은 늘 낯설고 두렵다. 하지만 지치고 힘들었던 병실에서 진심으로 써 내려간 서툰 첫 문장이 삶의 방향을 180도 바꿔주었듯, 당신이 쓴 한 문장이 인생의 궤적을 완전히 바꿔줄지도 모를 일이다.